말레이시아 랑카위 여행의 메인 테마
말레이시아 랑카위는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Geopark)으로 지정된 지역이다. 2007년, 말레이시아 최초로 유네스코 글로벌 지질공원에 등재되었으며, 섬 전체의 지질·생태·문화 자원을 보전하면서도 여행 콘텐츠로 잘 활용하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사실상 랑카위의 여행사에서 운영 중인 대부분의 여행 프로그램이 지질 공원의 자원을 활용한다고 할 수 있다.
지질 공원이라고 딱딱한 지질학 강의를 생각하지 말자. 오히려 수려한 지질 경관을 활용하여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액티브한 여행이 주를 이룬다. 랑카위가 ‘말레이시아의 제주도’라고 불리는 것처럼 전반적인 여행의 컨셉이 제주도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랑카위에는 총 네 곳의 지질공원이 있다. (일부에서는 세 곳의 지질공원으로 보기도 한다) 각 지질공원은 서로 다른 지질 구조와 형성 시기, 생태 환경,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으며,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접근성과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에도 차이가 있다. 트레킹, 망그로브 보트 투어, 수상 액티비티, 생태 탐사 등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여행자의 목적에 따라 프로드램을 취사선택 할 수 있다.
1. Machinchang Cambrian Geoforest Park
2. Kilim Karst Geoforest Park
3. Dayang Bunting Marble Geoforest Park
4. Kubang Badak BioGeo Trail
이번 포스팅에서는 랑카위를 대표하는 네 개 지질공원을 각각의 위치, 지질적 특징, 자연경관, 주요 명소, 추천 액티비티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다. 여행자의 동선과 관심사에 따라 어떤 지질공원을 가면 좋을지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비교하였다
랑카위에서 가장 많은 여행자가 찾는 지질공원은 단연 Machinchang Cambrian Geoforest Park다. 랑카위 북서부에 위치한 이 지역은 관광과 트래킹이 동시에 가능한 공간으로, 스카이브리지 같은 대표 명소가 이곳에 몰려 있다.
이 지질공원의 가장 큰 특징은 지질학적으로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 지층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약 5억 5천만 년 전, 지구 초기인 캄브리아기에 형성된 사암과 셰일 기반의 퇴적암이 드러나 있으며, 곳곳에서 고대 생물의 흔적과 단층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이름 그대로 ‘지질공원’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다.
그만큼 경관도 뛰어나다. 랑카위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인 체낭 해변에 가면 바다 너머 우뚝 솟은 산이 눈에 띄는데, 이 곳이 바로 마친창 공원이다. 실제로 마친창에서는 고산 지대의 절벽과 능선이 연속되는 풍경 위로 케이블카가 가로지르고, 정상에선 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곳의 매력은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트래킹이나 케이블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직접 산을 오를 수 있다는 데 있다. 다른 지질공원이 보트 투어나 산책 중심이라면, 마친창은 보다 활동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을 체험하는 곳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단연 SkyCab 케이블카다. 총 3개의 정류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가파른 각도를 자랑하는 이 케이블카는 단 몇 분 만에 해발 수백 미터의 고도로 이동시켜 준다. 랑카위 주민들의 자부심도 상당하여 랑카위에서 택시를 타면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케이블카를 타봤는지이다.
정상에서는 바다와 섬, 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날씨가 맑은 날에는 남부 태국의 해안선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케이블카를 타는 것만으로도 이 지질공원의 스케일을 실감할 수 있다. 다만 말레이시아 내국인과 외국인의 입장료가 달라,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건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케이블카로 도착한 정상 부근에서는 스카이브리지(Sky Bridge)를 걸을 수 있다. 고산 절벽 사이를 가로지르는 곡선형 보행자 전용 다리로, 일부 구간은 유리 바닥으로 되어 있어 발아래 깊은 계곡을 직접 내려다보는 아찔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접근 방법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SkyGlide라는 엘리베이터형 전동차를 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직접 걸어서 올라가는 방법이다. 어느 쪽이든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부담은 크지 않다.
동남아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여행 콘텐츠가 폭포 여행이다. 랑카위에서도 폭포 여행이 하고 싶다면 텔루가 루주(Telaga Tujuh) 폭포도 놓칠 수 없다. ‘일곱 개의 우물’이라는 이름처럼, 암반 위에 형성된 7개의 계단식 천연 수영장과 낙차 91미터의 폭포가 연결되어 있다.
특히 이 폭포는 지질공원 내 사암 기반의 암석 위에 직접 형성된 수영장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수심은 깊지 않아 더운 날씨에 잠깐 발을 담그거나, 물놀이를 즐기기에도 좋다. 폭포 상단까지 올라가는 데 왕복으로 약 40~60분 정도 소요되는데, 올라가는 길은 삼림이 우거져 생각보다 덥지는 않다. (하지만 계단이 많아 어느 정도 체력이 필요하긴 하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많은 상단의 Blue Pool보다는 물놀이할 거리가 많은 하단의 Bridge Pool을 더욱 추천한다.
