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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May 15. 2018

왕관의 무게를 견뎌낸.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2018)

기대만큼 걱정도 컸다. 내심 어벤져스 시리즈의 최고는 이미 첫편에서 찍었다 생각하고 있기도 했고. 상업 영화가 길어봐야 두 시간 반인데 그 안에 다뤄야 할 캐릭터가 비정상적으로 많아져버렸다. 이 상태에서 앙상블을 기대하는 건 좀 무리아닐까.


그래서인지 <인피니티 워>를 본 첫 감상은 일단 '애썼다'였다. 감독도 각본가도 최선을 다했다는 게 너무 잘 느껴졌다. 이 빡빡하기 그지없는 기획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려냈다는게 감탄스럽기도 했다. 어떤 영화들은 제작자가 만들면서 이미 포기했다는게 눈에 보이기도 하는데(스스로의 기획과 소재와 규모를 감당해내지 못하는 영화들) 인피니티 워는 어떻게든 그 무게를 견뎌낸 영화다.



각 히어로들의 근황을 소개하며 이 공간과 저 공간을 헤매이는 전반부는 아무래도 산만할 수 밖에 없다. 서사와 비중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캐릭터도 존재한다. 그러나 마블은 캐릭터간의 새로운 조합과 한 수 더 길게 내다보고 선택한 엔딩으로 또 한번 영리하게 한 발작 내딛는 데 성공한다. (이 정도 규모의 영화가 이런 엔딩을 선택했다는 건 마블이 얼마나 자신만만하고 똑똑한 집단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사실 마블에게 가장 놀라운 점은 여전히 대중적이라는 것이다. <인피니티 워>의 관객 수는 <닥터 스트레인지>, <스파이더맨 홈커밍>, <블랙팬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보다 많은데, 이말은 곧 스타로드, 가모라, 닥터 스트레인지 등의 주요 캐릭터를 전혀 모르면서도 이 영화를 보러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이 있다는 거다. 물론 <인피니티 워>가 전작들을 보지 않은 관객들에게 마냥 불친절하게 구는 영화는 아니긴 하지만, MCU의 공격적인 세계관 확장에 따라 꽤나 단단한 진입 장벽이 생겼다는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마블의 저력이라 부를만 한다. 대중을 고려하면서 팬덤을 만족시킨다는 건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미션일진데 여전히 마블은 성공하고 있다. 그것도 이렇게나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나는 특히 나타샤(스칼렛 요한슨)가 배너 박사(마크 러팔로)와 재회하는 장면에서 마블이 10년동안 쌓아온 공든 탑을 실감했다. 나타샤는 그저 "브루스.." 한 마디를 할 뿐이다. 카메라는 이어서 두 사람의 미묘한 얼굴을 차례로 비춘다. 정말 단촐한 재회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쌓인 서사를 아는 팬들은 이 짧은 재회의 묘사 속에 반가움과 그리움, 서운함과 망설임, 그 모든 복잡한 감정을 읽는다.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와 버키(세바스찬 스탠)의 재회도 마찬가지다. 한 마디의 대사, 한 번의 포옹만으로 수많은 감정 묘사를 대신할 수 있다는 건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한단계 한단계 실행해오며 지금까지 달려온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나는 여전히 마블의 영화들이 재밌다. 몇몇 영화들은 전보다 더 좋게 느껴지기도 한다. 매번 MCU의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이제 질릴 때도 되지 않았나 생각하면서도 정작 극장에선 즐겁게 보곤 한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의 의미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블은 극장을 찾게 하는 힘이 있다. 히어로물 범람, 마블 천하라는 비판적 시선에 공감하면서도 내가 마블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을 꽤 즐기는 관객이란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 토르는 왜 뒤늦게 이렇게 멋있어 진걸까. 트릴로지가 끝난게 너무 아쉽다. 한 편만 더....!

+ 스타로드 욕 안먹었으면 좋겠다 흑흑.

+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확실히 몸을 잘 쓴다. <라그나로크>의 케이트 블란쳇을 보며 느꼈고, 이번에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보면서 또한번 더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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