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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첫 법률 상담

옆집에 주거침입범이 산다 #9

by 하은


잠시 시곗바늘을 그날로 되돌려 보자. 아주머니가 나를 밀치며 막무가내로 집 안으로 들이닥쳤을 때, 소란을 감지한 아빠가 안방에서 나왔다.


나는 상황을 아빠에게 맡긴 채 재빨리 방에 뛰어 들어갔다. 휴대전화를 움켜쥐고 떨리는 손으로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눌러 현장 상황을 담기 시작했다. 아주머니가 휴대전화를 빼앗을까봐 대놓고 찍을 수는 없었다. 대부분 음성만 담겼지만, 다행히 소리는 또렷하게 기록되었다. 이 녹화 파일이야말로 우리 가족의 비장의 카드였다. 허위로 특수상해 고소를 당한 이상, 이 촬영본이 결정적인 증거가 될 터였다. 만약 이것마저 없었더라면 사건은 양측의 주장만 난무하는 진흙탕 싸움으로 이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녹화 중간에 화면이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아주머니가 엄마를 밀치는 그 순간이었다. 아주머니가 엄마를 밀치며 서로 신체 접촉이 이루어진 모습이 담겨있었다. 문득 예전에 봤던 뉴스들이 떠올랐다. —누가봐도 억울한 피해자인데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받았던 사례들. 게다가 폭행의 범위가 일반적으로 생각보다 훨씬 넓게 인정된다는 이야기도 익히 알고 있었다. 특수상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장면이 오해를 불러 폭행으로 판단될 작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상대는 이미 변호사까지 선임하지 않았던가(무려 세 명이나 선임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고소장을 확인한 후, 세 가지 행동을 실행에 옮겼다.


첫 번째는 증거 확보였다. 녹음이나 촬영 파일이 있다면 증거로 제출할 녹취록을 미리 만들어두라는 지인의 조언을 따라, 인터넷에서 속기사 사무실을 찾아 녹취록 제작을 의뢰했다.


두 번째는 경찰 조사 연기였다. 아빠의 조사 날짜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고소장의 실체를 알게 된 이상 변호사 상담 없이는 조사에 응할 수 없었다. 곧바로 담당 수사관에게 전화를 걸어 고소장을 이제야 확인했음을 알리고, 변호사 선임이 필요하니 시간을 달라며 조사 날짜를 늦추었다.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했던 일은 변호사 구하기였다. 녹취록이 만들어지는 동안, 우리 가족은 총력을 기울여 변호사를 수소문했다. 안부가 뜸했던 지인들에게까지 염치 불문하고 연락을 돌렸다. 물론 검색만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 상담할 수도 있었지만, 지인의 소개라면 사건에 조금이라도 더 신경 써주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심정 때문이었다.


그렇게 예전 직장 동료분의 소개로 한 변호사님과 상담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상담 당일, 나는 오후 반차를 내고 교대역으로 향했다.


"이번 역은 교대역, 교대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늘 출퇴근길에 스쳐 지나가던 안내 방송이었건만, 그날따라 유난히 귀에 또렷이 박혔다. 개찰구를 통과해 출구로 향하는 길목은 온통 법(法)의 세계였다. 법률 사무소, 변호사 상담, 법률 서비스 소개 광고가 빽빽이 줄지어 있어 마치 현실과 동떨어진 법정 세계로 들어가는 문턱 같았다. 교대역 출구에서 만난 엄마와 나는 기대와 걱정을 반씩 안고 법무법인 사무실로 향했다.


안내를 받고 상담실을 둘러보던 중, 테이블에 한편에 놓인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상담비용(VAT 10% 별도)>
기본 30분 : 100,000원
추가 10분당 : 50,000원


'분 단위로 돈을 받는 세계구나······.’ 신기했다.

감사하게도 지인 소개 덕분에 상담료는 지불하지 않았지만, 이 비싼 시간을 단 1분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잔뜩 긴장되었다. 준비된 차를 마시며 목을 축이는 사이, 변호사님이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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