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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그녀 Jan 22. 2020

내가 선택한 결혼이니 모든 고통은 혼자 해결하라고?

- 선택이 책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누군가 내게 ‘결혼한 후에 가장 힘든 게 뭐야?’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거의 대부분!!’           


사랑해서 결혼했다. 내가 선택한 남자는 내가 보기에(그러니 결혼했겠지. 콩깍지가 제대로 씌어서)도, 남들이(주변 지인들이) 평가하기에도 괜찮은 남자였다. 번듯한 직장이 있고, 단정함과 적절한 친절함, 상식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결혼 후 효자 코스프레를 하며 시댁에 잘하기를 바라거나 강요하지도 않았다. 구구절절이 설명하거나,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알아서 집안일을 분담했다. 아침밥을 꼭 먹어야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 아침밥을 아내인 내가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반찬투정을 해서 밥상을 엎고 싶게 만들지도 않았다.           


당연하지만, 이게 당연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결혼 이후에 알게 되었다.      


아침밥 타령을 하는 많은 남자들이 있다는 걸 알았고, 시댁에 잘해야 한다고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일이 여전히 빈번하다는 걸 알았고, 집안일은 네 몫, 육아도 네가 당연히 더 많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비교할 일은 아니지만 빈번하게, 비교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그때마다, 아, 나는 운이 좋은 건가? 생각하면서 그러니 그냥저냥 웬만한 일은 넘어가는 게 맞는 건가?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도, 뭐가 부족해서 ‘대부분!’이라고 말하느냐고?        

   

결혼을 하고 ‘아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순간, 내 안에 꼭꼭 숨겨두었던, 끝까지 숨겨두고 싶었던 학습된 ‘여성성’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꼬박꼬박 시부모님께 안부전화를 걸어야 할 것 같았고, 둘 다 직장에 나가지만 아침밥은 내가 차려줘야 할 것 같았고, 청소를 하고 돌아서는 신랑에게 ‘고마워’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감정들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같이 일을 하는데, 퇴근 후 “저녁은 뭐 먹지? 뭐 해줄까?”라고 묻는 건 언제나 나였다. 시댁에는 알아서 안부전화를 걸면서 친정 부모님께는 “전화 좀 걸어줘.”라고 부탁했다. 처음엔 뭔가 이상했고, 그다음엔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다음엔 내가 문제네.라고 혼자 결론 내리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당연히 챙기는 것들을 무심히 넘기는 신랑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정리 좀 하지?”라고 지나가는 말로 던지는 한 마디가 듣기 싫었다. 

 저녁을 먹은 뒤엔 자연스럽게 소파로 가서 앉는 뒷모습이 보기 싫었다. 

 “신랑 저녁은 잘 챙겨주나?”라고 묻는 직장의 남자 상사들 농담에 불쾌해졌다. 

일상적인 안부 끝에 무심히 묻는 시어머니의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니?”라는 말이 필요 없는 간섭처럼 느껴졌다.     

언성을 높여가며 싸우지는 않았지만, 미묘하게 시작된 불편함은 둘이 같이 있는 공간까지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런 게 결혼이라니? 연애 때랑 완전 다르잖아! 망했어!’           


연애 시절 받기만 해도 당당했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자꾸 퍼 줘야 할 것 같은, 내 신랑은 내가 챙겨야 할 것 같은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처음엔 그런 나의 모든 행동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보고 자라온 모습이 그랬다. 밥은 늘 엄마가 차렸고, 부모님의 이혼 후에는 시골 생활을 접고 올라오신 할머니가 아들, 손녀들의 밥을 챙겼다.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나도 모르게 학습되어 ‘당연함’이 되었다.   

Image by Aliko Sunawang from Pixabay


이 불공평함이 심각하게 다가온 것은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였다.     

