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어떻게 읽을까
오랫동안 대학생 및 사회인 독서지도를 했고, 노벨문학상 수상작에 특화해 독서모임을 진행한 지도 10년 가까이 된다. 자주 받는 질문 중에 "문학을 어떻게 읽으면 좋으냐"가 있다. 특별히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꼭 집어 물어보기도 한다.
일단 노벨문학상 수상작 읽기와 문학 읽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부터 해야겠다. 노벨문학상 수상작 또한 문학 작품이기에, 문학 독서의 보편적인 방법론과 다르지 않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좋은' 문학일 따름이다. 간혹 헷갈리는 사람이 있는데, 노벨문학상은 작품이 아니라 작가에게 준다. 따라서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란 말은 틀린 말이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란 뜻이기에 틀렸다고 보기도 힘들다.
노벨문학상을 받지 않은 작품 중에도 '좋은' 문학이 있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작은 거의 예외 없이 좋은 작품이기에 선별의 수고 없이 안심하고 읽으면 된다. 문학 중에 어떤 책을 읽을까가 고민스럽다면 노벨문학상을 찾아서 읽으면 실수할 일은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독서는 정신을 살찌우는 데 유효한 방법이지만, "좋은 책을 읽는다면"이라는 독서의 당연한 전제는 그래도 확인하고 넘어가자.
노벨문학상 중에서 읽을 책을 고른다면 시보다는 소설이나 희곡을 선택하는 게 좋다. 시는 더 강력하게 농축한 정신의 비타민이지만, 모국어로 읽지 않을 때는 이해와 감동에 닿기가 소설보다 더 어렵다.
작품을 고를 때는 개인의 영역이기에 취향을 따르면 된다. 손에 잡히는 것, 또는 마음에 가는 작품을 고르는 게 최선이다. 그래도 고민 된다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중에서 많이 읽히는 작가에서 시작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작가를 기준으로 할 때는 대표작으로 꼽히는 걸 선택하고 마음에 들면 다른 작품으로 확대하는 방식을 조언한다. 드물게 순서대로 읽어야 편리한 책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2002년 수상자 헝가리의 임레 케르테스의 작품은 〈운명〉부터 읽어야 한다. 서너 권의 책이 연대기처럼 연결되기 때문이다.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사전에 작가의 삶과 시대 배경을 조사하라는 조언은 무시해도 된다. 개인적으로는 대뜸 읽어나가라고 권유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마술적 사실주의와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좋은 문학은, 그 자체로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 물론 독자의 수준에 따라 이해 수준이 달라진다. 한데 그 이해 수준이야말로 정말 그때 그 독자에게 필요한 정신의 영양분이다. 문학은 고형물이 아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정신이 독서 과정에서 알아서 추출해 낸다. 굳이 사전에 무엇이라도 조사하고 싶다면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내용만 보면 된다. 그러나 가능하면 사전 정보 없이 책을 읽는 게 좋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 만족스러우면 그대로 덮으면 그만이고, 혹시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작가의 전언이 있는 게 아닌지 궁금하다면 그때 해설과 주변 정보를 참고하면 된다. 다만 책 끝에 붙어 있는 역자 등의 해설 중에 더러 잘못된 내용이 있기에 맹신은 금물이다.
여러 번 읽으라는 얘기도 많이 한다. 독서모임이 끝나고 "다시 한번 읽어 보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많이 보는데, 실제로 다시 읽는 사람은 드물다. 한번 읽을 때 충실하게 읽자. 처음 읽을 때 줄거리와 흐름을 파악하고, 두 번째, 세 번째 읽기에서는 세부적인 내용과 작가의 표현 기법에 주목하며 등장인물의 심리 변화, 상징과 은유, 모티프, 구조적 특성을 살펴보라는 류의 조언은 무시해라. 보려고 해도 안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 마음이 끌리는 책을 집어서는 가능한 한 정독(혹은 정독하기 힘들면 대충이라도)으로 끝까지 읽고 책에 붙은 해제로 마무리하는 정도로 족하다.
그러므로 재삼 강조하거니와 책을 읽기 위한 사전 조사보다는 책 자체에 집중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또한 책에 집중할 때는 배경 지식과 문학적 기법보다는 독자 마음의 흐름을 책의 흐름과 일치시키는 게 더 긴요하다.
