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고생이라고 읽고 사서 배움이라고 고쳐 읽는다
책 디자인이라고 쓰고, 사서 고생이라고 읽는다. 사서 고생이라고 읽고, 다시 ‘사서 배움’이라고 고쳐 읽는다. 졸업 전시로 책을 내놓은 뒤 많이 아쉬웠다. 마감에 쫓겨 작업 과정에서 제대로 배움을 소화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공들여 고생해보고 싶었다. 독립 출판을 하기로 한 뒤, 다시 디자인을 하면서 ‘제대로 배워보자’ 의미를 부여했다. 퇴근하고 또 편집하고, 주말에 또 고치고 하면서 스스로 바란대로 고생 중이다. 사서 하는 고생. 저에겐 직접 하면서 배워야 제대로 배운다는 고집스러운 생각이 있고요. 여기에 초심자가 ‘Learning by Doing’의 곤조를 실천하며 겪는 일을 좀 적어놓고자 한다.
1차, 2차를 거쳐 3차 수정 완료가 코앞이다. 이번 주는 내내 붙박이장처럼 작업실에 붙어 책 편집만 했다. 전시회 때 책 만든 걸로 자잘한 수정만 남은 거 아니었냐고? 아녀요. 그때 마감해서 인쇄한 책은 그럴싸하게 헐레벌떡 만들었지만, 자세히 보면 엉망이었다. 글자, 여백, 글줄의 위치… 이것저것 묘하게 뒤틀려 있다. 양심고백 해보자면 왼쪽 페이지와 오른쪽 페이지의 글줄 높이가 안 맞았다. 널뛰는 문장들. ‘기준선’이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고 책 디자인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내가 작업한 원본 인디자인 파일을 열어보면 텍스트 프레임을 한땀한땀 그린 기가 막힌 풍경을 볼 수 있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디자이너 친구 유민의 말을 빌리자면 금속활자공처럼 책을 만들었다는 소리다. 금속 활자 틀에 문장 하나하나 끼워넣듯이 엄청난 인내심만으로 밀어붙여서 완성한 게 이전의 작업이었다. 소담아. 현대에 살면서 왜 금속활자를 했냐.
1차 수정 때는 뭘 몰랐는지를 배웠다. 기본적으로 작업 세팅을 어떻게 하고 들어가야 하는지, 기준선은 무엇인지, 판면을 왜 다 맞춰야 하는지, 여백에 왜 일관성을 줘야 하는지 배웠다. 예를 들어, 하단 여백이 들쭉 날쭉한 경우가 있어서 수정 피드백을 받았다. 독자가 여백을 ‘다른 내용으로 넘어가기 전에 숨을 돌리는 부분’이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내용이 안 끝났는데,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1차 수정 때는 일단 기쁨이 컸다. 뭘 몰랐는지 드디어 알게 되었다는 기쁨. 게다가 기본만 제대로 적용해도 결과물이 훨씬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차이가 확연했다. 가려운 곳을 긁는 후련함이 있었다.
2차 수정부터 이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기본은 했는데, 기본만 했다. 그러나 기본적인 배움에도 너무 만족하고 놀랐던 초심자는 또 고칠 게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자기 시력이 나쁜 줄은 모르고 안경을 쓰니 세상이 더러워져 있더라는 이야기처럼. 2차 때는 어쨌든 희향이 준 한아름의 실전 피드백을 소화해보려 했다. 중복되는 공백을 빼고, 텍스트 프레임을 여러개 쪼개두었던 기존의 파일을 쇄신하고 문명인처럼 단락 스타일과 문자 스타일을 활용했다. 문자 찾기 기능을 활용했고, 시선의 흐름이란 걸 생각하면서 디자인을 수정했다.
