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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그 날 저녁의 연남동

하우투 스몰 브랜딩 - 6. 브랜드 경험

나는 골목을 좋아한다. 차가 오지 않을까 해서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큰 길은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느린 속도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골목길을 좋아하는 건 꼭 나 뿐만은 아닌 듯 하다. 이제 가로수길이나 경리단길은 오히려 올드한 느낌을 준다. 힙지로나 송리단길처럼 비교적 최근에 알려진 골목들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최고의 골목은 연남동이었다.


어느 해인가 취재를 핑계 삼아 연남동을 찾았다. 지금은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그 저녁에 히레 카레와 카페 이상을 들렀다. 그 중에서도 카페 이상은 나이가 좀 있어보이는 주인이 직접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다양한 커피를 맛보았다. 아예 커피를 물에 넣고 끓이는 특이한 터키 커피도 맛볼 수 있었다. 흡싸 80년 대의 조용한 선술집 같은 분위기였다. 커피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한 그날 저녁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브랜딩과 마케팅의 차이를 혼란스러워 하곤 한다. 나는 그 차이가 제품과 서비스를 넘어선 가치의 발현에서 온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배기량이나 속도와 같은 숫자로만 바라본다면 그건 마케팅이다. 하지만 미니의 감수성이나 랜드로버의 야생성을 떠올린다면 그건 브랜딩의 영역이다. 제품과 서비스의 쓸모를 넘어선 차별화된 가치, 혹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브랜딩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것이다.


디즈니랜드를 놀이공원으로 본다면 마케팅에 머무르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과 아이들에게 판타지를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건 브랜딩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디즈니랜드에 있는 식당에 부부가 찾아왔다. 그리고 3인 분을 주문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종업원이 이유를 묻자, 지금은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이가 이 곳의 음식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종업원은 말없이 아이용 의자를 세 번째 그릇 앞에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어떤 브랜드를 '경험'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손님들의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해 비밀 터널을 뚫은 디즈니랜드의 노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냥 좋은 제품 만들어 싸게 팔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브랜딩은 그저 사치요 포장일 뿐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숫자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친구가 강추하는 울산의 '나사리 식당'을 찾아보니 같은 장소에 찍은 듯 한 사진으로 가득했다. 친구는 그곳을 '뷰 맛집'이라고 불렀다. 사진을 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민국에 딱 하나 있을 법한 풍경에 나도 반했으니까 말이다.


젠틀몬스터가 오래된 목욕탕에 매장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안경을 팔기 위한 목적이라면 그처럼 비효율적인 투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젠틀몬스터가 이 매장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제품만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얼마나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인지를 공간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이런 매장을 기획할 정도라면 선글라스 하나를 만들더라도 세상에 없던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매장은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오감으로 보여주는 그런 도구의 하나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광고 메시지는 영상이나 활자로 한정되어 있었다. 또한 지극히 수동적인 방식으로 전달되었다. TV와 라디오를 통한 반복적인 노출로도 충분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카페 하나를 해도 특별한 경험을 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곧 다른 카페를 찾아 쉽게 떠난다. 자신만의 차별화된 취향을 오감으로 경험케 하는 컨셉 없이는 이제 카페 하나도 살아남을 수 없다. 오래 전 그 날 저녁, 카페 이상이 보여주었던 그런 경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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