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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Apr 17. 2018

천혜의 풍광과 맛,
울릉도 여행 이야기

진미가 있는 울릉도 여행을 떠나다.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발조차 디딜 수 없는 곳 울릉도. 그 섬에는 천혜의 풍광과 맛이 있어 옹골집니다. 몇 해 전부터 오징어 어획량이 줄었다지만 울릉도 오징어의 유명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흉내 낼 수 없는 절경과 진미를 찾아 울릉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울릉도 여행의 첫맛은 개운하고 칼칼하다


육지를 떠나 울릉도로 향하는 바닷길. 그 속은 푸르다 못해 검은빛이 감돕니다. 짧게는 2시간 30분 이상 험한 파도를 헤쳐야 하니 속이 편할 리 없습니다. 출항 전에 먹었던 육지 것들을 파도가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이때 멀미에 지친 속을 편안하게 다스려주는 것이 오징어 내장탕입니다. 육지에서는 맛보기 힘든 이 음식은 오징어가 많이 잡히는 울릉도의 별미입니다. 과거에는 어판장이나 시장에 널려 있던 오징어 내장을 손질해서 끓였는데, 요즘은 찾는 사람들이 늘어 내장만 따로 챙길 정도라고 합니다.

뱃멀미를 해본 사람은 압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입맛은 싹 사라져, 뭘 먹어도 토할 것 같은 기분. 그런데 오징어 내장탕은 뒤틀린 속을 바로잡는 신통방통한 묘약입니다. 오징어 내장이 들어가서 맛이 깊고 호박과 청양고추가 시원한 맛과 칼칼한 맛을 더합니다. 이렇게 속을 달랜 후에 본격적인 울릉도 여행에 나서봅니다.

울릉도는 512년(신라 지증왕 13년)에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최초로 역사 문헌에 등장했습니다. 이후부터 1883년까지 섬에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공도 정책을 펴왔습니다. 그 이유는 지리 특성상 조세 수취와 역역 동원이 어렵고 왜구가 섬을 근거로 본토를 넘본다는 주장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울릉도에 해적의 침입과 일본 어민의 어업 활동이 잦아지자 1883년(조선 고종 18년)에 울릉도 개척령을 공포해 사람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울릉도 오징어는 역시 명불허전


대부분의 배는 저동항, 도동항, 사동항으로 입항합니다. 그중에서 저동항은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오징어잡이 배가 가장 많이 오가는 항구입니다. 오징어 어획량이 예년보다 못하다지만 ‘썩어도 준치’요, ‘형만 한 아우 없다’고 했습니다.

오징어를 손질하는 아주머니와 관광객이 실랑이 중입니다. 관광객의 주장은 ‘울릉도든 다른 곳이든 다 근해에서 잡은 것인데 뭐가 다르냐?’는 것입니다. 아주머니는 펄쩍 뛰며 “아이고 그런 말은 하지도 마이소. 얻다 대고 타지 오징어를 울릉도 오징어하고 비교하는교.”라며 물러서지 않습니다.

아주머니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맛있는 오징어를 얻으려면 첫째가 신선도, 둘째가 얼마나 빨리 건조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래서 울릉도 오징어는 잡은 당일 건조시키는 일명 ‘당일바리 오징어’입니다. 건조 방법에도 울릉도 오징어만의 비밀이 있습니다. 울릉도의 맑은 물, 공해 없는 해풍, 맑은 햇살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뱃사람들이 최상급 오징어로 꼽는 것은 ‘배 오징어’입니다. 어민들이 오징어를 잡다가 그냥 팔기에는 너무 아까워 따로 챙겨둔 것으로 배 위에서 바로 말린 것입니다. 이렇게 건조한 오징어는 울릉도 여행 시 가족이나 친척들 선물용으로 챙겨두기 좋습니다.


저동 활어 판매장에서 야경과 낭만까지 챙겨


울릉도에서 오징어가 한창 많이 잡힐 때는 산 오징어 10마리에 1만 원이면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2~3마리에 1만 원을 줘야 합니다. 어획량이 예년만 못해서입니다. 이처럼 어획량이 감소한 원인에 대해 어민들은 “중국 어선들의 싹쓸이 조업과 수온 상승으로 어장이 울릉도 연안에서 먼바다로 이동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부터 어획량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동 활어 판매장에서는 저렴하게 자연산 회를 먹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일몰 시간이 지나면 불이 환하게 켜지면서 항구를 따라 길게 노점상들이 늘어섭니다. 맘에 드는 곳에서 생선을 고른 뒤 자리에서 기다리면 회를 가져다줍니다. 가게별로 가격 차는 크지 않습니다. 가게에서는 회만 썰어줄 뿐 초고추장, 채소, 술값을 따로 계산해야 합니다. 물론 그 속에 자릿값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은 여기서 회만 산 뒤 슈퍼에서 초고추장과 소주를 구입해 부두방파제나 숙소에서 먹습니다. 어딘들 무슨 상관일까요. 오징어 회에 소주 한잔이면 그만이지요. 오징어잡이 배들이 밝히는 어화(漁火)를 보려면 삼선암 주변이나 내수선 전망대를 찾으면 좋습니다.



