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랑카위의 대표적인 트래킹 코스
랑카위에서 시원한 계곡을 찾는다면 가장 눈에 띄는 곳이 Seven Wells Eco Forest Park다. 현지에서는 텔라카 투주(Telaga Tujuh)라고도 불리는데, 마친창산 기슭에 자리한 이곳은 폭포와 정글길, 바위 웅덩이, 숲 속 전망대가 이어지는 여행지이다.
사실 이곳은 여행 계획에 미리 넣어두긴 했지만,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해변에서 보내는 시간이 여행의 중심이 될 거라 생각했고, 여기는 그저 ‘있으니까 가보자’는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훨씬 볼거리도 많고, 트래킹 하는 맛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랑카위 여행 중에 가장 좋았던 여행지 중 하나가 되었다.
공원은 랑카위 서북부에 위치하며, 판타이 체낭에서는 차량으로 약 30분 정도 걸린다. 체낭에서 공항을 지나 서북쪽 방향으로 이동하면 SkyCab 케이블카 탑승장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도보로 약 10분 떨어진 곳에 별도의 공원 입구가 있다. (참고로, 케이블카 주차장과는 완전히 다른 위치다.)
입장 시간은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입장료는 성인 10링깃, 어린이 5링깃이다. 특이한 점은 입장할 때와 하산할 때 모두 시간을 기록해야 한다는 점이다. 입구 매표소 옆에 마련된 방명록 같은 책자에 이름과 입산 시간, 연락처를 적고, 하산 후에는 퇴산 시간을 다시 기입해야 한다. 단순한 형식 같지만, 생각보다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공원 입구 주변에는 간이매점과 유료 화장실(0.5링깃)이 마련되어 있다. 문제는 그 이후 상류 구간에는 상점도, 화장실도 전혀 없다는 점이다. 돈을 내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한국인 정서에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곳을 이용할 수 있을 때 미리 다녀오는 것이 좋다.
Seven Wells에서 소개하는 표지판의 안내에 따르면, 공원은 Level 1부터 Level 7까지로 구간이 나뉘며, 각 지점마다 고도와 지형이 다르다. 트레킹은 계단으로 시작하지만 중간부터는 정글 속 돌길과 흙길이 이어진다. 레벨별 구성은 다음과 같다.
- Level 1: 출발점 (50m)
매표소, 매점, 화장실 위치. 본격적인 오르막 계단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 Level 2: 중간 쉼터 (110m)
트레일이 분기되는 지점. Level 3(폭포)로 갈지, 더 위로 올라갈지를 결정할 수 있다.
- Level 3: Seven Wells Waterfall (200m)
하류 폭포 구간. 91m의 낙차가 인상적이며, 말레이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인기 물놀이 장소다.
- Level 4: The Bridge (300m)_추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곳. 넓은 바위판 사이로 물이 흐르며 자연 수영장이 형성되어 있고, 멀리 케이블카가 올라가는 모습과 바다가 동시에 보인다. 바위 사이 물살이 빠른 구간에서는 자연 미끄럼틀처럼 미끄러지는 것도 가능해,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재밌게 즐길 수 있다.
이곳에는 놀랍게도 기도실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슬람 문화권답게 공공 트레킹 코스 한가운데 작은 철제 기도실이 설치돼 있는 모습은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 Level 5~6: Green Lagoon & Blue Lagoon (400~500m)
정글 트레킹 구간으로 흙길과 돌계단이 반복된다. Level 6인 Blue Lagoon은 깊고 투명한 물색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방문했을 때는 웅덩이 크기에 비해 사람들이 너무 많아 수영을 하기 어려웠다. 더 한적한 물놀이를 원한다면 Level 4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추천한다.
- Level 7: 마친창산 정상
이 구간은 로컬 가이드 없이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정글 속을 오랫동안 올라야 하며, 표지판으로도 경고가 되어 있다. 일반 관광객에게는 사실상 진입이 어려운 곳이다.
