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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rollope Apr 19. 2023

반일은 정신병

이라는 주장이 최근 자주 들립니다. 최근에는 제 친구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마 일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친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한 한국인의 글에서는 반일 교육에 대한 비판을 펼치며 자기는 일본이 좋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주제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몇 년 전에 나온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은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그 후로 "반일은 정신병"이라는 주장이 흔히 들리게 되었습니다. 책의 저자들마저도 이런 파급력을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입니다. 사실 이 책의 주장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10년 전에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라는 책에서 이미 비슷한 주장이 제시되었습니다. 다른 점은, 당시 한승조 등이 친일을 주장할 때 조갑제와 같은 일부 사람들만이 옹호했을 뿐,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외면했다는 점입니다.


최근의 사태는 다소 달라 보입니다. 당당하게 친일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불을 지른 것으로 보이는 것은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입니다. 3.1절에 일장기를 내걸어 논란을 일으킨 사람, 윤동주 교육을 반일 교육이라며 항의하는 학부모 등의 사례가 이를 증명합니다. 한 지방자치단체장조차도 친일을 선언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금과옥조처럼 생각하는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에 대해 살펴봅시다. 

<반일종족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반일종족주의라는 개념을 제대로 학문적으로 정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나마 가장 구체적인 설명은 이영훈이 집필한 “반일종족주의의 신학”이라는 장에서 나옵니다. 여기 설명에 따르면, 한국의 민족주의는 반일과 결합한 원시적인 종족주의라고 주장합니다. 이 책은 원래 이승만TV에서 한 강연에서 발표된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왜 민족주의를 부정적인 의미로만 사용하나? 민족주의에도 긍정적인 의미가 있지 않나?"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중요한 지적에 대응하여 이 책이 출간되면서 '민족주의' 대신 '종족주의'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어감의 변화일 뿐, 책의 근본 주장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단지 더 자극적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며, 한국의 민족주의를 과도하게 부정적으로 해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수많은 침략과 불평등한 조약 등으로 인해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한국의 민족주의는 일본에 대한 경계심과 비판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을 뿐, 반일을 정신병으로 규정하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물론 반일 교육이나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 점검은 필요합니다. 과도한 반일 감정이나 편견을 조장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의 민족주의를 일률적으로 부정하고, 반일을 정신병이라고 규정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야기를 더 하기 전에 한 가지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국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근간에는 "한국에 있는 '어떤 것'이 문제가 있으니, 내가 가르쳐 줄게"라는 오만한 태도가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2019년 한국과 일본 사이에 무역 분쟁이 발생했을 때, 한국에서 'No Japan' 운동이 일어나자 일본에서 어떻게 대응했는지 기억하십니까? 일본에서는 "한국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 도와주지 않는다"는 반응으로 맞섰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한국인들은 전부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관점에서 한일 관계는 그런 것입니다. 일본은 한국에게 '올바른 지식'을 가르쳐 주는 형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주장도 그러합니다. 너희들의 민족주의는 잘못됐으니 내가 가르쳐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일까요? 아닙니다.


민족주의와 민족의식이 외부의 침략에 대응하거나, 외부와의 충돌을 통해 형성되는 것은 세계 곳곳에서 흔한 일입니다. 프랑스의 시작은 로마의 카이사르와 맞서 싸운 갈리아족의 투쟁에서 시작되었고, 현대 프랑스는 1789년부터 1815년까지의 프랑스 혁명 전쟁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네덜란드의 정체성은 로마와 싸운 바타비아에서 시작되었고, 벨기에의 정체성은 1302년 프랑스 귀족과 싸운 도시 길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독일의 정체성은 토이토부르크에서 싸운 게르만족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미국은 영국에서 독립한 13주에서 시작되었으나, 실제 미국인의 정체성은 1860년대 남북전쟁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2년 러시아의 침략에 대항하여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있는 것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인에게 큰 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중국과 일본 두 나라 뿐입니다. 따라서 한국인의 정체성이 이 두 나라와의 충돌과 관련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조선과 중원 왕조가 조공 책봉 관계를 세운 이후, 큰 대립이 없었기 때문에 한국의 경우 큰 위기는 대체로 일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반도의 한민족이 완전히 통일된 이후, 한국인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된 사건 세 가지를 들자면, 임진왜란, 19세기부터 1945년까지의 일제 침략, 그리고 1950년 6.25 전쟁입니다. 이 중에서 두 가지는 일본과 관련이 있고, 나머지 하나는 북한(중국)과 관련이 있습니다. 일본을 싫어하는게 그렇게 이상한가요?