알토란 같은 행남해안산책로


행남해안산책로는 곧 무너질 것 같은 해안 절벽길을 따라 이어집니다. 저동에서 도동까지는 왕복 1시간 30분 정도. 저동항 촛대바위를 지나면 바위와 바위를 연결하는 무지개다리가 보입니다. 거칠고 투박한 외모를 가진 울릉도에 무지개가 피어올라 고운 색감을 덧칠한 것 같습니다. 검푸른 바닷물이 다리를 집어삼킬 것처럼 밀려오면 잰걸음으로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이어 높이 57m의 꽈배기 모양의 철 계단에 닿고 계단을 오를수록 감동의 크기가 더해집니다. 정상에 서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의기양양합니다. 특히 끝을 가늠하기 힘든 태평양이 내 발아래 있다는 것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틈엔가 바닷길이 사라지고 숲길이 열립니다. 지천에 울릉도 특산물인 산나물과 약초가 융단처럼 깔려 있습니다. 숲길이 잠시 물러나고 다시 절벽길입니다. 바닷길, 숲길, 절벽길이 밀당을 하듯 번갈아 가며 잇댑니다. 알토란 같은 행남해안산책로는 울릉도 여행의 진면목입니다.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치명적 풍광


울릉도를 가장 알차게 여행하는 방법은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는 것입니다. 해안도로에서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울릉도의 거친 자연을 볼 수 있습니다. 도동항, 사동항, 울릉신항을 차례로 지나면 대한민국 10대 비경에 꼽히는 대풍감전망대에 이릅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야 하는 이곳 전망대에 서면 거칠 것 없는 바다와 해안절벽이 탄성을 터트리게 합니다. 기암절벽과 바다는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활기차 보입니다.

현포전망대에서는 좀 더 편안하게 절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노인봉과 송곳봉이 키 자랑을 하고, 그 앞으로 코끼리를 닮은 공암이 바다를 지킵니다. 북면 끄트머리에는 관음도가 있습니다. 이 섬은 경사가 급한 나머지 배가 닿지 않아 무인도였다가 몇 해 전에 연륙교가 놓였습니다. 그 덕분에 원시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관음도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삼선암을 놓칠 수 없습니다. 울릉도 3대 비경 가운데 제1경으로 꼽히는 이것은 조물주가 만든 걸작입니다. 만약 저동항에 숙소를 정했다면 울릉도 최고의 일출은 덤으로 얻은 셈입니다. 일출 명소가 가까운 저동항에는 북저 바위가 보이는 내수전 몽돌해변과 관음도, 죽도는 물론이고 저동항까지 손에 잡힐 것 같은 내수전 일출전망대가 있습니다.


하늘 동네, 울릉도의 지붕 성인봉

나리분지는 울릉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마을입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하늘 동네’로 주변이 산에 둘러싸여 아늑한 느낌마저 듭니다. 울릉도에 처음 도착한 개척민들은 먹을 게 없어 섬말나리 뿌리를 캐 먹으며 연명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 지명이 ‘나리’로 불리게 됐습니다. 나리분지에는 개척민들이 살았던 가옥이 남아 있습니다. 투막집과 너와집으로 눈이 많이 오는 환경에서도 생활할 수 있도록 화장실, 부엌, 창고 등이 내부에 배치된 독특한 구조입니다.

나리분지에서 성인봉(984m)으로 40여 분을 오르면 신령수에 닿습니다. 이후부터는 고사리밭이 물밀 듯 밀려옵니다. 나리전망대를 지나면 숲이 한층 더 거칠어지고 섬피나무, 너도밤나무, 섬고로쇠나무 등 희귀 수목이 군락을 이룹니다. 태고의 신비가 숲 곳곳에 남아 있어서 울릉도의 역사를 헤아리게 합니다. 밀림을 탐사하듯 울창한 숲길을 10여 분 오르다 보면 어느덧 정상. 울릉도의 지붕답게 일망무제의 전망이 시원하게 전개됩니다.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진 숱한 명승지를 돌아보고 이제 성인봉까지 올랐으니 울릉도 여행의 풍성한 결실을 맛봤다 할 것입니다.


글/사진. 임운석(여행작가)

현대모비스 사보 2017년 10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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