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알바는 천한 일인가?
혼자 일하는 것,
우리는 그걸 프리랜서라고 부른다.
집이나 개인 사무실, 카페 같은 장소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프리랜서가 아니면서 직장에 출근해서도 혼자 일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쿠팡에서는 그,
출근해서 주변에 수많은 사람이 있음에도 혼자 일하는 게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혼자 일할 수 있다는 건 업무 시간에 다른 이와의 대화 없이, 혹은 간단한 의사소통만으로 일하는 게 가능하다는 뜻일 텐데 쿠팡에서는 그게 된다.
사람이 싫거나 관계를 맺는 일에 지쳤거나 애초에 다른 누군가와 소통을 하는 일이 두렵다면 쿠팡은 잘 맞는 일자리일 수도 있다.
물론 처음에 일을 배워야 할 때라면 소통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 없이 충분히 혼자 일을 할 수 있는 시점은 금방 찾아오고, 그때가 오면 더 이상의 대화는 별로 필요가 없다.
출근을 하면 어느 층에서 일할지 배정이 되고, 배정받은 층의 관리자는 오늘은 어떠 어떠한 일을 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특히 출고의 경우는 pda에 원바코드로 로그인을 하고 나면 업무시간 내내 사람이 아닌, pda로 업무지시를 받을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실제로 네와 아니오 만으로 하루를 보내는 게 가능했는데 굳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의지가 없다면 쿠팡은 군중 속에서 혼자 일할 수 있는 희한한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쿠팡을 다닌 경험이 꽤 되어 보이는 사람들임에도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걸 금방 알게 됐다.
소위 쿠팡의 ‘고인 물’이라고 하는 계약직들의 경력에 대해서 내가 과소평가했다는 것도.
좀 길게 쿠팡에서 일한 사람이 1-2년 정도 될까? 하고 생각했던 것인데 워낙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고 때문에 경력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믿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젊은 사람들은 당연히 다른 일을 찾아서 쉽게 떠날 거라고 믿었고 나이 든 사람들은 힘든 일을 더 감당할 수 없어서 오래지 않아 떠나게 되지 않을까 싶었던 거였다.
하지만 서른 안팎의 젊은 사람들의 3-4년은 쿠팡에서 기본적인 경력이었고 나이 든 사람들조차 물류센터를 옮겨가며 여러 해를 넘겨 근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보다 흥미로운 건, 일을 하면서 소통이 별로 필요 없는 까닭인지 몇 년째 같은 공간에서 일했던 사람들끼리도 다른 이들이 몇 년을 일했는지에 대해선 잘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서로를 너무 모른다는 것보다 더 납득이 안 갔던 건 그들이 왜 쿠팡에서 그토록 오래 일하는 것인지, 왜 센터를 옮겨가며 계속 쿠팡에서 일하는 지였다.
내가 내린 결론은 그들에게 쿠팡이라는 직장이 잘 맞거나, 익숙함이 좋은 것이라고 여기거나 쿠팡에서 쌓은 숙련도를 포기할 수 없거나.. 그 모든 걸 더해서 그저 쿠팡을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쿠팡을 좋아해서 계속 일한다는 것만큼 간단한데 이해가 어려운 결론이 없었다.
쿠팡이 쿠팡을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상상이상으로 가혹한 곳은 아니다.
현실이란 항상 생각보다 더하거나 덜하기 마련인데, 쿠팡은 후자였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애정을 갖고 이 공간에 적응할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런 곳인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러다 불현듯 나 스스로가 직업에 귀천을 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나는 당연히 쿠팡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더 편하고 더 많은 돈을 받으며, 사회에서 더 대접받는 직장으로 옮기고 싶어 할 거라 여기고 있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적지는 않을 테지만 쿠팡을 진정 좋은 직장이라 믿으며 열심히 다니고 있는 사람들 또한 많을지 모른다는 사실은 철저히 무시했던 것이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쿠팡 알바를 시작했는데, 결국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게 무엇을 위해서인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직장을 구해서 평생 열심히 일하다가 은퇴하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말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돈과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은 행복한 인생을 위한 수단이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직업과 재산이 나 자신을 대변하게 됐다.
많은 돈을 버는 직업은 신분이 되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일이 가장 좋은 직업일 텐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직업을 원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거였다.
쿠팡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처럼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마지못해 일하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정말 충만한 만족감으로 일하는 사람들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나이 마흔을 넘겨서야 비로소 뼈저리게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사실을 새로 배우게 되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