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성필 Oct 17. 2018

점심시간에 맞춰 짜장면 배달시켜 놓을게

아이들과 나누고픈 내 부모님과의 추억 - Episode 3

고향인 대구에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집에서 큰길을 하나 건너 맞은편 언덕 위에 있었다. 중간에 신호등 딸린 횡단보도가 변수로 작용하긴 했지만 초등학생 걸음으로도 15분 정도면 충분히 걸어서 갈 수 있었고, 뛰어가면 5분 남짓 걸렸다. 간혹 준비물을 깜빡 잊고 가져오지 않은 날이면 학교에 도착했다가 다시 뛰어가서 가지고 오곤 했다.


어릴 적 나는 짜장면을 무척 좋아했다. 원래 밥보다 면을 더 좋아하는 데다가 중국 음식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이끌림이 있어서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지금이야 거리 곳곳에 일본, 인도,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의 음식점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풍의 레스토랑 등이 넘쳐 나지만, 70년대 중후반 시절엔 중국 음식만 먹을 수 있어도 감지덕지였던 시대였다. 그 당시엔 피자, 햄버거, 치킨처럼 아이들이 먹을만한 게 많지가 않았다. 그나마 학교 앞 분식점에서 파는 떡볶이나 어묵이 도시락을 먹고도 허기진 아이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위안거리였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짜장면 가격이 300~400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학교 앞에서 파는 어묵 가격이 하나에 10~20원 정도 했으니, 짜장면은 먹고 싶을 때마다 쉽사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학교 시험을 잘 봤다든가, 통지표를 받아왔는데 '수'가 수두룩하다든가, 아니면 일 년에 한두 번 초청을 받아서 간 친구 생일 파티에서나 맛볼 수 있는 게 짜장면이었다. 탕수육까진 상상도 못 하였고, 그저 짜장면만 있으면 훌륭한 생일 파티라는 등식이 성립될 때였다.


몇 해 전에 둘째 지훈이가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청받아 간다고 했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친구가 근처 '롯데리아'에 20명이 함께 하는 자리를 만들어서 생일 파티를 한다고 했다. 생일 파티를 하는 친구도 드물었고, 하더라도 집에서 정말 친한 친구 몇 명만 불러서 같이 즐겁게 놀았던 나의 어린 시절과는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어릴 적 나는 시험 성적으로 어머니와 자주 내기를 했다. 이번 중간시험 성적이 평균 몇 점을 넘으면 짜장면을 시켜달라든지 아니면 특별 용돈을 달라든지 했고, 좀 더 커서는 새 운동화를 내기로 걸기도 했다. 사실 어머니와의 내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계속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잃을 것 없이 내 노력 여하에 따라 전리품(?)을 챙길 수 있어 좋았고, 어머니께서 성적을 잘 받아왔는데 그깟 운동화가 대수냐며 늘 내기에 응해주셨다. 물론 내가 질 경우엔 소위 국물도 없는 냉정함과 엄격함을 유지하셨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나는 달리기가 제법 빨랐다. 어머니와의 내기에서 따낸 짜장면을 먹기 위해 점심시간이 시작되면 집까지 달려와서 어머니께서 시간에 맞춰 배달시켜 놓으신 짜장면을 맛있게 먹고, 다시 학교까지 달려오면 오후 수업시간까지 꽤 여유가 있었다


물론 점심시간에 집에서 짜장면을 먹고 온 얘기는 어머니와 나만의 비밀이었고, 그런 식으로 두어 달에 한 번씩 먹는 짜장면은 나름 특별한 맛과 재미가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나와는 달리 면 종류의 음식을 즐겨하시지 않으셔서 내가 짜장면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시면서 흐뭇해하시는 얼굴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세월이 흘러 나는 어머니와의 성적 내기 방식 그대로는 아니지만 엇비슷하게나마 내 아이들에게 성적 내기를 적용하고 있다. 요즘 시대는 이전보다 훨씬 성적 지상주의에서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나는 아주 기본적인 성적을 기준으로 아이들에게 내기를 제안하고, 대부분 내가 질 수 있는 개연성이 많은 수준에서 합의를 본다. 힘들고 어려운 공부를 하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즐거운 마음으로 동기 부여가 되길 바라는 차원에서다. 수십 년 전 내 어머니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과는 짜장면으로는 내기가 성립이 안 된다. 그랬다가는 아마 SNS 상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 우리 아빠 이상하다고...


아이들이 나를 닮아서인지 면 종류의 음식을 좋아한다. 라면은 또 왜 그렇게들 좋아하는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전히 나는 밥보다 면 종류의 음식을 더 좋아했다. 그런데 이제 50넘어선 나이도 있고, 건강 관리 차원에서 면 종류의 탄수화물 섭취를 최대한 줄이고 있는 중이다.


불현듯 다음번에 고향 본가에 갈 때에는 어머니 앞에서 오랜만에 짜장면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께서 내 초등학교 시절에 시켜주신 특별한 짜장면 맛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 장대비와 바나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