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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Jul 11. 2024

진실을 향해 외쳤던 한 지식인의 고발

뮤지컬 에밀



'나 하나쯤 뭐 어때'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쉽다. 쉬운 만큼 무책임하고 취약하고 위태롭다. 그래서 기꺼이 옳은 것을 택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동경한다.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보다 자연 친화적인 물건을 선택하는 것, 비난과 미움을 사더라도 정직하고 정의로운 편에 서는 것, 비난과 조롱을 감수하더라도 기꺼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것. 결국에는 기실 그들의 선택이 이토록 위태로운 세상을 지킨다. 




1894년, 프랑스에서는 육군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국가 기밀 문서를 독일로 빼돌린 스파이로 지목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가 간첩임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들은 희박했으나, 동시에 그가 간첩이 아님을 증명하는 단서들은 힘이 없었다. 언론과 권력은 드레퓌스를 간첩으로 만들기 위한 굳건한 프레임을 씌웠다.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국민들의 우울감을 완화하고, 패전의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정치와 민족의 적. 드레퓌스는 그렇게 무고한 희생양이 됐다.


드레퓌스가 그렇게나 쉽게 희생양이 될 수 있었던 건 그가 오랜 역사 속에서 혐오와 조롱을 받아온 유대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군사 기밀을 빼돌린 유대인. 그로 인한 전쟁의 패배. 그에 대한 법의 심판. 의도적으로 교묘하게 짜인 이들의 선전은 무능한 정부와 국가, 민족을 위로하는 동시에 그들이 잃어버린 권위를 회복할 수 있는 기능을 했다.


온 나라가 무고한 드레퓌스를 미워하는 상황에서 참다 못한 에밀은 분노한다. 심지어 에밀은 드레퓌스와 일면식도, 만난 적도 없는 사이였다. 그럼에도 그는 지식인으로서, 예술가로서 진실이 결코 묻혀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언론과 권력 집단, 국가와 민족을 고발한다. 


J'Accuse ! 나는 고발한다


그 결과 에밀은 프랑스의 온갖 미움을 받는다. 그렇게 외롭고 기나긴 재판이 계속되던 와중, 에밀은 잠을 자던 중 갑자기 이산화탄소 중독으로 죽는다.


뮤지컬 <에밀>은 에밀이 죽은 그 날 밤, 그날 있었던 하룻밤의 이야기를 상상으로 채운 극이다. 에밀의 절친한 친구 폴 세잔의 그림을 전달하기 위해 방문한 청년 끌로드. 문이 굳게 닫힌 채 정적인 긴장감을 유지하던 에밀의 방은 두 사람의 대화와 노래와 춤으로 조금씩 차차 밝아진다. 극은 드레퓌스 사건에만 중심을 두기 보다는 에밀이라는 인물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그가 살아온 시대적 배경과 삶을 쫓으며 에밀이라는 인간의 선택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워낙 텍스트가 살아 있는 극이다 보니 노래와 춤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뮤지컬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뮤지컬임에도 에밀과 끌로드가 주고 받는 대사들이 묵직하고 단단해서, 그 사이를 오가는 말맛이 맛있게 느껴지는 극이었다. 말의 힘을 아는 중년 작가와 작가 지망생의 대화는 신중하고 묵직한 텍스트가 된다.



진실, 그러니까 남들이 택하지 않는 길을 기어코 선택한 에밀은 많은 이들의 미움과 공분을 샀다. 불안과 긴장 속에서 매일 밤 선택의 유혹을 받았을 에밀의 말년은 끝까지 외롭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진실의 생존력은 그 무엇보다 강해서 에밀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대견하게 힘을 다해 반짝였다. 뮤지컬 <에밀>은 국가적 배신자로 추락했으나 양심적 지식인으로 재평가 받은 한 사람의 선택을 살피는 이야기다. 세상에 오롯하게 남은 그의 신념과 다짐을 기억하면서.



언젠가 프랑스는
나라의 명예를 구해준 것에 대해 
제게 감사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Un jour la France me remerciera
d’avoir aidé à sauver son honneur



에밀은 자기 자신보다 강한 진실의 생존력을 믿었던 인물이었다. 고발에 담긴 에밀의 말은 예언처럼 이뤄졌고, 드레퓌스의 무고함은 끝끝내 밝혀졌고, 나라는 에밀의 시신을 국가적 위인들을 안장하는 국립 묘지 팡테온에 안치했다. 진실은 땅 속에서 자란다는 것. 땅 속에서 엄청난 힘을 얻고, 어느 날 폭발의 굉음과 함께 모든 것을 날려버린다는 에밀의 말이 유언처럼 세상에 남는다.


진실 공방전은 어디에나, 어느 때에나 늘 존재한다. 에밀과 끌로드의 질문과 대화는 비단 과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도 그들의 이야기는 다각적인 질문과 대화로 유효하게 기능한다. 그런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은 꽤 값지고, 꽤 유익하다. 에밀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선명한 정의가, 영원히 남을 또렷한 그 선언이 여전히 이 세상을 밝히는 촛불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기꺼이 옮음을 선택하는 그 선택의 힘을 믿으며 살아가야지.



뮤지컬 에밀 캐스팅

에밀 졸라: 박영수, 박유덕, 정동화
클로드: 구준모, 김인성, 정지우
러닝타임 100분 (인터미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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