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 어느 날의 글
첫 골절(骨折)은 방년 9세, 여름이었다.
놀이터의 구름다리에서 떨어져서 팔이 ‘ㅡ’ 모양에서 ‘ -_’ 의 모양으로 뚝! 부러졌던 것이 시작이었다. 팔의 힘으로 버티며 앞으로 전진하는 구름다리에서 친구 한 놈이 다리를 잡아당겼고, 팔이 똑! 부러졌다. 그 여파로 현재 오른쪽 팔목에는 6cm 정도의 지네가 한 마리 있다. 이렇게 언급하지 않으면 평소 몇 달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무감각해졌지만,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늘 17:1의 싸움 흔적이라고 이야기한다.(*내가 17이었다고)
두 번째부터는 중/고등학교였는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원인은 언제나 같았다. 점심 / 석식 시간 중간중간의 농구였다. 정확히는 몸도 풀지 않고 몸보다 의욕이 앞섰고, 한창 보던 슬램덩크와 다른 스포츠 만화의 말도 안 되는 플레이를 따라 하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당시 왜소한 체구의 나는 정대만과 같은 슈터 포지션을 선호했었다. 스톱&점프(드리블을 하다가 멈추고 슛을 쏘는 것)를 하다가 늘 발목을 접찔리거나, 몸싸움을 하다가 내 풀에 넘어져 부러지곤 했다. 입시미술을 하던 고1 때에는 처음 스키장에 갔다가 왼손이 부러졌고, 고2 때에는 손가락이, 고3 때에는 다리가 부러졌다.
벌써 어렴풋이 기억하는 골절만 4-5번 정도인데, 그러다 보니 어느 지점부터는 부러진 순간의 고통보다, ‘아! 부러졌다…’라는 느낌이 더 빨리 머리를 스치게 되었다. 그럴 때면 침착하게 주위 사람들에게 상황을 말하고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엄마, 또! 부러졌어요…’어머니도 초창기의 걱정과 당황을 지나 마지막에는 아주 침착하게 대응하셨다. 그러다 보니, 내 남동생은 크게 다쳤을 때마다 가족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미안해 욱아.
스무 살 이후로 다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 그 흔치 않은 일들은 늘 나의 것이었다. 제일 크게 다친 것은 군대에서 허리를 다친 것이다. 척추뼈를 다쳐 허리디스크에 걸리게 되었고, 불행히도 군대에서 책임이 불분명하다며, 공익근무로 전환되는데 심사와 병원 신세로 나는 군 복무를 3년 정도 했다. 정말 억울하고 힘든 시기였고, 병원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갓 들어간 부대에서는 아주아주 아주 많이 정신적으로 괴롭혔다. 게다가 불행히도 집안 사정까지 힘들어진 시기와 겹쳤다. 우울증과 패배감, 무기력함이 찌든 담배냄새처럼 빠지지 않고 늘 함께했다. 신체의 틀, 말 그대로 ‘골’ 대가 무너지니 마음이 무너지는 것은 골키퍼가 없는 축구팀처럼 불행이라는 이름의 골이 참 쉽게도 들어갔다. 이따금 병원으로 찾아오는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정말 깊은 우울감에 나쁜 생각을 실행에 옮겼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불행인지 다행인지(아마 불행이었을 거다.) 이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을 접했고, 소설 속의 작고 큰 불행들을 내 불행과 비교하기도, 동일시하기도 하며 그 불행들을 삼켜 속으로 모아댔다. 뼈대와 떨어져 있는 내장기관에서는 우울함들이 덕지덕지 뒤섞였고, 피가 공급되지 않아 썩어가기 시작했다. 꾸덕꾸덕한 불행의 마음 덩어리와, 삐걱삐걱한 뼈만 남은 몸 덩어리가 너무 뒤엉켜 버렸다. 성장이라는 주제와 다양한 메시지들보다, 아픔과 고통만을 관성처럼 끌어안았다. 모든 잘못은 나로 인한 것이라고 끌어안았다. 누군가를 미워하기엔 너무 어렸고 나는 그 이후로 다시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
불행의 덩어리들이 엉켜있을 때, 유일하게 다행이었던 점은 기울어지던 집이어도 그래도 살만했다는 것이다. 다 기울어져 가는 집이었지만, 살고 있던 집이 7-80 남짓한 큰 집이었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모르는 척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외면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더랬다. *예전 글(웃으며 지갑을 꺼내셨다.라는 글이었습니다.)에서의 어머님의 이야기와 버팀,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 일은 그 이후의 일이다. 잡았던 마음이 꺾이는 것은, 부러진 뼈만큼 쉽게 붙지 않았고, 꽤 오랜 시간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우울을 즐겼다.
조각난 마음을 붙이는 데에는 역시 운동이었다. 그 당시 수중에 남아있던 모든 돈을 털어서 PT를 등록했다. 스테로이드 치료를 겸하고 있던 허리에는 더 이상 주사를 맞을 수 없었고, 척추를 잡아주는 근육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매일같이 운동을 했다. 그렇게 허리에 안 좋다던 담배를 끊을 수 없었기에, 하루에 4시간씩 운동을 해서 극복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하나만 더’라는 트레이너의 외침이 너무나 싫었고 눈물을 쏟으며 운동을 하며 지낸 시간이 반년이 지나자, 슬슬 근육이 몸에는 근육이 붙기 시작했고, 몸과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준비가 되었다. 이런 자전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엄청난 불행이 나를 뒤엎었다.(이 불행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글로 다시 한번 적으려 합니다. -> '저녁에 하는 샤워처럼'의 글입니다.)
하하 하늘이시여… 그 시절, 그 난관을 해결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을 구원한 동생 성욱이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몰래 적어본다.
근육은 찢어지고 붙으며 크기가 커지고 단단해진다. 자주 쓰는 근육일수록 내 몸에 맞게 발달되기도 한다. 불행을 맞서는 나의 근육은 크게 자라고 단단해졌지만, 그 속의 뼈는 골골대던 시절의 그대로 이거나 아니면 더 부서져 있을지도 모른다. 뼈는 단련하거나 강화하는 기관이 아니니까, 쓸수록 마모되고 소모되는 신체니까 뼈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 각별해진다. 그래서 남은 뼈들이 감사하게도 이렇게 형체를 유지해주는 동안 단단하게 근육들로 붙잡아야겠다. 지금은 근육보다 지방이 이 나를 가득 채우고 있고, 맛있는 앙버터를 우적우적 먹으며 글을 쓰고 있지만, 뭐 연말이니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니까 괜찮을 거야.
“인생이란 비스킷 통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비스킷 통에 비스킷이 가득 들어 있고,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요?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자꾸 먹어버리면 그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이다,라고.”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