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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JUN E Jul 22. 2021

위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내가 위로받기를 바란 밤이었다

저녁 10시. 집에 도착해 손을 씻자마자 전화가 왔다.

'쩌리박' 고등학교 때 친근하게 부르던 친구 놈의 별명이었다. 손아귀에서 몇 차례 진동을 느끼며, 잠깐의 망설임 후 전화를 받았다. "P-어디야?" "집이지." "P-그럼 그쪽으로 갈게, 나 너희 동네야." "그래." 

10초 남짓한 순간으로 2년 공백기는 10분만에 다가왔다.


멀찌감치 보아도 여전히 작은 키, 까무잡잡한 피부, 내 기억 속 모습보다 조금은 살이 오른 P를 보고,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담배 한 대를 태웠다.

"안녕!"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진 않았지만, 같은 미술학원에서 고1, 고2 때 즈음 P를 알게 되었다. 소극적이고 배려심 많은 아이. 그래서 잘 통했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그 당시 서로의 사정이 참 비슷했다. 여유로운 집안에서 자랐지만, 성인으로 다가가는 길목에서 둘 다 집안의 큰 위기를 맞이했고,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하며 20대 중반까지 두터운 사이로 지냈다. 원주와 조치원 멀리도 다닌 학교였지만, 집이 가까운 터라 자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하곤 했다.


그런 P와 멀어지게 된 계기는 불과 2-3년 전이다. 나는 활동하고 있던 아트 크루에 P를 데려왔고, 그는 들어와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졌다. 그즈음 P는 본인의 (디자인) 실력에 자만하고 있었고, 나는 슬럼프를 겪던 상황이었다. P는 나보다 빠르게 졸업해서 방송국에 취직했고, 나는 그 근처의 작은 회사에서 인턴으로 대학생활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둘이 만나 그의 취업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고, 얼마 후 크루 사람들과 저녁을 먹던 자리에서, P는 회사가 커서 힘들다는 소리를 했다. 그 당시 나는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었고, 그래도 그것을 열등감으로 바꿀 만큼 자존감이 낮지는 않았지만, 그의 삐죽 대는 소리가 그렇게 듣기가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열등감이었을 것이다. 내가 삐죽 대자, P는 '그런 조그만 회사에 다니면서, 네가 뭐 이런데는 들어올 수 있냐?'라고 오랫동안 함께 해온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면박을 줬다.


참을 수 없이 화가 났지만, 당시 나는 크게 소리를 내거나 화를 내지는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다른 사람들이 풀어주려 노력했지만, 나는 그 이후로 그를 혐오하게 되었다. 서로가 얼마나 절박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가장 큰 자존심을 건드린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어쩌다 마주치는 상황에서 어색하게 담배를 피우곤 했지만 서로의 관계가 그리 나아지지 않았고,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러다 오늘 전화가 온 것이다.




"이직 축하해, 좋은 조건으로 이직하게 되었다고 S형에게 들었어." "P-어, 그렇게 됐어, 고맙다."

어색한 시간들을 메우기 위해, 최근까지 서로가 만났던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 일하는 환경이나 직장, 연봉이나 각자 회사에서의 처우같은 이야기들을 툭툭 던지며 잠시 걸었다. 최근 몇 년간 회사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돈은 얼마나 모았는지 향후 계획을 이야기하는 그를 보며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밉지가 않았다. 나보다 돈을 더 벌 수 있는 조건,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모은 이야기, 좋은 곳에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 차를 바꾼다는 이야기. 이상하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예전처럼 그가 밉지 않았다. 아니 전혀 밉지 않았다. P가 했던 이야기들은 돈으로 자랑하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느껴졌다.

P와 내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그 시간 속은 돈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간 모습으로 가득 차있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서로의 처지를 이야기하며, 서먹한 분위기가 나올 때면 연거푸 담배를 피워댔다. 2-3년 간의 시간보다 2시간 남짓한 시간이 더 짧고도 길었다.


두서없는 대화가 길게 이어졌지만, P가 그 시간 속에 조금은 위로받기를 바랐다. 가진 것 없는 서로가 위로하고 응원하는 표현이 아직 서툴렀을 것이라 나는 생각했다. 내가 들어주고 응원하고 있는 것으로, 그가 그리고 내가 위로받기를 바란 밤이었다.



 

첫인사보다는 덜 어색한 "안녕!"을 뒤로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오랜만에 먼저 손을 내민 그를 띄워주기 위해 나 스스로의 처지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을 해댄 그 특정 장면이 생각나서일까 여름밤 방 안에 갇힌 공기는 답답했다.


창문을 열고 책상에 앉아 P에게 먼저 카톡을 했다.

"오랜만에 반가웠다~~, 다음엔 좀 더 웃는 얘기 많이 하자. 힘내자구(손 흔드는 이모티콘)"


이모티콘만큼 어색한 인사였지만, 웃으며 또 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다음엔 그에게 웃으며 이야기해야겠다.

"나 너보다 많이 벌어. :)"


그가 장난치며 투덜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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