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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카위 구눙 라야(Gunung Raya) 여행 가이드

랑카위의 숨겨진 비경

by 만꺼

랑카위 여행은 대부분 해변가를 중심으로 소개되지만, 섬의 또 다른 매력을 경험하고 싶다면 내륙의 고지대를 향해 오토바이를 몰아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랑카위 중앙부에 위치한 구눙 라야(Gunung Raya)는 해발 881m로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랑카위의 다른 여행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출발하기 전까지는 존재조차 몰랐고, 현지에 도착한 뒤 구글맵을 통해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다. 그만큼 다른 관광지에 비해 상업화도 덜 되어 있고, 조용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곳이다. 케이블카와 전망대가 있는 마친창산(Gunung Mat Cincang)과 달리, 이곳은 도로를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해 직접 오토바이를 몰고 올라가는 여행이 일반적이다.


구눙 라야(Gunung Raya)는 랑카위 섬 중앙에 자리하고 있어 주요 번화가에서는 거리가 있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번화가인 체낭(Pantai Cenang)이나 쿠아타운(Kuah Town)에서 오토바이를 대여해 이동하게 되며, 체낭에서는 약 35분, 쿠아타운에서는 약 25분 정도 소요된다. 나는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오토바이를 직접 빌려 바로 출발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했지만, 번화가에서 출발한다면 일정에 맞춰 이동 시간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운영 시간은 따로 정해진 것이 없으며, 상시 개방된 도로를 따라 자유롭게 오를 수 있다. 산길은 전 구간 아스팔트로 잘 포장되어 있어 길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지만, 커브가 많고 일부 구간은 경사가 상당히 급하다. 특히 정상에서 하산할 때는 연속되는 내리막 구간이 이어지기 때문에 초보 운전자라면 긴장을 늦추기 어렵다. 따라서 무리하게 속도를 내기보다는 천천히 오르내리며 주변 풍경을 여유 있게 감상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구눙 라야를 여행하면서 좋았던 점은,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숲길을 따라 올라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산길에 진입하고 나서부터 정상에 오를 때까지 사람은 물론 자동차까지 거의 만나지 않았고, 덕분에 조용한 환경에서 라이딩을 즐길 수 있었다. 또한 높은 고도와 울창한 숲길 덕분에, 동남아임에도 잠시나마 더위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는 점도 좋았다. 특히 고도에 따라 나무의 식생과 숲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지는데, 그 변화를 직접 체감하는 과정도 꽤 흥미로웠다.


가끔 원숭이 무리를 마주치는 구간도 있다. 도로변에 앉아있거나 나무 사이를 오가는 모습이 보이는데,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금세 자리를 피해버리기 때문에 조용히 관찰만 하는 게 좋다. 현지에서는 음식물을 절대 주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고, 실제로 가방을 노리는 행동을 보기도 했다.


정상에는 규모가 제법 큰 리조트 형태의 건물이 하나 있는데, 원래는 전망대와 통신시설의 역할을 겸하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운영이 중단되어 내부 출입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인적 드문 고지대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건물이 오히려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듯했다. 관리되지 않은 외관에서 풍기는 약간의 폐허 감성이 의외로 조용한 주변 풍경과 잘 어울렸다.


사실 정상에 오르기 직전에 오토바이를 잠시 세우고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조망 포인트가 두 곳 정도 있다. 별도의 시설이 있는 전망대는 아니지만, 도로가 넓게 트여 있고 차량을 안전하게 세울 수 있어 잠시 멈춰 인증샷을 남길 수 있었다.


방문한 날은 안개가 짙게 끼어 멀리까지 시야가 뚫리지는 않았지만, 안개 사이로 섬의 능선과 해안선이 어렴풋이 드러나는 모습도 나름대로 운치 있었다. 날씨가 맑은 날이라면 섬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일 정도로 시야가 탁 트인 곳이니, 날씨만 받쳐준다면 한 번쯤 들러볼 만하다.


산길 초입에서부터 정상을 찍고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한 시간 반 정도였다. 중간에 잠시 멈춰 풍경을 감상하고, 천천히 속도를 조절해 올라간 것을 감안하면 전체적으로 부담 없는 거리였다.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의 라이딩 시간이 가장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보다 더 길었다면, 체력적으로나 집중력 면에서 피로감이 누적되지 않았을까 싶다.