 

만약, 내가 일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주 양육하는 입장이었다면 어쩌면 조금 더 늦게 그런 깨달음이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일을 하지 않으니까, ‘당연히’ 아이 육아도 내가 더 많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혼자 끙끙 앓았을 테니까 말이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래도, 부부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는 균형을 맞추던 관계가 아이를 낳는 순간, 단숨에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야, 여자들에게, 엄마들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이,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거대한 성(成)인지, 문을 열고 성 밖으로 한 걸음 내딛는 일이 얼마나 많은 질타와, 불편한 시선을 받아야 하는 일인지 직접적으로 체감하기 시작했다.         

  

이건, 나 혹은 같이 사는 남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3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학습된 ‘결혼’과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담긴 정당하지 못한 시스템 때문이라는 걸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바로 달라졌냐고?           


안타깝게도 깨달음을 얻은 그 순간조차 내가 챙겨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영원히 그 불공정한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함은 마음에 담은 채로.           


결혼했으니 이제 네가 책임져야지, 너만 힘든 거 아니잖아, 아이는 너만 키우니? 싸움 안 하고 사는 부부가 어딨어, 다 거기서 거기지. 결혼은 남자와 여자 둘만 하는 게 아니잖아, 당연히 부모도 가족이지, 돌봄은 가족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거지, 자기 아이 키우는데 왜 나라가 뭘 책임져야 하지?, 알아서들 키워봐, 며느리가 시댁에 신경도 쓰고 그래야 맞는 거지, 밥 좀 더 많이 하면 어때?, 남자는 책임감이 더 크잖아, 집안일을 경력으로 인정하라고? 일하면서 애 보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뭘 그리 징징거려, 여자가 군대 다녀온 남자보다 급여를 적게 받는 게 뭐가 이상해? 육아 휴직하면 그 일은 누가 할 건데? 여러 사람한테 민폐 끼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그럴 거면 그만둬야지......          

      

끝도 없이 들려오는 말들 사이에서 여자들은, 엄마들은 중심을 잃는다. 

아무리 남녀가 평등한 분위기의 가정 속에서 자랐다고 하더라도 결혼을 하고 스스로 가정의 중심이 되는 순간 그동안의 모든 경험치들이 다시 0이 되는 이상한 계산식.           


적어도 내가 경험한 결혼은 그런 것이었다. 

강요받지 않은 책임감을 가지게 되는 것. 누구도 구속하지 않은 구속을 당하게 되는 것. 

그 사이에서 여전히 ‘내가 문제야, 내가 달라져야 해’라고 스스로조차 ‘나’를 채근하게 되는 것.           

어차피 바뀌지 않을 테니, 어차피 이번 생은 망했으니, 에라 모르겠다, 그냥저냥 살자 해버리면  그만일까? 

내가 선택한 결혼이니, 내가 선택한 엄마의 길이니 모든 고통은 스스로 해결하고, 끌어안고 가야 하는 걸까? 

나 하나 순응하면 그걸로 되는 걸까?          


지금까지 해왔던 수많은 받아들임과 체념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이제 알겠다.      


내 고통을 여자인, 엄마인 나 혼자 끌어안고 가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 진짜 망하는 길이라는 걸.           

그런데, 이대로 망하고 싶지 않다. 이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망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보는 게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나는 한 발짝씩 앞으로 나가고 있다. 


불편한 것을 불편하다고 말하고, 걸고 싶지 않은 안부 전화를 걸지 않고, 아침밥을 차리지 않거나, 저녁밥을 사 먹는 일에 미안함을 느끼지 않고, 육아를 분담하고, 아이의 돌봄을 ‘나’의 영역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일들을 당연한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인다. 

그 자연스러움이 같이 사는 남자나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도록 행동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결혼 생활이나 부부관계 앞에서 더 이상 ‘운도 좋아’ 라거나 ‘복 받았네’ 같은 말이 필요하지 않기를 바라고, 많은 여성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싸워야 하는 순간에 잘 싸우고, 불편하지만 부딪쳐야 하는 일을 기꺼이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이는 일에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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