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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가족회의 소집

옆집에 주거침입범이 산다 #5

by 하은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서서히 잦아들더니, 잠시 뒤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 앞에는 경찰관 한 분이 서 있었다. 경찰은 아주머니를 귀가 조치했으며, 다시 찾아오면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고 곧바로 신고하라고 당부했다. 짧은 인사와 함께 문이 닫혔다.


한시름 놓였지만 꺼림칙한 기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여전히 우리가 소음의 원흉이라 믿고 있을 터였다. 경찰에 의해 쫓겨났을 뿐, 스스로 납득하지 못한 채 돌아갔으니 말이다. 이 정도로 행패를 부린 사람이 다시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결국 한밤중 가족회의가 소집됐다.

안건은 하나였다. '이대로 괜찮은가?'


따로 살고 있는 언니도 전화로 합류했다. 의견이 분분했다.

"이사 가야 하지 않겠어? "— 안전 최우선파.

"그냥 집을 보여주자. 그래야 끝나지." — 타협파.

"에이, 이렇게까지 했는데 설마 또 오겠어?" — 희망회로파.

"또 찾아오면 그때 가서 다시 신고하면 되지. 그땐 처벌하자." — 일단 지켜보기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더니······. 머리를 싸맸다. 이사를 하자니 일이 너무 커지고, 가만있자니 불안했다. 초인종 소리만 울려도 신경이 곤두서는 생활이라니. 상상만으로 피로했다. 그렇다고 집을 보여주자니 억지를 받아들이는 꼴이라 영 내키지 않았다.



치열한 논의 끝에 결국 타협파의 의견이 채택됐다. 당장은 아주머니가 원하던 대로 집을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판단했다. 이사를 가더라도 그건 나중 일이었다. 아무튼 결정이 났으니 실행에 옮길 차례였다. 엄마는 옆집으로 가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뒤, 눈가가 붉어진 아주머니가 훌쩍이며 문을 열었다.


"이제 좀 진정되셨어요? 그렇게 원하시던 거니까 직접 보시고 편히 주무세요."

엄마가 말했다. 그 말에 아주머니는 엄마를 따라 우리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서럽게 울음을 터트리며 뜻밖의 한 마디를 꺼냈다.


"나는 이 집 딸이 참 귀엽고 예뻐서 우리 의사 사위 친구들 소개해 주려고 했어."


난데없는 소개팅 제안이라니. 황당했다. 그토록 보고 싶다던 집은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 난동 부린 사람 맞아?' 황당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말을 쏟아냈다. 자신의 가족사부터 윗집에 찾아갔던 일화, 경찰이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세웠다는 억울함, 급기야 내가 들어오라는 눈빛을 보냈으니 자신은 주거침입이 아니라는 해명까지······.


그녀는 꺽꺽 울다 웃기를 반복하며 손수건으로 쉴 새 없이 눈물을 훔쳤다. 엄마가 몇 번이나 "이제 방 보세요."하고 말을 끊으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주거침입범의 눈물 젖은 하소연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 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집을 보여줄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집 안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마사지기 없네. 미안해. 아가씨, 많이 놀랐지? 내가 아가씨 너무 좋아해. 우리 딸 같아."


우리 집에 마사지기가 없는 것을 확인한 아주머니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앞으로 마주치면 인사하자는 말을 남기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문이 닫히자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아빠가 나지막히 말했다.

"이제 아주머니도 마음 편하게 주무셨으면 좋겠네. 안쓰럽기도 하고······."

"그러게. 잘 끝나서 다행이야."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우리 가족은 세상에 별일이 다 있다며 고생했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그제야 식탁 위에 올려진 치킨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치킨 한 번 먹으려다 진이 다 빠지네···.' 복잡한 마음으로 박스를 열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치킨 조각을 한입 베어 무니 속이 다시 끓어오르는 듯했지만 꿀꺽 삼키며 눌렀다. 아무튼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됐다.

아니,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고소장이 날아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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