구눙 라야는 반나절 정도만 여유를 두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코스로, 긴 트레킹이나 별도의 장비 없이도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접근성이 좋은 곳이다. 오토바이를 탈 줄 안다면, 특별한 준비 없이도 랑카위 내륙의 자연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구눙 라야는 짧지만 고도가 있는 산악 도로이기 때문에, 드라이브 자체가 하나의 액티비티이다. 아래는 직접 다녀오며 느낀 여행 팁들이다.


먼저 시간대를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전 8시에서 10시 사이, 혹은 오후 4시 이후를 추천한다. 이 시간대는 기온이 너무 높지 않고, 빛의 각도가 낮아 주변 숲의 입체감이 잘 살아난다. 특히 오후에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조망 포인트에서 해안선 방향으로 빛이 들어와 풍경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한낮은 기온이 높고 그림자도 짧아 다소 밋밋한 풍경이 될 수 있다.


복장은 가볍되 기온차를 감안해야 한다. 중턱 이후부터는 체감 온도가 내려가고 바람도 꽤 강하게 느껴진다. 추위에 약한 사람이라면 반팔 위에 얇은 바람막이나 긴팔 셔츠 하나쯤 챙겨가도 좋다.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경우 선글라스나 고글도 유용하다. 흙먼지나 벌레로부터 눈을 보호할 수 있고, 햇빛이 강한 날에는 시야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


준비물로는 물과 간단한 간식을 챙기는 것이 좋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에는 마실 곳은 물론, 화장실이나 매점 같은 편의시설이 전혀 없다. 라이딩 도중에 무리해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을 피하려면 출발 전에 체낭 거리나 쿠아타운 등 번화가에서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필수다. 예상보다 소요 시간이 길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작은 생수병 한두 개와 에너지바 정도만 있어도 훨씬 여유 있게 다녀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구눙 라야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목적지이지만, 하루를 좀 더 알차게 활용하고 싶다면 인근의 자연 명소나 여행지를 함께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오토바이를 이용한다면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외곽 지역도 부담 없이 이동할 수 있어, 동선에 맞춰 연계 여행을 구성하기에 적합하다.

가장 가까운 곳은 구눙 라야 북쪽 기슭에 자리한 두리안 페랑인 폭포(Durian Perangin Waterfall)다. 정상에서 오토바이로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고, 입구에서 폭포까지는 계단식 트레킹 코스를 따라 10분 정도 가볍게 걸으면 된다. 폭포는 14단으로 구성돼 있는데, 상단까지 오르지 않더라도 중간중간 넓은 바위와 시냇물 구간에서 잠시 머물며 쉴 수 있다. 하류에는 발을 담글 수 있는 얕은 웅덩이도 있어 더위를 식히기에 좋다.


약 20분 거리에 위치한 아이어 항앗 온천마을(Ayer Hangat Village)은 랑카위에서 유일하게 천연 염분 온천 체험이 가능한 공간이다. 이곳은 스파보다는 족욕 중심의 소규모 체험 시설로 운영되고 있어, 긴 트레킹이나 라이딩 이후 잠시 피로를 풀기에 적합하다. 일정이 잘 맞는다면 근처에서 열리는 야시장(Pasar Malam Ayer Hangat)까지 연계해 저녁을 해결하는 것도 가능하다.


더운 날씨를 피해 잠시 실내에서 머물고 싶다면, 갈레리아 퍼르다나(Galeria Perdana)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곳은 말레이시아 전 총리 마하티르가 재임 기간 동안 세계 각국으로부터 받은 기념품과 예술품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다. 전시물의 종류가 다양하고 규모도 상당하지만, 입장료는 외국인 기준 RM5 내외로 비교적 저렴하다. 건물 외관은 이슬람 건축 양식의 아치 구조와 화려한 타일 장식이 특징이며, 내부는 자연광이 잘 들어오고 관람 동선도 여유 있게 구성되어 있어 한적하게 둘러보기 좋다.


구눙 라야는 해변 중심의 관광이 일반적인 랑카위에서, 내륙의 조용한 숲길과 고요한 오르막길을 체험할 수 있는 드문 장소다. 짧은 시간 안에 풍경, 기온, 분위기가 단계적으로 바뀌는 라이딩은 그 자체로 색다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 내 멋대로 작성하는 랑카위 여행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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