사전 조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한강을 빼고는 외국어로 돼 있기에 어떤 출판사의 책이 번역이 더 잘 됐는지에 관한 세간의 평을 참조하는 게 바람직하다. 유명 출판사의 전공 교수 번역인데 번역이 좋지 않은 사례가 없지는 않으므로 어떤 번역본을 고를지 신경 써야 한다. 번역본이 여러 개라면 대체로 최근 출간일수록 번역이 더 정확하고 내용이 충실할 확률이 높다.
읽을 때는 책에다 밑줄을 치고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나중에 중고로 팔아 좋은 값을 받을 수 읽게 읽었다면 잘 읽은 게 아니다. 책을 읽고 나서 독서 노트에다 자신의 감상을 기록한다면 더 좋다. 관련 정보를 조사하는 것과 감상문을 적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독서 감상을 기록하는 것을 추천한다.
독서 토론은? 좋지만 독서 자체보다는 못하다. 독서모임을 하되 책을 제대로 안 읽고 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만일 책을 충실하게 읽고 독서모임을 한다면 구성원 중에 멘토가 있는 모임을 택하는 게 좋다. 도토리 키 재는 게 무조건 무익하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정신의 성장에는 자신보다 더 넓고 깊게 보는 사람의 조언을 받는 게 더 유익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노벨문학상 수상작처럼 욱여넣은 내용과 숨겨진 맥락이 많이 존재할 때는 멘토의 역할이 크다.
결론적으로 최고의 독서법은 무엇보다 자신을 믿고 무턱대고 읽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정신과 영혼이 필요로 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게 하라.
노벨문학상, '가장 확실한 읽을거리의 기준'
앞의 글은 필자가 정리한 노벨문학상 읽는 법이다. 최근 출간된 <노벨문학상 모두 읽기>(안치용 지음, 마인드큐브)에 수록된 내용이다. 이 책은 인류의 가장 탁월한 문학적 성취를 담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51인의 대표작 핵심을 총망라하고 분석했다.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라슬로 크라스타호르카이와 그의 대표작 <사탄탱고>의 핵심 내용까지 포함하였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신간 속에서 독자는 매번 "어떤 책을 읽어야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까?"라는 선택의 고민에 직면한다. '실패하지 않을 독서'로는 '노벨문학상 읽기'만한 게 없다. 노벨문학상은 주지하듯 단순히 언어의 아름다움이나 문장 기교의 완벽함만을 평가하지 않는다. 창립자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장 훌륭한 문학 작품"을 쓴 작가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인간의 정신과 영혼에 보편적으로 이로운 깊은 통찰, 사회적 정의, 그리고 인도주의적 가치를 담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1947년 수상자 앙드레 지드의 자기 탐구, 1946년 수상자 헤르만 헤세가 추구한 구도자의 정신 등 초기 노벨상 수상자부터 21세기의 최근 거장들까지 폭넓게 다루며, 독자들이 인생의 깊은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믿음직한 '문학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고자 <노벨문학상 모두 읽기>를 썼다. 앞서 언급한 사전에 알아야 할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내용'에 해당한다.
원하지 않게 독서 멘토가 된 지 20년이 되어간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에 특화한 독서 모임을 이끈 지도 10년 가까이 된다. 지난해 한강 작가의 수상을 독서 모임 회원들과 함께 진심으로 기뻐한 후 어찌어찌하다가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올해 수상작가 라슬로 크라스타호르카이(정확하게는 헝가리에선 우리처럼 성을 먼저 쓰기에 크라스타호르카이 라슬로가 맞다)는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하며 나 또한 영화 평론가로 흥미롭게 본 작품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노벨문학상 모두 읽기>에서 필자는 독자들이 '배경 지식'의 부담을 덜고, 작품 자체의 핵심 가치와 메시지에 순수하게 몰입할 수 있도록 가장 중요한 주제와 구성을 친절하게 짚어주려고 애썼다. 이 책은 이 책 자체를 읽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을 읽게 만드는 게 집필 의도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 중에 읽기 어려운 작품이 없지는 않다. 영혼과 정신의 성장을 위해 도전해 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