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열기와 서점의 냄새 사이, 나만의 온도
남편과 아들의 공통 관심사는 단연 자동차다. 최근엔 F1에 푹 빠져 지냈고, ‘F1 더 무비’가 4DX로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몇 주 전부터 상영 일정과 예매를 알아보았다. 남편이 몇 명 예매할지 물었을 때, 나는 F1 대회에 큰 관심도 없고 일정도 확실치 않아 좌석 3개만 예약하자고 했다.
상영 당일, 다행히 시간이 맞아 영화관까지 함께 드라이브를 나섰다. 남편과 아이들이 영화관으로 들어가는 동안 나는 근처 카페에 들러 미뤄둔 업무를 간단히 정리한 뒤, 오랜만에 대형 서점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장 먼저 코끝을 스친 것은 책과 종이가 만들어낸, 서점 특유의 냄새였다. 익숙하고, 안정적이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내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는 기분.
먼저 두 아이의 책부터 살폈다. 초등 고학년과 청소년 시기를 앞둔 아이들이라, 사회와 과학 분야의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 우주에 관심이 많아진 제이를 떠올리며 그의 눈높이에 맞는 책을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책이 있었고, 주제와 구성이 알차서 고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렀다.
학습지를 살펴보는 동안, 맞은편에선 엄마와 아이가 나란히 문제집을 고르고 있었다. 아이가 직접 자기 수준을 고민하며 고르는 모습이 기특했고, “이건 나한테 어려울 것 같아”라고 말하는 아이의 말에 엄마가 맞장구를 치는 모습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나도 모르게 이상적인 그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연이가 부탁한 소설책 코너에도 들렀다. 몇 권을 훑다 보니 영화 종료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번엔 내 책을 찾아보고 싶었다. 에세이 코너에서 발길이 멈췄다. 그중 한 권, 일과 삶 사이의 균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퇴사 후 시작한 내 작은 사업은 생각보다 많은 벽을 마주쳤다. 일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마음은 자주 조급해졌다. 그 책은 성공담만 나열한 다른 책들과 달리, 시행착오와 내면의 감정을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덤덤하고 단단한 문장들이 내 안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좁은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 사이로 나도 조용히 스며들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종이 냄새, 부드러운 조명 아래의 고요한 집중. 이 공간만의 감각들이 좋았다. 아무 말 없이 책에 몰두하고 있는 그 공기 속에서, 나도 자연스럽게 숨을 고르게 되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돌아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20분 남짓. 길지 않았지만, 나에겐 충분히 깊은 시간이었다. 자동차와 책, 움직임과 멈춤, 흥분과 고요.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결로 보낸 오늘 하루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서점의 공기 속에 잠시 머무른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충분히 쉬었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