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와의 고독한 싸움 icqa
물건이 들어가고, 그 물건이 사람들에게 팔려서 전국 각지로 나가는 것.
그게 바로 쿠팡 같은 이커머스 회사의 핵심이다.
쿠팡에는 입고와 출고 일이 가장 많고, 그래서 공정을 선택해야 할 때
입고와 출고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되지만 쿠팡에서는 입고와 출고 사이에도
다양한 일들이 자리하고 있다.
물류 창고에 들고나는 물건이 있으니 재고조사가 필요하고,
물건이 사람들의 손을 거치다 보면 사고가 나거나
제자리를 잃을 수도 있으니까 사후처리도 있어야 한다.
쿠팡은 멤버십에 가입할 경우 반품이 자유롭기 때문에 반품 물건에 대한 관리도 일이 많다.
내가 입고와 출고에 이어서 해보고자 한 일은 일명 재고조사팀으로 알려진 icqa 공정이었다.
icqa는 inventory control quality assurance 의 약자로,
재고관리와 품질 보증이라는 말로 간단하게 설명이 가능하다.
일단 뜻은 알았지만 쿠팡 같은 물류 창고에서 재고관리와 품질 보증 일을
어떻게 한다는 건지는 좀 의아하긴 했다.
icqa는 입고나 출고 일처럼 눈에 확 띄는 일이 아니었는데,
큰 규모로 진행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근데 그 말인즉슨 일을 해보고 싶어도 빈자리를 못 찾게 될 가능성이 높은 일이기도 하다는 것.
하지만 다행히 쿠팡은 신규에게는 어느 정도 다양한 기회를 허락하는 관대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물론 그건 인력풀을 넓히고 그 풀에서 헤엄치는 후보들을 더 많이
채우기 위해서지만, 그 깊은 의도가 어쨌든 나는 출고 공정에 이어서
icqa 공정 일을 신청했고 확정을 받았다.
쿠팡에 가기전에 찾아본 icqa에서 내가 (아마도) 하게 될 일은
물건의 숫자를 세는 일인 것 같았다.
쿠팡에는 일단 해봐야 알게 되는 일들이 많았으니,
그렇게해서 알게된 icqa 재고조사는 쇼핑 바구니와 pda 의 그리고 고독의 콜라보 공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재고조사에 사용되는 장바구니는 흔히 마트에서 당연하게 집어들게 되는
평범한 회색, 검은색 플라스틱 장바구니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단 하나, 고리가 달려 있다는 게 다른점이었는데
고리는 상품이 진열된 선반에 걸어서 바구니를 고정시키는 용도다.
바구니를 선반에 건 후 진열된 물건들 중 pda가 재고를 세라고
지시한 물건의 정확한 숫자를 세는 것이 icaq의 재고조사다.
자세히는 알 수 없어도 이게 필요한 이유는 입고, 출고 모두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실수를 피하기 어려운 탓이다.
진열을 할 때 30번 선반의 맨 윗 선반에서 세번째 칸에 진열하겠다고
pda에 등록을 해놓고 막상 두번째칸에 넣을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니까.
바구니를 쓰는 법은 그냥 자기 방법, 내키는 대로다.
선반 하나의 칸에는 립스틱, 어린이 내복, 스마트폰 케이스 등
여러 상품들이 다 모여있는데 그중에 어린이 내복이 몇 벌이나 있는지 세어야 한다고 해보자.
나는 열 벌 남짓 되는 내복을 모두 선반에 건 바구니에 옮긴 후
다시 내복이 있던 자리에 진열하듯 옮기면서 셀 수도 있고,
진열 상태가 어지럽다면 내복을 세는 걸 성가시게 만드는
다른 물건들을 바구니에 담은 후 선반에는 내복만 남긴 채로 내복의 숫자를 셀 수도 있다.
재고조사의 관건은 정확히 세는 것.
pda는 원래 물건이 몇개가 있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재고조사가 정답 맞추기는 아니니까.
열 벌이라서 10을 입력했을 때 그게 원래 데이터와 맞다면
다음 재고조사 제품으로 넘어가지만 내가 센 것이 10,
데이터가 11이라면 수량이 다르다고 뜬다.
이럴 때 아주 신중해야 하는데 두 번의 기회는 없기 때문이다.
나의 오류이거나 기록의 오류이거나 가능성은 반반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물건의 숫자를 다시 세어야 한다.
다시 숫자를 세서 내복이 놓여있던 칸에 확실히 내복이 열 벌 있다는 확신을
얻게된다면 마지막으로 수량을 10으로 입력한다.
그러면 어쨌든 pda는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게 해주지만 그게 곧 내가 맞다는 뜻은 아니다.
나중에 10이 아니라 11이 맞았다는 게 밝혀지면
그것 자체가 나의 오류가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고,
내가 맞다면 그냥 오류를 바로잡은 셈이 된다.
그러니 icqa의 재고조사는 빨리 해야 하는 일이 아니고,
속도를 빠르게 해줬으면 하는 뉘앙스 조차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입고와 출고를 겪고 icqa 팀에서 일하게 된 나는 유독
icqa의 사람들이 차분하게 느껴졌는데,
막상 재고조사를 해보니 끊임없이 숫자를 세는 일은 보통의 성미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뒤따라왔다.
나름 차분한 성격이라고 믿었던 나조차 지루하다는 느낌과 함께
뭔가 숫자의 감옥에 갇힌 듯한 막막함이 있었으니 분명 재미가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속도를 재촉받지 않고 다른 누군가와 호흡을 맞출 필요도 없으면서
체력적으로 크게 부담이 없는 일이라는 장점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먼저 말하지 않았는가.
하고 싶어도 빈자리를 찾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고.
나는 다시 다른 일로 눈을 돌려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