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피지 않는 사람은 군대에서 작업을 쉬는 시간이 되어도 좀처럼 쉴 수가 없는 법이다. 담배 한 대 피우고 하자, 라는 말을 신호로 불나방 같이 모여드는 동기와 후임과 선임을 뒤로 하고 비흡연자는 묵묵히 하던 삽질을 계속해야 한다. 그때마다 차라리 흡연자가 되어 저 무리 속에 앉아 나도 같이 쉬고 싶다는 생각을 꽤 여러번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끝내 담배를 습관에 들이지 않는 것이 나름대로 내 인생에서 가장 훌륭히 자유 의지를 사용한 일 중에 하나라고 나는 생각하곤 한다.
밥을 먹고 나면 담배를 태우는 게 국룰이라고 한다. 이를 일컬어 식후땡이라고 한다. 한자어와 의성어를 조합한 이 단어를 누가 처음 생각해냈는지 몰라도 참 기가 막힌 이름이다. 식후땡. 그걸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이름. 그걸 하는 일이 무언가를 확실히 매듭짓는 다는 기분이 드는 이름. 이름이 그래서 중요한 모양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글쓰기 선생이 있고, 교재가 있고, 블로그가 있다. 글쓰기 교재는 나도 좋아하는 편이라 상당히 읽어본 축에 속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교재야말로 나를 글쓰기로 인도해 주었다라고 꼽을 만한 책은 지금 딱히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좋은 말씀을 되새긴다고 꼭 좋은 인간으로 사는 건 아니듯이, 때때로 글쓰기 교재는 글을 쓰지 않는 시간에 소일 거리로, 혹은 자기 변명처럼 읽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도 같다.
문득 나는 내 글에 라벨을 붙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참기름통에 참기름하고 써서 붙이듯이 이 무형의 공간 위에도 라벨을 하나 붙여두면,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 지금도 이 공간에는 여러 라벨이 붙어 있지만, 아직까지 작명이 효과적으로 작동한 사례는 없다. 이름을 붙일 때는 참 그럴싸하다고 자신만만해 하다가 며칠 지나고 나면 뭐 이런 허접한 이름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사람은 후회하는 동물이라지만, 후회가 잦고 또 짧다.
그래서 다시 문득 차라리 이것을 식후땡 같은 기록이라 여기기로 했다. 밥을 먹고 꼭 해야 하는 일이긴 하되 뒤돌아보지 않는 행위, 하고 나면 개운하지만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는 행위. 그런 라벨을 붙인 상자 안이라면 나도 자기 검열 없이, 자기 비판 없이, 구색을 맞추려는 이런저런 애씀없이 글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근데 그러고 보니 여기 라벨은 식후땡 같은 기록이 아니라 자음의 기록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