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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예술공간이 만드는 도시 가치

예술은 우리 공동의 것이 될 수 있을까

by 청두

도시에 작은 예술공간이 많다는 것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리가 작은 예술공간이 많이 존재하는 도시에 산다는 것은 영향으로 돌아올까.


얼마 전 전북대학교 박구용 교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긴 이야기였지만 짧게 줄이면 다음과 같았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 2030 남녀의 갈등은 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 대안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은 예술이다.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갈등상황이라는 피해를 본 세대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없애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삶의 주변에 예술이 있어야 한다."(김어준의 뉴스공장, 2025.06.23)


갈등을 완화하고, 언어와 논리로 전할 수 없는 것들을 전할 수 있는 것이라면 민주사회에서 더더욱이 필요한 자산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술'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주체인 '예술가'는 사회 공동의 것으로 인식되고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술공간'과 '예술가'를 지속시키기 위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_MG_1453.JPG 커피사, 2023 ⓒ작은도시이야기

예술은 우리 공동의 것이 될 수 있을까. 공동의 것으로 여겨질 수 있을까.


'예술'이 도시의 가치를 높이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사례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도시의 가치는 부동산의 가치를 포함하여 시민들의 문화적 자긍심과 관광객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포함한다. 도시의 문화적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은 시민들의 삶의 질과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 내적인 측면과 경제적 성장 및 도시 경쟁력 제고라는 외적인 효과를 동시에 지니게 된다. 이는 여타 사회 · 경제 지표들에 비해 보다 중요한 전략적 요소로 간주할 수 있다. 더 이상 도시가 2차 산업시설을 통해 성장하기 어러워진 시대에 문화·예술 영역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도시의 가치가 높아진 이후, 원인이자 촉매로 작용한 예술가는 더 이상 그곳에 없다. 이는 그들의 자발적인 이주가 아닌 외부의 위험 요인이 커진 결과이다. 높아진 도시의 문화자본은 빠르게 부동산 가치로 전환된다. 이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예술가들이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지역을 떠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예술가 떠난 공간엔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영리 목적의 업체가 들어온다. 이후에도 한동안 지속적으로 임대료가 높아지며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자본력을 요한다. 결국 그만한 규모의 기업만이 남게 된다. 결국 지역의 특수성이 만들었던 가치는 유입된 자본에 희석되고 자본을 중심으로 형성된 보편성만 남게 된다. 관광객들은 자신의 기회비용을 보편성과 교환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으며, 점점 지역의 시장 규모는 작아지게 된다. 마치 무리한 다이어트 이후 요요현상으로 인체가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과정에 비견될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지역의 정체성, 경제규모 등이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상승효과를 맞이하게 되지만, 문화적 다양성과 지역 공동체가 유지되지 못할 경우엔 결과적으로 더 취약해지는 역효과가를 마주하게 된다.

2025062615113992267_1750918302_0028310650.jpg 가로수길 공실률 41.6%... 말길 '뚝', 권현구, 국민일보, 2025.06.26


도시가 지속적으로 매력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민들이 양질의 삶을 더불어 살아가게 하기 위해 우린 어떤 답을 찾아야 할까. 도시의 틈 사이에 자라는 작은 식물을 통해 실마리를 찾아본다. 인공물로 만들어진 도시의 거리를 걷다 보면 단단한 콘크리트 틈 사이에 작은 이끼류와 식물이 자라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인간이 아무리 견고하게 사회시스템을 만들고 거대한 도시를 만들더라도 자연의 일부에 속해 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작은 틈 사이에 피어난 식물은 저마다의 꽃을 피우며 회색빛 도시에 색을 더한다. 더불어 잠시나마 작은 곤충이 쉬어갈 수 있는 곁을 내어준다. 생명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여린 생명 하나가 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양한 색을 발현할 수 있고, 자신의 곁에 함께 살 수 있는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존재, 혹은 공간이 있는 도시를 만든다면 그곳은 어떤 곳이 될지 상상해 본다.


