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중구조각모음, 이야기로 만든 정원

함께 만드는 공통의 것을 위한 실험

by 청두

지도에 나오지 않는 작은 정원이 만들어졌습니다.

중구청의 제안으로 시작된 정원 만들기는 시민들이 함께 우리를 상징하는 공간을 만드는 실험이었습니다. 창작은 때로 고통을 동반하는 어려운 일입니다. 심지어 보이지 않는 '형形'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와 다른 경험과 관점으로 살아온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은 많은 변수와 어려움을 담보한 일이기에 결과는 대체로 하양평준화 되고, 과정은 복잡하고, 진행은 더딥니다. 때문에 필자 역시 작업 과정에 민주주의 방법론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창작'과 '질'의 관점을 조금 틀어 본다면, 함께 무엇인가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다원화된 사회를 구성해 나가는 과정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일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어린아이는 하루에도 수십 번 몸을 뒤집기 위해 애씁니다. 미세한 움직임이지만, 그 과정에서 신경의 연결망은 견고해지고 근육은 강해집니다. 그러다 어느 날 결국 몸을 뒤집고, 기어 다니고, 걷게 됩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하루를 온전히 애썼음을 상상해 보면, 함께 만들어 나가는 시도는 점점 더 연결되어 큰 원동력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럼 다시,

지도에 나오지 않는 작은 정원이 서울 중구청 공원녹지과, 중구의 예비 마을정원사, 서울시의 시민정원사, 을지로의 예술가와 소공인의 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중구청의 제안으로 시작된 정원 만들기는 지역사회 터전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공통의 것'을 만드는 실험이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하며 서로의 결과물을 모아,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녹지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보라매 공원 대상지에었던 것 지형, 식물들을 귀하게 여기며 이전에 것과 새로운 것을 더해 주변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마음을 모아 만든 정원, 「중구조각모음, 이야기로 만든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목차

시작.

작은 둔치

집단지성

설계 및 제작




중구조각모음, 이야기로 만든 정원, 250522 ⓒ고대웅




시작.


중구청 공원녹지과 최다영주임(이하 최주임)의 기획 하에 일이 시작됩니다.

최주임이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자치구정 정원 담당이 됩니다. "지자체 정원 사이에 서울 자치구 정원이 설치될 예정입니다. 특히 부산시가 꽤 많은 예산을 들여 큰 정원을 만들 예정이니 자신 있는 자치구에서 그 옆에 정원을 만들어주세요."라는 서울시 담당자의 이야기를 듣고 호기롭게 "중구가 하겠습니다!"라며 손을 번쩍 들었다 합니다.


지자체와 자치구. 예산의 규모에서도 많은 차이가 날 텐데, 최주임은 중구는 집약된 지역으로 다양한 사람과 산업, 시장이 밀집해 있으니 함께 '집단지성'을 발휘한다면 멋진 정원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인재와 산업이 중구가 가진 주요한 자원이자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성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 장인의 화원 소개 영상 : 장인의 화원, 산림동, 2018

장인의 화원, 서울 을지로 산림동, 2017 ⓒR3028



2017년, 최주임은 이미 을지로의 예술가·공장과 함께 '장인의 화원', '공감길'을 만들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람이 함께 모여 중구를 상징하는 공동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작가 고대웅(이하 고작가)에게 연락을 하게 됩니다.

※ '장인의 화원'과 '공감길'은 2017년 '꽃피는 서울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예술가 K에게 작업 제안을 위해 연락한 주무관 C, 카카오톡 캡처




작은 둔치


삼각형 모양의 작은 화단 남면이 대상지로 정해집니다.

보라매 공원엔 8 자 모양의 호수가 있습니다. 때마다 음악분수가 평화로운 도시에 낭만을 더해줍니다. 남쪽엔 장애인 복지관이 있고, 북쪽엔 안전체험관이 있어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화단 앞을 지납니다.


연못에서부터 시작된 경사는 화단 안쪽에 이러 가장 높아집니다. 정상(?)엔 소나무가 원을 그리며 팔방으로 가지를 뻗고 있고, 그 아래 그늘에 서서 호수를 바라보는 풍경이 꽤 평화롭습니다.


화단의 장벽이었을 회양목들은 오랜 시간 동안 무성하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성글고 일률적으로 화단을 두르고 있지 못합니다. 비어있는 부분은 사람들이 드나들기 좋도록 열려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중구 자치구 정원의 대상지는 서로 다른 목적으로 공원을 찾는 이들이 이동하는 길목, 경사면, 보도블록과 화단이 만나는 지점으로 정해집니다. 현장 답사를 통해 최주임과 고작가는 소나무 그늘이 좋은 곳, 작은 둔치를 등지고 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까지 정원으로 활용하기로 정합니다.


현장 답사, 20250416
대상지 위성사진, naver map




집단지성


함께 모인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진 시민들.

중구는 금융, 다양한 서비스업, 제조단지, 전통시장 등이 모자이크 같이 모여 있는 생산성 높은 조밀한 도시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1인가구, 대가족, 다문화 같이 다양한 형태의 거주민들이 사는 삶의 다양성을 품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죠. 직업에 따라, 삶의 형태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가 쌓이는 곳입니다.


