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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빅 스텝big step을 걷기로 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 한 권의 책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은 말이다. 바로 '스몰 스텝'이란 책이다. 이 책은 그 판매량만 놓고 보자면 대단한 책은 아니다. 지금까지 11쇄, 약 만 권 정도가 판매되었다. 하지만 판매된 수만 가지고 말할 수 없는 수많은 변화들이 따랐다. 일단 1,000명 이상이 모인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다양한 스몰 스텝을 실천하는 33개의 단톡방들이 새로 만들어져 독립했다. 코로나 전까진 매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이 주제로 모임을 열었다. 10여 명의 운영진들이 무보수로 이 모든 활동을 도왔다. 모임에 참여하던 작가의 도움으로 '세바시'에도 출연했다. 그 영상은 60만 이상의 조회수를 올렸다.


하지만 변화는 이곳에서 끝나지 않았다. 삼성인력개발원에서 강연을 했다. 1시간 반 가량을 강연하고 300만원을 받았다. 그 전후로 7개 정도의 계열사에서 같은 주제로 강연을 했다. 삼성중공업 담당자가 '스몰 스텝'이란 이름으로 사내 캠페인을 하겠다며 동의를 구하는 전화를 받은 것도 그 즈음이였다. 출판사 편집자들도 함께 움직였다. 여러 곳의 제안을 받아 스몰 스텝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스몰 스테퍼스'라는 책을 썼다. 스몰 브랜드의 이야기를 담은 책과 글쓰기에 관한 책도 함께 썼다. 브런치에서는 은상과 특별상을 연달아 수상했다. 그 이력들이 총 4권의 내 이름을 건 책을 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연달아 내 수입도 달라졌다. 마흔 중반, 내가 회사에서 받은 마지막 연봉은 4000만원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3년 간 월 수입은 SNS에서 그토록 회자되던 '월천러'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매출이 아닌 순수익이 그 정도 되니 미대와 음대를 준비하는 두 아이의 뒷바라지를 감당할 수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일단 친구들에게 서 너 번 소고기를 살 수 있었다. 300만 원짜리 아들의 기타를 사줄 수 있었다. 비록 뒤늦게 정신을 차려 모두 처분했지만 에어소프트건이라는 장남감 총을 사는 데만 대략 700만 원 정도를 썼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같은, 좋아하는 IT 기기들을 샀다 파느라 당근을 제 집 드나들 듯 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변화를 겪으며 '스몰 스텝'을 계속 했을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일단 건강을 위한 달리기를 시작했다. 전형적인 스몰 스텝이었다. 하루 2분 걷고 1분 달리기에시 시작한 러닝은 두 번의 10킬로미터 완주를 가능케 했다. 고지혈증 약과 혈압 약을 끊었다. 매일 세 줄 쓰기는 '스레드'에 글을 쓰는 것으로 대신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쓰던 글을 PDF로 모아 '스몰 스텝의 정석'이라는 전자책을 만들어 500여 명에게 무료 배포했다. 그 덕분인지 지금의 스레드 팔로어수는 7000명을 넘어섰다. 스몰 스텝 모임이 코로나로 와해된 이후로 스몰 브랜드과 관련된 커뮤니티를 새로이 만들었다. 약 2년 간 수백 명의 사람을 만났다. 그렇게 공저로 또 서너 권을 더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아예 '비버북스'라는 출판사를 새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7권의 책을 만들었고 올해에 만 대여섯 권의 책의 출간을 준비 중에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게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스몰 스텝이 아니고 빅 스텝이군요!"