오늘날 ‘예술’이라고 부르는 영역은 인간의 공동체가 문화를 탄생시키면서 함께 나타났을 것이다. 음식을 나눠먹으면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면서, 생존을 위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면서, 자연현상에 대응하면서 하나씩 각 공동체가 마주한 자연환경에 맞춰 태동했다. 그렇게 각 지역마다 다른 형태와 형식, 재료를 가지고 발전한 문화 중 일부는 ‘예술’이라는 형상으로 사회 속에 함께하고 있다. 그 영역의 주체가 되는 ‘예술가’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천부의 재능이 있어 여느 사람이 따를 수 없는 탁월한 작품을 창조할 수 있는 자가 아티스트라고 불리게 되었다.’(미술대사전, 용어 편)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천부’라는 말에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예술가의 재능은 하늘이 부여했다는 것, 타고나는 지점이다. 훈련과 사회적 맥락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재능이라는 표현 자체가 그것을 천부적 요소로 이해하도록 만든다.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 관계와 발견하거나 소비할 수 있는 물질이 창작의 소재가 된다. 결과물은 단지 개인적 기쁨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향유하고 영감을 받으며 도시의 문화적 자산으로 기능하게 된다. 따라서 예술가와 그 창작물은 일정의 ‘공공재’적 성격을 띠게 되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가치는 일부는 예술가 개인이, 일부는 공동체 전체가 함께 누리게 된다. 공동체 전체가 함께 누리는 것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다. ‘지역 브랜드 가치 상승’, ‘문화적 다양성 증진’, ‘관광 유발 효과’, ‘ 정주성 강화’등이다. 그러므로 ‘천부적 자원’과 ‘사회적 가치’의 결합체로서의 예술가, 예술 활동은 공동체가 보호하고 지원하며 일정 부분 그 가치를 공유하는 방식이 타당하다.


IE001835135_STD.jpg 꿈꾸는 청춘 예술대학, 김병구, 오마이뉴스, 2015


헨리조지와 그의 추종자들이 이야기하는 땅이 이와 다르지 않다. 하늘이 준 자원인 토지는 공동체를 위한 쓰임을 담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토지는 고정된 자원이 되고, 예술가는 유동적인 자원이 된다. 두 요소가 도시라는 맥락 위에서 만나면 그곳에는 문화적 지대(cultural rent)가 형성된다. 두 요소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문화자본’을 부동산 재원으로만 힘을 환원시킨다면 ‘젠트리피케이션’과 ‘문화백화’로 이어지지만, ‘문화적 지대’는 건물을 소유한 부동산 임대업자의 사적 이익으로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공공적 가치로 전환되어야 한다. 따라서 헨리조지주의자의 논리에서 토지에 대해 언급하듯, 문화적 지대도 일정 부분 사회에 환원되어야 하고, 예술가의 창작 환경을 공동체가 유지하고 지지하는 윤리적 그거가 된다.


예술가의 활동이 파생한 영향이 낙후지역의 부동산 가치를 높이고, 예술공간이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예술가의 작품이 상당한 경제적 가능성으로 연결되는 연동의 과정은 경험을 통해서 확인하였지만, 아직 한국 사회는 예술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이는 지속발전의 중요한 고리가 되어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게 만들어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때문에 사회적 관점과 정책의 논쟁에 위치를 점유하지 못했다. 현재 한국미술시장이 저평가되어 있다는 것이 원인 중 하나로 여겨진다. 한국 주식시장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가치평가가 새롭게 이뤄진다면, 이와 더불어 미술시장에 대한 평가와 소비 또한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즉, 머지않아 새로운 접근과 해석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현대 미술의 특성상 미술을 포함하여 디자인, 공예, 음악, 건축의 영역으로 확장성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창작의 결과물에 대한 가치평가를 넘어 그것을 만든 창작의 주체인 예술가, 디자이너, 공예가, 건축가와 그들이 활동하는 환경에 대한 가치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의 진보주의 교육학자인 존듀이는 「경험으로서의 예술」에서 ‘예술을 통해 민주시민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야기하였다. 예술은 다양성을 담보하며, 시대의 상, 개인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언어로 전하지 못하는 영역까지 공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며 진화해 왔다. 도시 안에 예술이 존재하고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은 가로변에 자라난 식물군을 통해 사막화된 환경 속에서 생태계가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닮아있다.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회복력을 가질 수 있고, 자신의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그 환경 위에 도시는 경쟁력을 가지게 되고, 브랜드가치를 높일 수 있다. 도시가 다양함을 담보하여 함께 더 잘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드는 ‘예술가’의 도시 정주와 활동을 통해 시민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나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


IMG_2926.JPG 이탈리아 로마 보도 틈에 피어난 식물군, 2022 ⓒ청두




참고문헌


언론

권현구, 가로수길 공실률 41.6%... 말길 '뚝', 국민일보, 2025.06.26

김병구, 꿈꾸는 청춘예술대학, 오마이뉴스, 2015.05.29


단행본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박이소(옮김),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 현실문화

헨리 조지, 이종인(번역), 진보와 빈곤, 현대지성

존듀이, 이제언(번역), 경험으로서의 예술, 책세상


지식백과

미술대사전, 용어 편





_MG_1455.JPG 커피사, 2023 ⓒ작은도시이야기


*본 글은 '고대웅, 작은 예술공간이 만드는 도시 가치_임대료 상승과 수익 공유를 중심으로, 2025'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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