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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대화법

1. 말이 황금이 되는 조직

by 유키

"이번 프로젝트 진행은 어때?"

엘리베이터 안, 갑작스러운 사장님의 질문에 박 과장은 머릿속이 하얘진다.

"아, 네... 그게... 일단 기획은 거의 끝났고요, 개발팀이랑 미팅을 몇 번 했는데,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대체로 긍정적이고... 그런데 예산 부분에서 약간 조정이 필요할 것 같아서..."

딩동. 30초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사장님은 여전히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른다. 박 과장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둘 다 어색한 미소만 지으며 헤어진다.

이런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준비된 프레젠테이션에서는 막힘없이 발표하는 사람도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상사 앞에서는 횡설수설하기 일쑤다. 왜 우리는 짧고 명확하게 핵심을 전달하는 데 이토록 서툴까?

엘리베이터 30초의 진실

LG전자의 한 임원은 엘리베이터에서 직원들과 나누는 짧은 대화를 통해 조직의 건강도를 체크한다고 한다. "요즘 뭐가 제일 고민이야?" "진행 중인 프로젝트 중에 재미있는 거 있어?" 같은 질문을 던지고, 돌아오는 답변의 명확성과 구체성을 통해 그 직원의 업무 이해도와 조직의 소통 수준을 가늠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이 황금같은 30초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긴장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는 '컨텍스트 중독'에 빠져 있다. 모든 배경 설명을 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강박이 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30초 동안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모두 설명하려다 보면, 정작 중요한 현재 상황과 핵심 이슈는 전달하지 못한다.

둘째, 완벽주의가 발목을 잡는다. 100% 확실한 정보만 전달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대략적으로는" 같은 수식어를 남발한다. 결과적으로 메시지의 임팩트는 희석되고, 듣는 사람은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거야?"라는 의문만 남는다.

셋째, 위계 의식이 자연스러운 소통을 방해한다. 상사 앞에서 위축되어 평소의 논리적 사고력이 마비되고, 무엇을 먼저 말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한다.

스티브 잡스의 할머니 테스트

애플의 전설적인 CEO 스티브 잡스는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독특한 테스트를 했다. 팀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이 제품을 할머니한테 30초 안에 설명할 수 있어? 할머니가 이해하고 갖고 싶어 한다면 성공이야."

처음에 엔지니어들은 당황했다. 복잡한 기술을 어떻게 30초 안에, 그것도 기술을 모르는 할머니에게 설명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면서 그들은 제품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아이폰을 처음 발표할 때 잡스가 한 말을 기억하는가?

"오늘 우리는 세 가지 혁신적인 제품을 소개합니다. 첫째, 와이드스크린 터치 컨트롤을 갖춘 아이팟. 둘째, 혁신적인 휴대전화. 셋째,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기기. 아이팟, 전화, 인터넷 기기... 이해하셨나요? 이것은 세 개의 기기가 아닙니다. 하나의 기기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아이폰이라고 부릅니다."

복잡한 기술 설명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이해했고, 갖고 싶어했다. 이것이 간결한 소통의 힘이다.

PREP 공식: 체계적인 즉석 대화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엘리베이터 30초를 황금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 PREP 공식을 활용하면 된다. 이 공식은 스피치라는 학문에서도 말 잘 하는 사람들의 도구로 가장 중요시 되는 부분이다.

P - Point (핵심 결론):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먼저 말한다. R - Reason (이유): 왜 그런지 간단히 설명한다. E - Example (사례나 증거): 구체적인 예시나 데이터를 제시한다. P - Point (재강조): 핵심 메시지를 다시 한번 정리한다.

예를 들어보자. "신규 사업은 어떻게 되어가나?"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Point). 목표보다 2주 앞서가고 있거든요(Reason). 특히 베타 테스트 고객 만족도가 4.5점으로 기대 이상입니다(Example). 계획대로라면 다음 달 정식 출시 가능합니다(Point)."

15초면 충분하다. 듣는 사람은 현재 상황(순조로움), 근거(2주 앞섬), 구체적 성과(만족도 4.5), 향후 계획(다음 달 출시)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

숫자의 마법: 모호함을 명확함으로

"거의 끝났습니다" "반응이 좋습니다" "조금 지연됐습니다"

이런 표현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의'가 90%일 수도 있고 60%일 수도 있다. '조금'이 하루일 수도 있고 일주일일 수도 있다.