을지로 중심부엔 다양한 예술가·디자이너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이곳은 도심 산업지이기도 합니다. 인쇄, 철공 등 제조공장에서 숙련된 기술자들이 오랜 시간 자신의 전문성을 키우며 생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곳을 통해 창작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작품을 실현시키며, 문화를 창발 하는 창작도시를 만들었습니다.


도심은 남산을 제외하면 녹지면적이 매우 적습니다. 사막화된 곳의 식물은 매우 귀합니다. 녹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함께 가꿔나가기 위해 마을정원사 양성 해오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일을 해온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 지역을 상징하는 정원을 만든다.'는 목적을 가지고 모이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가지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함께 나누는 공간에 대한 그림을 나눴습니다.



이야기로 만든 정원 스케치, 고대웅, 2025


마을정원사들이 함께 만든 식재 배치도, 2025


마을 정원사들의 메모, 2025




설계 및 제작


정원 설계 시 다음의 항목들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 소재 : 시간, 도시, 자연(남산)

· 구성 : (도시 : 남산) = (화단 : 녹지)

· 재료 : 부식되는 철, 10월까지 피어나는 식물군, 바람에 따라 소리를 내는 풍경



직선으로 이뤄진 벽돌과 유기적인 화단의 경계



① 공존

자연과 도시의 경계에 있지만 서로 공존하는 중구의 도심과 남산의 형상을 기본 틀로 삼아 정원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② 시간

중구라는 지역은 700년간 시대상을 반영하며 변해왔듯 박람회 기간 중 계속 변하는 정원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③ 유기적인 형태

자치구 정원 규격인 4000x3000의 직사각형의 규격을 넘어 기존 지형과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공간을 구성하기로 하였습니다.


④ 그리드의 규칙

도시의 그리드를 상징하는 보도블록의 규칙과 열을 맞춰 화단을 설치하기로 합니다.


⑤ 시퀀스

언덕을 따라 올라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시퀀스를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⑥ 바람

그늘에 앉아 쉬어가며 바람을 느낄 수 있도록 풍경을 설치하기로 하였습니다.


⑦ 수용과 공존

다른 정원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독립적이지만 연결된 공간 연출하기로 하였습니다.


⑧ 존중

서로의 영역에서 내린 최선을 답을 존중하여 완성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도시를 상징하는 화분의 집합으로 만들어진 화단


화단 및 공간 설계안 변화 과정 ⓒ고대웅


화단 제작, 태영산업레이져 ⓒ고대웅





남산을 상징하는 조형물


산 조형물 설계안 ⓒ고대웅


산 조형물 제작, 태영산업레이져 ⓒ고대웅




설치 및 식재


일정

2025년 04월 29일. 터파기

2025년 04월 30일. 화단 설치

2025년 05월 08일. 되메우기 및 식재

2025년 05월 18일. 야자매트 설치

2025년 05월 19일. 풍경 설치

2025년 05월 20일. 마을정원사 서명 안내판 추가 설치

2025년 05월 21일. 공유 드라이브 정비





이야기로 초대


2025년 05월 22일 목요일.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개회되었습니다.

화사하게 핀 꽃 사이로 나비와 벌이 꿀을 찾아 날아들고, 참새들이 지저귀며 서로를 희롱합니다. 나무 그늘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를 듣고 있자니 참으로 평화롭습니다. 철로 만들어진 화단은 시간이 지나면서 녹이 피어 점점 붉은색으로 물이 들것입니다. 지금 핀 꽃이 지면 곧 다른 꽃이 피어 그 자리를 채워줄 것입니다. 서로가 여물어갈 시간을 남겨주며 작은 정원에 식물들은 공존하고 경쟁하며 한 철을 보내겠지요.


낮은 정상에 올라 그늘에 앉아봅니다. 화단을 내려다보면 함께 만든 시민들이 아끼는 중구에 대한 메모가 눈에 들어옵니다. 왼편을 내려다보면 해운대 백사장을 옮겨온 듯한 부산정원이 눈에 들어옵니다. 소나무 아래 잠시 앉아 여유를 조명해 보시길 바랍니다.


작은 정원을 만들며 많은 분들의 마음을 모았습니다. 함께한 이들에게 감사하며, 그들의 시간을 공유하고 싶어 공유드라이브를 만들었습니다. 정원을 찾아주신 분들께서는 안내판의 QR을 통해서, 본 글엔 링크를 통해 열람해 볼 수 있습니다. 공통의 것을 위한 실험을 나눕니다.


'중구조각 모음, 이야기로 만든 정원' 공유 드라이브


20250522 ⓒ고대웅




정원 인사말(좌), 정원 배치도(우)







PS.01 중구조각모음, 이야기로 만든 정원을 만든 이들






PS.02 정원 박람회 개관 후 S박사님께 온 메시지.












도시 속 작은 도시의 예술이야기를 전하는〈작은도시이야기〉 뉴스레터 ► 구독하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셔터에 그려진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