역사적 맥락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이 일본과의 대립 과정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사실, 한국의 민족주의가 반일 감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반일 종족주의'나 그 작가들이 새롭게 지적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좌파-탈민족주의 학계에서 지적되어 왔던 것입니다. '반일 종족주의'에서 참신한 것이 있다면, 민족주의라는 말을 종족주의로 바꾼 것 뿐입니다.


결국, '반일 종족주의'는 한국의 민족주의를 부정적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반면, 그것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의 민족주의와 반일 감정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른 민족주의와 비슷하게, 외부 침략과 충돌을 통해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민족주의를 종족주의로 규정하거나 정신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큰 오류입니다. 오히려, 한국의 민족주의는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을 반영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이를 통해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민족주의가 과도하게 고조되거나 혐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작용을 감안해도, 한국의 민족주의를 일관되게 부정적으로 치부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민족주의가 문제가 될까요? 민족주의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민족주의는 죄가 없습니다. 이것은 단지 역사적 정체성의 하나로서,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인식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민족주의를 거부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민족주의가 다른 민족을 억압하고 차별하며, 심지어 박해하는 제국주의, 식민주의, 인종주의와 연결될 때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주로 서구의 경험으로, 대한민국과는 큰 관련이 없습니다. 한국 역사에서 식민지를 건설하거나, 다른 민족을 학살하거나, 대외 침략 전쟁을 벌인 적은 없습니다. 서구의 민족주의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서, 우리가 민족주의를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민족주의가 다른 나라가 우리를 지배하고자 할 때 방해가 되는 경우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민족주의는 이웃 나라와의 대립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통합하려 할 때, 피침략국 국민의 대응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침략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정체성으로 전환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침략국과 우리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들과 다른 '우리'라는 정체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이 민족주의입니다. 민족주의는 침략국이 약소국을 병합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침략국의 입장에서 민족주의, 민족의식이 발생하는 것만큼 성가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민족주의는 해로울 것이 없으며, 단지 가끔 민족주의 마케팅으로 소비자의 지갑을 털어갈 뿐입니다. 민족주의가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그 나라를 지배하고 싶은 누군가의 사정일 뿐입니다. 일본의 경우가 그렇죠.


예전에 중국 친구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은 민족주의가 너무 심해” 속으로 웃었습니다. 중국인에서 이런 말을 듣다니요? 중국에서 10년 지내면서 관찰한 결과, 중국의 민족주의는 한국인 못지 않게 강력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알고 지낸 일본인 친구들은 전부, 강렬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중국 친구든 일본 친구든 그들은 모두 자신들에게는 민족주의가 없고 민족 감정이 옅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문제가 없다. 다만 너의 민족주의에는 문제가 있다.” 왜냐면, 자신들이 한국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반일종족주의>는 그런 일본의 생각을 그대로 한국어로 옮긴 것 뿐입니다. <반일종족주의>가 얼마나 일본을 생각하고 있는지 보고 싶으면 이 책의 일본어판과 비교해보면 됩니다. 이 책이 나온지 4개월 만에 일본어판이 나왔습니다. 눈에 띄는 건 이 책의 9장 ‘학도지원병’과 16장 민비시해에 관한 부분, 17장 을사오적과 이토 히로부미에 관한 부분이데, 이게 일본어판에서는 빠져 있다는 겁니다. 왜일까요. 아마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 일본예찬론자들이 보기에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책은 그런 책입니다.


정리해봅시다. 이 책에서는 한국의 민족주의는 반일을 기반으로 한 원시적 종족주의라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그런 주장은 한국의 민족주의를 탐탁치하지 않아 하는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제대로 된’ 민족주의를 가르쳐 줄게” 하는 일본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맞지 않습니다. 민족주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고려할 때, 그것이 일본과의 투쟁에서 발생한 것도 당연합니다. 일본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과, 우리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은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입니다. (중국문제를 생각해서,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다른 글에서 다시 다룰 것입니다.) 우리의 민족주의를 껄끄럽게 생각하는 일본의 주장을 우리가 진지하게 들어줄 이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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