솔직히 나는 스몰 스텝을 쓰던 그 당시의 많은 것들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시 우울증에 빠지거나 공황장애로 고생하지도 않는다. 그대신 내가 하는 일의 '규모'를 고민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들에게 스몰 스텝과 브랜딩의 유익은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은퇴를 앞둔 4,50대들의 세컨드 커리어를 도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식당, 병원, 학원, 카페 같은 스몰 브랜드의 마켘팅을 도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모든 사업을 지속가능한 형태의 비즈니스로 확장할지를 더 고민하게 되었다. 출판만 해도 그렇다. 처음엔 그저 책을 내는 것으로 만족하던 시기를 지나 나 자신이 마케팅과 브랜딩을 고민하게 되었다. 한 권의 책을 마케팅하기 위해 나는 17개의 실행 전략을 수립해 하나 하나 실천하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스몰 스텝 방식이다. 하지만 그 모습은 더이상 '스몰small'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본다. 사실 지난 8년 간의 기록을 크다big고 보기엔 남부끄러운 면이 없지 않다. 흔히 말하는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이력이다. 나는 아직 내 집도 없고 자산이라 할 만한 은행 잔고도 없다. 하지만 생각의 크기만은 확실히 자랐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다음 날 아침의 출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스몰 스텝에 이어 스몰 브랜드와 세컨드 커리어라는 분명한 삶과 사업의 키워드를 갖게 되었다. 재수 중인 딸이 어느 날 내가 하는 일을 배우고 싶다고 고백해왔다. 지금도 날마다 그 결심이 갈대처럼 흔들리는 중이지만 흐뭇한 마음을 감출 길 없다. 무엇보다 나는 내 일이 너무 좋고 재미있고 보람되다. 각자 자기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날마다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빚어내는 일이 너무 좋다. 원고를 만질 때마다 나는 마치 첫 수업을 기다리는 대학교 신입생 같은 마음이 된다. 나는 정말로 이 일이 너무 즐겁다.


그렇다고 고민이 없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1인 사업가의 삶은 매달 돈과의 전쟁이다. 월급처럼 돈이 들어오지 않으므로 1년에 한 두번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분명 들어올 돈이 있는데 당장의 현금이 없어 곤란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난 8년을 위태롭지만 쓰러지지 않으며 꿋꿋이 걸어왔다. 식당 홀 매니저로 지금도 일하고 있는 와이프의 도움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1년 반 동안의 경험도 한 권의 책으로 기록해 세상에 내놓을 생각이다. 무엇보다 수십 명의 새로운 저자를 만나 그들과 함께 비즈니스를 도모하고 있다. 디자인, 마케팅, 컨설팅, 모임 진행, 오프 모임 등 그 분야도 다양하다. 아마 내가 그들에게 사기라도 쳤다면 결코 이런 협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여러모로 도움을 준 작은 회사들의 수도 100여 개를 가리킨다. 직원 수와 매출의 규모를 굳이 따지지 않는다면 나는 이렇게 고백하고 싶다. 이제 나는 스몰 스텝이 아닌 빅 스텝을 걷는다고 말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세줄일기를 쓰지 않는다. 그 대신 브런치와 스레드를 포함한 다양한 SNS에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생각을 올린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산책을 하지 않는다. 그대신 집 근처 율동 공원을 여러 바퀴씩 달린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출근 전 두 시간 동안 글을 쓰지 않는다. 그 대신 출판사를 만들어 십 여권의 책을 만든다. 게다가 나는 더 이상 출근도 하지 않는다. 하루에 서너 개의 카페와 공유 오피스를 전전하며 새로운 비즈니스를 기획하고 실행한다. 이제 더는 혼자 일하지 않고 '규모'와 '구조'를 만드는 일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건강과 재정, 그리고 수익을 만들어내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일이 너무 즐겁다. 크고 작은 투자를 받아 사업의 규모를 확장하는데 온 힘을 쏟는다. 그러나 나는 이 빅 스텝의 Big이 보폭의 크기를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때의 빅big은 다름 아닌 내 생각의 크기size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꼽으라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꼽겠다. 이 노인은 80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하던 불행한 인생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노인의 의지와 생명력 만큼은 그 어떤 어부보다도 컸다고 생각한다. 엄청난 크기의 청새치를 잡고도 모두 상어에게 뜯기고 빼앗겼던 그 순간에도 노인의 삶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보다도 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도 사장의 꿈을 꾸었던 노인의 삶을 동경한다. 그의 삶은 일견 작아small 보엿을지도 모른다. 가짓 것이라곤 작은 배 하나와 뼈만 남은 청새치였으니까. 그러나 노인은 사자의 꿈을 꿀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단잠을 자고 나면 또 바다로 나갔으리라. 나는 그런 노인의 마음으로 스몰 스텝을 넘어 빅 스텝으로 나아가려 한다. 이 기록은 그런 의미에서 빅big 스텝이라 부르고 싶다. 8년 전의 껍질을 깨고 일어난 나는 더 이상 그때의 내가 아니다. 나는 이제 스몰 스텝이 아닌 빅 스텝big step을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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