Tip. 폭포에서 물놀이 후 옷이 젖은 채로는 그랩 탑승이 거절될 수 있으니, 여분의 옷가지를 챙겨가는 것을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활동은 SkyTrail 트레킹 코스다. 난이도에 따라 초급, 고급 코스로 나뉘며, 사암 지층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에서 고산 열대우림의 식생과 야생 조류(특히 호른빌)를 함께 관찰할 수 있다.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탐사형 트레킹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Skytrail은 가이드 투어를 통해 사전허가를 받아야만 트래킹이 가능하다.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마친창의 자연을 보다 밀도 있게 경험하고 싶은 여행자에게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랑카위 북동부, 킬림과 탄중루 일대에 위치한 Kilim Karst Geoforest Park는 맹그로브 숲과 석회암 절벽이 어우러진 수상 생태 탐험형 지질공원이다.
이곳은 약 4억 년 전 고생대에 형성된 석회암 지층을 중심으로,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한 지역이다. 석회암이 물과 바람에 오랜 시간 침식되며 만들어진 협곡, 동굴, 바위섬 등이 공원 전역에 퍼져 있고, 그 사이사이를 따라 맹그로브 숲이 자리하고 있다.
지형 구조상 대부분의 탐방은 보트 투어로 이루어진다. 단순한 경관을 구경하는 것을 넘어서, 동굴 탐방, 맹금류 관찰, 수상 생태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이 포함되어 있어 자연과 지질, 생태를 한 번에 경험하고 싶은 여행자에게 적합하다.
마친창 공원이 육로를 통해 여행하는 컨셉이라면, 킬림 공원은 물 위에서 움직이며 여행하는 공간이다. 동남아에서도 보기 드문 수상 지질공원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크다.
가장 기본이 되는 프로그램은 맹그로브 보트 투어다. 수상택시처럼 보트를 타고 킬림강을 따라 이동하면서, 석회암 절벽, 협곡, 바위섬, 동굴 등을 순차적으로 지나가게 된다.
카르스트 지형이 만든 굴곡진 절벽과 강줄기를 따라 맹그로브 숲이 뻗어 있어, 육상과 수상 생태계가 맞닿는 지형 구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의 투어는 망그로브 숲과 Gua Kelawar(박쥐 동굴)을 포함하며, 때로는 인근 무인도까지 연계하여 스노클링을 하기도 한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2시간 이상의 투어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국내나 비슷한 컨셉의 여행지(발리, 푸켓 등)와 비교하면 가성비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4인 프라이빗 보트 투어를 4시간짜리 코스로 신청하였는데, 총비용이 10만 원 밖에 되지 않았다. 심지어 코스 자체도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맹그로브 투어 도중, Brahminy Kite(붉은등말똥가리)와 Sea Eagle(흰배바다독수리) 등 맹금류가 모이는 지점에 들르게 된다. 이곳에서는 보트 기사가 던진 먹이에 반응해 맹금류가 공중에서 급강하하며 사냥하는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맹금류를 도심이 아닌 자연 상태에서 이렇게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수십 마리의 새가 모이기도 하기 때문에 장관을 목격할 수 있다.
일부 보트 투어는 인근 Pulau Dangli나 Pasir Dagang 등 작은 섬과 연계해 스노클링 체험도 포함한다. 규모가 큰 해변은 아니지만, 석회암 바위섬 주변의 얕은 바다에는 산호초와 열대어 군락이 잘 보존되어 있어, 간단한 장비만으로도 충분히 수중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사실 랑카위 여행에서 스노클링에 최적화된 코스는 배를 타고 태국 꼬리뻬 섬으로 넘어가는 것이지만, 여름에는 배편이 운행되지 않기 때문에 대체제로 이용할 수 있다. 여기는 수심이 깊지 않고 조류가 약한 편이어서 초보자에게도 적합하다.
보트 투어의 필수 코스 중 하나인 박쥐 동굴(Gua Kelawar)은 석회암 절벽 내부에 형성된 비교적 짧은 동굴이다. 데크가 잘 설치되어 있어 동굴 내부를 걸어서 통과할 수 있으며, 천장에는 실제 박쥐들이 매달려 있다. (사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직접 플래시를 비춰 박쥐를 구경하는 건 쉽지 않다.)
동굴 생태계와 석회암 지형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어 이곳은 일종의 ‘살아 있는 지질 교과서’ 같은 공간이다.
보트 투어 말미에 들르는 수상 양식장(피시팜)은 양식과 식사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망그로브 숲 앞에 대략 열 곳 정도의 floating restaurant이 늘어서 있고, 이 중 한 곳을 들러 체험을 하는 식이다. 어장 안에는 다양한 어종이 전시되어 있으며, 직접 먹이를 주는 것도 가능하다.
양식장 한쪽에는 간이식당이 운영되고 있어, 원하는 해산물을 고른 뒤 즉석에서 조리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식당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은 듯하여 식사를 하는 관광객은 거의 없다. 필자는 애초에 프로그램을 점심식사 불포함 옵션으로 예약했기 때문에 피쉬팜은 잠깐 들르기만 하고 이동하였다.
