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을 넘으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하나 둘 생긴다. 첫 번째가 노안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시력 하나만큼은 자부하던 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가까운 글자들이 잘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결국은 안경을 맞췄고 세 세상이 열렸다. 배가 나오고 살이 찌기 시작했다. 지금은 다행히 이전 몸무게로 돌아왔지만 간만에 만난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나잇살이 느는건 금방이었다.
하지만 노인이든 뱃살이든 전립선이든 그건 그냥 세월의 탓이라고 치부하고 방법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하나 둘씩 끊어지는 관계의 아픔은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어느 날 부터였다. 벌이가 조금 좋아진 나는 친구들에게 자주 밥을 샀다. 마장동도 가고 호주산 고베를 파는 소고기 집도 갔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1도 없었다. 솔직히 친구들 가운데 아직도 집이 없는 사람은 나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친구들 중 한 명이 '내가 사는 소고기는 먹지 않겠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자격지심의 발로라고 생각할 뿐이다.
또 다른 친구는 아주 사소한 이유로 연락이 끊어졌다. 항상 스마트폰 카메라를 불평하던 친구였다. 두 번 정도 내가 쓰던 스마트폰이지만 사양이 훨씬 좋은 핸드폰을 선물했다. 우리들의 추억을 이걸로 기억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하지만 친구는 그때마다 그 선물을 자신의 와이프에게 그냥 주어버리곤 했다. 두 번째는 꼭 직접 써달라는 부탁을 했는데도 어김없이 와이프에게 넘기곤 '그래 됐뿟다'라고 했다. 술 한 잔 하고 서운하다고 말했다. 친구는 다음 번 집들이 때 나를 부르지 않았다.
바야흐로 상실의 시대다. 내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같은 제목의 책을 썼지만 실제 그 책의 제목의 '노르웨이의 숲'이다. 하지만 그 책엔 뭔가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젊은 날의 하루키가 있다. 술과 음악 여자가 가득한 인생을 살지만 웬일지 그때의 그는 '상실'이란 말이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젊은 날의 상실은 멋이라고 있다. 하지만 나이 오십이 되면 그 상실은 후줄근한 느낌이 강하다. 멋내기를 포기한 아저씨들이 사시사철 등산목을 입는 것처럼 힙하거나 트렌디한 느낌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나이듦'이 어떤 방식이로든 새어나올 뿐이다.
일 때문에 어그러진 관계는 또 얼마나 많던가. 독립 후 8년 이상 수많은 회사와 일해오면서 상처도 참 많았다. 고객들은 다양한 이유로 클레임을 건다. 일정을 지키지 못해, 디자인이 마음에 안들어, 글이 내 생각과 달라, 내 책은 왜 마케팅을 안해주나요... 내가 게으른 탓도 있지만 1인 기업으로서의 한계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일도 많았다. 심지어 내용증명을 보내고 소송을 걸어온 사람도 있었다. 8개월 만에 승소를 했지만 상처가 작지 않았다. 그 사람은 어떻게든 나의 무능함과 무심함을 판사에게 각인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무서웠던 포털 사이트 검색 첫화면에 올라온 그의 글이었다. 평판이 전부인 나에게 그 글은 얼마나 나를 마음 졸이게 하고 불편하게 했던가.
지금보다 젊었던 날엔 '최선'이 가능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패기와 열정 대신에 중도와 적정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변하는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을 구분할 지혜가 필요한 시간임을 느낀다. 떠나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지 않는 데에는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상실은 계속되지만 끝내 지켜야 하는 '나다움'에 대한 필요는 더욱 커진다. 타인의 부정에도 지켜야 할 나의 세계가 더욱 간절해진다. 내가 나에게 실망하기 시작하면 그건 정말 '상실'이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이유도 어쩌면 그 상실의 공허감을 이기기 위한 몸부림인지 모른다. 아빠는 공감력이 떨어져, 하는 말에는 마음을 기울여 듣는다. SNS에 정치적인 글은 올리지 말라(그런 내용도 아니었지만)는 클라이언트의 부탁을 받고 관련 글을 바로 지워버렸다. 괜한 고집을 부릴만한 정치적 신념 따위는 내게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앞으로도 다양한 상실들이 나를 찾을 것이다. 건강, 관계, 혹은 돈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나다움'을 고집해보려 한다. 굳이 떠나보내야 한다면 마지막 포옹 정도의 예의는 갖추고 싶다. 내가 회사를 떠나올 때마다 상사와 대표를 안아주었던 것처럼. 그것이 내 삶을 향한 최고의 예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