반면 숫자로 말하면 오해의 여지가 사라진다. "85% 완료했습니다" "만족도 평점 4.2점입니다" "3일 지연됐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황이 정확히 전달된다.

한 글로벌 컨설팅 회사의 커뮤니케이션 교육에서는 '숫자 말하기'를 첫 번째 원칙으로 가르친다. 실제로 숫자를 포함한 보고는 그렇지 않은 보고보다 신뢰도가 40% 높게 평가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실전 연습: Before & After

몇 가지 상황을 통해 연습해보자.

상황 1: 복도에서 만난 임원의 "신규 사업 어떻게 되가?"

Before (45초, 미완성): "아, 그게요... 시장 조사를 한 달 정도 했는데, 경쟁사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그래서 차별화 포인트를 찾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팀원들이랑 브레인스토밍도 여러 번 하고, 외부 전문가 자문도 받았는데..."

After (15초, 완성): "3개 후보 중 AI 교육 플랫폼으로 방향 잡았습니다. 경쟁사 대비 가격 경쟁력 30% 확보했고, 다음 주 투자 심의 준비 중입니다. 승인 가능성 높게 봅니다."

상황 2: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팀장의 "고객 미팅은 어땠어?"

Before: "네, 다녀왔는데요... 일단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얘기를 했는데..."

After: "긍정적이었습니다. 우리 제안에 80% 동의했고, 가격 조정만 되면 계약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내일까지 수정안 보내기로 했습니다."

아마존의 6-pager 문화와 TLDR

아마존은 회의 문화로도 유명하지만, 문서 작성 문화도 독특하다. 파워포인트 대신 6페이지 내러티브 문서를 작성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문단이다.

모든 문서의 첫 문단은 전체 내용을 30초 안에 읽을 수 있도록 요약해야 한다. 이를 'TLDR(Too Long, Didn't Read)'이라고 부른다. 바쁜 임원들이 첫 문단만 읽고도 핵심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 아마존 직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처음엔 6페이지를 한 문단으로 요약하는 게 고문 같았어요.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명확해졌습니다. 이제는 엘리베이터에서 누구를 만나도 30초 안에 설명할 수 있어요."

엘리베이터 대화법 일주일 훈련 프로그램

변화는 연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다음 일주일 훈련 프로그램을 따라해보자.

월요일: 한 문장 요약 연습 오늘 한 일을 퇴근 전에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오늘 나는 ___를 완성했다/진행했다/결정했다."

화요일: 숫자로 표현하기 모든 진행 상황을 숫자로 표현하는 연습을 한다. 퍼센트, 개수, 시간, 점수 등 구체적인 숫자를 사용한다.

수요일: 3포인트 정리법 복잡한 내용을 3개 포인트로 정리한다. 인간의 뇌는 3개까지는 쉽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목요일: PREP 공식 적용 모든 보고와 대화에 PREP 공식을 적용한다. 특히 이메일 첫 문단을 PREP으로 작성해본다.

금요일: 30초 스피치 연습 팀원들과 돌아가며 이번 주 성과를 30초 동안 발표한다. 타이머를 사용해 정확히 30초를 지킨다.

문화로 정착시키기: 지속 가능한 변화

개인의 스킬을 넘어 조직 문화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몇 가지 성공 사례를 소개한다.

한 IT 기업은 '엘리베이터 스피치 데이'를 만들었다. 매주 금요일, 무작위로 선정된 직원이 CEO 앞에서 자신의 프로젝트를 30초 동안 설명한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워했지만, 지금은 선정되기를 희망하는 직원이 늘었다. 자신의 일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자부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회사는 '원 페이지 보고서' 제도를 도입했다. 모든 보고서는 1페이지로 요약본을 만들어야 하고, 첫 3줄은 핵심 메시지만 담아야 한다. 이 제도 도입 후 회의 시간은 50% 단축됐고, 의사결정 속도는 두 배 빨라졌다.

간결함은 배려다

엘리베이터 대화법은 단순한 화술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시간을 존중하는 배려이고,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정리하는 사고력이며, 조직의 소통 효율을 높이는 핵심 역량이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듯이,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이다. 복잡한 것을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한 것을 단순하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소통의 기술이다.

다음에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를 만났을 때, 준비된 30초를 선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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