올라가는 길은 계단이 계속되어 쉽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덥지는 않았다. 정글 그늘이 햇빛을 많이 막아줘서 체감 온도는 꽤 쾌적했다. 땀이 나긴 했지만, 동남아 특유의 후텁지근한 기후가 아니었기 때문에 평범한 체력의 여행자도 Level 4까지는 무리 없이 다녀올 수 있다. 왕복 소요 시간은 대략 1시간 30분~2시간 정도이다.
- 운동화 또는 아쿠아슈즈 (미끄럼 방지용)
- 수건, 마른 옷 (필수!)
- 방수팩 또는 스마트폰 방수 케이스
- 물 500ml 이상, 간단한 간식 (중간 매점 없음)
- 벌레 퇴치제 (모기 있음)
- 돗자리 (중간 휴식용)
주의할 점은, 물놀이 후 갈아입을 마른 옷을 반드시 챙겨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미처 모르고 여벌 옷 없이 올랐다가, 내려올 때 꽤나 곤란한 상황을 겪었다. 바지가 젖은 상태로 Grab을 부르자 기사 세 명에게 연속으로 탑승을 거절당했다. 더운 나라라 금방 마를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잘 마르지 않았다. 결국 케이블카 탑승장까지 걸어가 매대에서 파는 현지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야 겨우 그랩을 탈 수 있었다.
Seven Wells에서 트레킹 일정을 마치고 시간이 여유롭다면, 근처에 있는 여행지 몇 곳을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어차피 동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에, 연계하여 둘러보기에도 적절하다. 대표적으로는 다음 세 곳이 있다.
Seven Wells 입구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한 케이블카로, 랑카위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 중 하나다. 최대 경사도 42도를 자랑하며, 중간 정거장과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마친창산 능선과 안다만 해의 조망이 인기가 많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다 보면 숲과 절벽이 아래로 펼쳐지고,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시야가 트이면서 섬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SkyBridge는 케이블카 정상에서 이어지는 곡선형 보행자 전용 다리로,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일부 구간은 유리 바닥으로 되어 있어 아래가 훤히 보이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겐 다소 아찔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날씨가 맑은 날엔 태국 국경 너머까지 보인다고도 한다. 다만 대기줄이 상당히 긴 편이므로, 온라인 사전 예약 또는 이른 시간대 방문을 추천한다.
SkyCab 매표소가 위치한 소규모 테마파크로, 케이블카를 기다리거나 하산 후 잠시 시간을 보내기에 알맞다. 기념품 가게를 비롯해 3D 아트 뮤지엄, ATV 체험장, 토끼 농장 등이 밀집해 있으며, 특히 아이들이 있는 가족 단위 여행자에게 적합하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다양한 체험 요소가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 짧게 들르기 좋다.
음식점도 여럿 있다. 실제로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했는데, 마막(Mamak) 스타일의 인도 음식점에서 난과 버터치킨을 시켜 먹었다. 사실 큰 기대 없이 들어갔는데, 향신료 맛이 과하지 않으면서도 간이 잘 맞아 만족도가 높았다. 서브웨이 같은 패스트푸드 체인도 입점해 있어 현지 음식이 안 맞는 사람도 부담 없이 끼니를 때울 수 있다.
Seven Wells에서 차량으로 약 5분 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한 조용한 마리나 항구다.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풍경이 이국적이며, 늦은 오후에는 요트 너머로 해가 지는 장면을 감상할 수 있다. 관광지 특유의 소란스러움보다는 잔잔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항구 주변에는 분위기 좋은 피자집, 수제 버거 가게, 간단한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카페 등이 늘어서 있어, 물놀이와 트레킹 후에 잠시 쉬어가기에도 제격이다.
Seven Wells Eco Forest Park는 단순히 폭포가 있는 산자락이 아니라, 걷고 쉬고 물에 들어가며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로 구성된 여행지다. 코스는 길지 않지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동남아 지역에서 즐기기 좋은 트레킹의 전형적인 구성에 가깝다
특히 중간 구간의 자연 수영장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이곳만의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다. 숲과 바위, 흐르는 물, 그리고 멀리 보이는 바다가 어우러지는 이 조합은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접하기 어려운 풍경이라, 이 트래킹을 일정에 포함시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선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