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도로 변해버린 사회, 이대로가 우리에게 과연 좋을지 미리 따져보기도 전에 세상은 이미 다 변한 뒤였다. 물론 변해가던 과도기에는 항상 걱정과 염려가 있었다. 그러나 모든 세대는 걱정과 염려를 구식 취급하는 버릇이 있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더 깨어있는 거라는 인식마저도 대대로 물려온 관습인데, 이 관습은 항상 보호받아왔다. 초등학교 3학년쯤에는 환경일기장을 학교에서 나눠줬는데 매일 일기 숙제를 하다 보면 공책 아랫단에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는 짧은 사례나 문구, 환경을 지키는 방법 따위가 적혀 있었다.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다는 이야기, 열섬 현상, 스모그 현상, 황사, 지구 온난화는 환경오염으로 빚어진 결과라고 익숙히, 꾸준히 들려오는 이야기였다. 거의 30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차츰 하나씩 새로운 용어를 또 배웠다. 미세먼지, 탄소배출, 지구 열대화 같은 말들.
우리 세대는 새로운 변화를 아주 많이 받아들였다. 그게 우리에게 정말 좋을지, 좋지 않을지 천천히 신중하게 따져볼 새가 없었다. 시력교정수술은 거의 미용 목적으로 웬만한 사람이면 다 받는다. 쌍꺼풀이나 코 수술도 어렵지 않게 받는다. 요새는 타투나 낙태도 쉬운 편이다. 성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관념 - 정신적인 성도 그 사람이 인식하는 대로 성별로 인정해 주는, 정신과 육신의 성이 일치하거나, 일치하지 않거나, 성적 대상이 정신과 육신의 성이 동일하거나 다르다든가 하는 등-도 법으로나 사회, 문화적으로 여러 방면에서 쉽게 받아들였다. 핵가족 사회라거나 1인 가구라거나 비혼이라든가 온갖 것들이 아주, 아주 쉽게 받아들여지고 모든 게 개인의 자유라는 범위하에서 다 받아들여지도록 강요되는 세대이다.
그래서 우리의 세대는 부작용의 시대이다. 사회 질서를 유지해 오던 많은 관념과 관습과 바탕들이 빠르게 무너져 내리는데 북극의 얼음처럼 거대하고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다. 사회는 이 모든 걸 버텨내고 견뎌내고 사회를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들을 다시 쌓아 올릴 힘이 있을까? 이다음 세대는 이 모든 걸 잃어도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자신하는 걸까?
사회의 규범과 도덕과 의무와 책임을 얘기하는 사람을 꼰대라고 부르니, 그러면 이 모든 걸 다 하지 않아도 사회가 평화롭게 존속된다는 믿음이나 근거는 어디에 있는 걸까?
요즘은 ADHD 환자가 흔하다. 아주 어려서부터 영상물에 의존하는 부모와 자녀들이 많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왜 부모들은 영상물에 아이 양육을 의존했을까? 편하게 밥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왜 아이들이 밥을 먹을 때 부모를 힘들게 했을까? 밥 먹는 시간의 훈련을 어려서부터 안 했기 때문이 아닐까? 왜 그런 훈련을 안 했을까?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가 아닐까? 왜 몰랐을까? 그들의 부모에게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중간에 이 고리를 끊어냈다면, 현상의 본질을 찾아보려고 조금이라도 노력했다면, 자기의 인생을 훨씬 풍요롭게 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면, 그저 맛있는 음식으로 배 불리고, 눈을 즐겁게 하고, 육체의 안위와 편안함만을 좇지 않고, 아이를 한 사람으로 바르게 길러내는 일의 기쁨과 성취가 더 귀하고 가치 있다는 것, 더한 기쁨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순간의 기쁨을 위해 더 큰 가치와 기쁨을 쉽사리 포기하는 시대이다. 고생해서 일해서 얻는 임기응변과 판단력과 지혜를 얻기보다 쉽고 편하게 일해서 얻는 그날의 치킨과 맥주, 취미생활이 더 귀중해져서 그렇다. 치킨이 지혜보다 귀중해져서, 가치 판단을 상실한 사회가 되어서, 우리가 무엇을 분별 있게 받아들이고 거부해야 할지를 모른다.
맞춤법을 지키고, 바르게 젓가락질을 하고, 고운 말을 하고, 상대를 위해 양보와 배려를 하고,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성실하고 책임감을 다하는 것을 가르쳐주던 시대의 막바지를 내가 살아왔구나, 이제 그 시대는 저물었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고, 나는 또 하나의 시대의 과도기를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는 늘 양극단을 오고 가니까 이 시대의 방향이 극단에 닿으면 다시 반대편의 극단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그러나 이미 많은 것을 잃은 뒤이고, 시대의 한 고리를 건너뛴 뒤일 것이라서 도로 되찾아오기는 어려울 것이라 본다. 지난 사회상에 대한 오석이 난무할 것이고 다음 세대는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시대를 존속하기는 할 것이다. 사회가 퇴폐해져 가는 속도를 보면 전체적으로 온 세대가 얼마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다. 수많은 부작용이 할퀴고 나면 이제 역사의 끄트머리가 올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이 전부 잘못된 선택, 잘못된 받아들임으로 인한 부작용인 줄은 인지하고 있을까? 그게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