랑카위 남부 외곽에 위치한 Dayang Bunting Marble Geoforest Park는 육지가 아닌 섬 위에 조성된 지질공원이다. ‘임산부의 섬(Pulau Dayang Bunting)’이라고 불리는 다잉분팅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다른 지질공원과 달리 여유롭고 휴양 중심의 분위기가 특징이다.
이 지역은 약 2억 5천만 년 전에 형성된 대리암 기반의 변성암 지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단구, 해식기둥, 침식 절벽 등 다양한 지형이 형성되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은 섬 중앙에 자리한 담수호인 다잉분팅 호수다.
Dayang Bunting은 트레킹이나 하이킹보다, 수영, 카약, 섬 드라이브 등 가벼운 활동을 즐기기에 적합한 지질공원이다. 마친창이나 킬림에 비해 관광객 이 많지 않고, 일정도 여유 있는 편이라 느긋한 여행을 원하는 여행자에게 추천된다.
이 공원의 핵심은 단연 Lake of the Pregnant Maiden(임산부의 호수)다. 섬 중앙에 위치한 이 담수호는 대리암 기반의 지층 위에 형성된 호수로, 바다와는 완전히 분리된 담수호를 이루고 있다.
위에서 바라보면 산으로 둘러싸인 원 안에 담수가 차있어 마치 누워 있는 임산부의 배처럼 보이며, 이와 관련된 전설도 전해진다. 랑카위 본섬에서 보트를 타고 바다를 이동하다가 담수호를 여행하는 경험은 꽤나 희소하다.
입구에서 약 10분가량 걸어가면 호숫가에 도착하며, 이곳에서는 수영, 패들보트, 튜브 체험 등 가벼운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인공적인 시설이 거의 없어, 자연 호수 그대로의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좀 더 역동적인 체험을 원한다면 제트스키를 타고 인근 섬을 순회하는 아일랜드 호핑 투어를 고려할 수 있다. 일반 보트 대신 제트스키를 직접 운전하며, Pulau Singa Besar나 Pulau Beras Basah 등 근처의 작은 섬들을 방문할 수 있다.
Dayang Bunting과 인접한 Pulau Tuba는 관광지가 아닌 실제 주민이 거주하는 고립된 섬이다. 이곳에서는 Hornbill(코뿔새), Kingfisher(물총새) 등 다양한 조류가 서식하고 있으며, 일정에 따라 마을 탐방, 홈스테이 체험, 워룽 방문 등이 가능하다고 한다.
Kubang Badak BioGeo Trail은 랑카위 서부 해안에 위치한 소규모 지질공원으로, 앞서 소개한 마친창 지질공원과 인접해 있다. 많은 지도나 투어 프로그램에서는 이 두 곳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기도 한다.
다른 공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고, 관광객 수도 적다.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혼잡하지 않고, 조용한 탐방이 가능한 곳으로, 랑카위 여행이 처음이 아니라면 재방문 코스로 고려해 볼 만하다.
공원은 트레킹보다는 소형 보트를 이용한 생태 탐사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사전에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야 하며, 생태 해설과 조류 관찰을 함께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장 기본적인 활동은 소형 보트를 타고 맹그로브 수로를 따라 이동하는 탐사형 투어다. 이 지역의 맹그로브는 규모는 킬림 지질공원과 비교하면 작지만, 수로가 얕고 좁아 대형 보트가 접근하지 못하는 세부 지형까지 진입할 수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난 뿌리와 그 위에 앉은 물새, 진흙 바닥에서 움직이는 뱀장어, 진흙게, 작은 어류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관광지’보다는 습지 생태 공간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곳은 조류 관찰지로도 잘 알려진 장소다. 하구를 따라 형성된 습지에는 도요새, 백로, 물총새, 호른빌 등 다양한 조류가 서식하며, 오전 7~9시가 가장 활발한 관찰 시간대다.
조류 관찰용 쌍안경이나 도감이 제공되며, 전문 가이드가 동행하는 경우 해설을 통해 지형과 먹이사슬 구조까지 함께 이해할 수 있다. 짧은 숲길을 걷는 트레킹이 포함되지만, 어려운 코스는 아니다.
지금까지 랑카위의 지질공원 네 곳에 대해 알아보았다. 수억 년의 지질환경을 기반으로 다양한 선택지가 있으므로 여행 동선과 하고 싶은 액티비티 위주로 투어 프로그램을 예약하면 좋다. 다만 3일 이상 랑카위에 머문다면 마친창과 킬림 지질공원 투어는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접근성도 좋고 프로그램도 다양하기 때문)
투어 프로그램은 사전에 신청하는 것이 좋은데, 개인적으로는 호텔 컨시어저나 에어비앤비 호스트에서 부탁하여 신뢰할 수 있는 업체를 통해 예약하는 방법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