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음의 기록

by 자음의 기록

아까 글에 이어서... 자음의 기록이라 라벨을 붙여놓고 실컷 식후땡 같은 기록에 대해 이야기하다니, 앞뒤가 안 맞아도 이렇게 안맞을 수 있나. 사실 자음의 기록이라는 표현이 좀 괜찮아 보인다고 스스로 생각하던 터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뭔가 에세이 제목 같기도 해서 어딘가에는 써먹어보자 하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브런치 필명을 바꾸고 싶기도 해서 이걸로 바꿔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자음과 모음은 우리 아이들 이름이었다. 실제로는 다른 이름을 지었지만, 아이가 생겼을 때 나는 진지하게 아이들 이름은 자음과 모음으로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사실 그때만 해도 둘째는 생각도 하지 않던 터라 하나만 낳으면 '자음'만 있을 텐데 왜 자음과 모음이라는 단어의 쌍을 떠올렸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결과적으로는 둘째도 태어났으니 자음이라고 지었어도 괜찮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음은 소리가 없다. 아니 정확하게는 소리가 있는데 자음만으로는 소리를 낼 수가 없다. ㅋ을 흔히 크크크로 읽지만 사실 ㅋ만으로는 아무소리도 나지 않는다. 어떤 모음이 되었든 간에 붙어야 쾌쾌쾌든 캬캬캬든 소리가 되어 나온다. 그래서 자음은 참 이상한 소리다. 소리인데 소리가 나지 않는다니. 궤변도 아니고.


어느날 문든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라는 인간이 자음을 닮았다고. 나는 평소에도 말이 거의 없고 친구 관계도 맺지 않는다.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 나가는 것도 꺼려하고 모임에서 의견을 드러내는 일도 드물다. 그래서 어떤 생각까지 했냐고 하면, 만약 내가 갑자기 죽더라도 따로 연락을 하지 않는 이상 죽었는지도 모를 사람이 대부분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소리는 소리인데 소리가 나지 않는 소리인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아이에게 자음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건 좀 잘못된 판단이겠다는 생각도 든다. 소리가 나지 않는 소리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어주는 건 좀 지나치달까.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아니 어른이 감당하기에도 좀 기분나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자음이라고 생각하는데 별로 불만이 없다. 그게 사실과 제법 잘 맞아떨어진다고까지 느낀다. 말하자면 내가 '자음'이니까 내가 쓰는 글은 자음의 기록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더군다나 따지고 보면 세상에는 살다가 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다가 가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가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자니 어쩌면 나말고도 세상에는 수많은 자음이 살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사자들은 기분이 좀 나쁠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꼭 억울하거나 기분 나쁠 일만은 아니다. 모음을 보면 자음이 없이는 소리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자음을 만나야만 모음은 다채로운 소리를 낼 수 있다. 모음 혼자서는 아아아라든가, 이이이라든가 오오오같은 소리밖에 낼 수 없다. 이중모음을 낸다고 딱히 화려하게 들리지도 않는다. 역시나 자음이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음의 기록은 모음의 기록이기도 하다. 자음이 어떤 모음을 만나 어떤 소리를 내는지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래도 굳이 모음의 기록이라고 제목을 정하지 않은 건, 글쎄 정서상 내가 자음 쪽에 가깝다고 느껴서인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의미로는 자음이어도 상관없다는 뜻도 있다. 모음을 만나 다채로운 소리가 되는 일도 좋지만, 모음을 만나지 못해 자음으로 살다가 자음으로 죽어도 별로 섭섭한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식후땡같은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