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 입구 앞에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이름이 알려졌지만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죽은 자의 문자들이 일렬로 새겨져 있다. 더 이상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치열함, 고단함, 그리움, 외로움이 있었다.
상상조차 못 할 먼 시간이지만 저 멀리 그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찰나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보내는 흔적이 될 차림과 마음으로 사진을 남기며, 우리는 그 사이 어딘가 길을 따라 성 안으로 들어갔다.
광활한 공터에는 돌자국이 쌓여 여기가 무엇이었고 저기는 무엇이었다 알려주는 속삭임으로 가득했다. 바삭하게 말라버린 나뭇잎과 아직 물기를 머금은 채로 떨어지는 노란 잎 그리고 사람들.
아이처럼 웃으며 은행나무 아래에서 포즈를 잡는 어른들과 즐겁게 뛰어다니며 떨어지는 소원을 붙잡는 아이가 있었고, 아무도 없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절도 있었다. 이곳을 천천히 걸으며 우리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나이가 된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비판하며 죽음보다 낮은 확률을 기대했다. 자유를 꿈꾸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틀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못한 채 과거의 번영을 또다시 반복하며 여전히 흔적을 남긴 채 다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