그런데 1차 수정 때와는 다른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있었다. 이것저것 좀 해보다보니 자꾸 ‘새로운 버전’을 만들고 싶어졌다. 처음 시작할 때 기획에 없었던 컨셉을 넣고 싶어지거나, 이 폰트는 많이 썼으니 다른 폰트를 쓰고 싶다거나. 그렇게 해서 v1,v2가 계속 만들어졌고 클라우드에 연동된 폰트를 불러오다가 인디자인이 기절하는 일이 계속 발생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인디자인과의 사투.
폰트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지만 사실 인디자인 기절의 이유는 알 수 없다. 나중엔 클라우드를 다 꺼놔도, 사정해도, 협박해도 인디자인이 계속 기절을 했기 때문이다. 작업 파일을 날리지 않기 위해 Cmd+S(저장 단축키)를 베토벤의 비창을 연주하듯 간절하게 누르던 나를… 저장 버튼 자체를 비활성화해버리며 비웃던 인디자인… IDML이라는 저장 형식을 몰랐던 나… 절망에서 나온 후에는 작업 중 불현듯 발작하듯 저장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기절한 인디자인을 바라보며 최애 드라마인 ‘스토브리그’의 백승수 단장의 대사가 계속 생각 났다. 야구를 못하는 팀이어도 야구를 못하는 만큼만 못하고 싶지, 다른 것 때문에 못하고 싶진 않다고. 나도 디자인을 못 하는 만큼만 못 하고 싶지, 모니터 앞에서 미쳐가며 수정한 걸 또 수정하면서 못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무지개 우산처럼 생긴 아이콘이 돌아가던 모습. 백그라운드 작업창은 영원히 열려 있었다. 정신적 충격은 대단했다. 데미지 100… 매달 세금처럼 어도비에 5만원 씩 상납하는데…그날은 부조리한 어도비 세상에 항변하며 잠들었다. 잠자리에서도 외친 어도비 개새끼….
대망의 3차 수정. 중복 공백 삭제, 영문 찾기 등 GREP이라는 신문물도 쓰고 섞어짜기- 두 개 이상의 폰트를 섞어서 하나의 서체를 만드는 것도 시도해보았다. 1/6 공백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하며, 그 공백 하나가 만들어내는 차이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뭐가 어마어마하냐면 줄이 바뀐다. 단어가 밀려 내려간다.
독자들은 편집 디자이너가 당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모를 것이다. 독자의 시선 끝을 따라가며 더 편하게 읽도록 도우려고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글줄을 깎는다. 책마다 편집 디자이너들의 혼이 일부분 들어가있다고 보면 된다. 호크룩스 같은 거처럼… 나도 몰랐다. 길을 걸을 때 보도블럭 깔아준 분들의 수고를 매번 생각하진 않는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니까. 그러나 이제 나는 공감력이 미친 사람처럼 읽는 책마다 편집 디자이너들의 수고를 생각한다. 보도블럭을 하나하나 까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공사하신 분들의 노고에 감동하는 극F. 그렇게 되었다.
책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에 변태력이 묻어 있다. 꾸역꾸역 마감해서 퇴고하고 책을 써내는 작가도 변태다. 거기에 더해 글을 매만지는 편집자, 글줄 길이를 조정하고 줄간격으로 시선에 힘을 더해주고 숨쉴 틈- 여백을 배치하는 디자이너도 변태력이 낭낭하다. 종이 하나를 고를 때도 그렇다. 적절한 종이를 페이지가 가볍게 바람에 넘어가는 소설인지, 한 장 한 장 큰 도화지 그림 넘기듯 보는 동화책인지- 그 차이를 생각하며 종이를 고르고 매만진다. 책 만드는 사람들은 아주 배운 변태들이다. 참 좋아. 나도 이왕지사 하는 거 1인 3역을 적당히 잘 하는 변태가 되고 싶다. 진짜 진짜 변태까지는 되기 힘들 것 같고요…
잠자리에서도 외친 어도비 X새끼….
끝.
움직임의 모양 독립 출판을 준비하며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