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생일을 앞두고 있는 92년생 영준은, 이제 며칠 뒤면 정말 30, 서른이 됩니다. 친구들은 30+1살로 살고 있지만, 애써 부정하던 나이가 되었습니다. 주말은 아마 시끄럽게 보낼 것 같아 차분한 목요일 저녁 글을 써봅니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한 압박감은 없었으나,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20대를 겪어오며 내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준비해둔 것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보니, 정신적으로는 참 많이 성장하고 성숙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자신감, 전문 분야에 대한 실력과 자부심이 성숙함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모아둔 돈이 얼마이며,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서 얼마를 어떻게 더 모아야 할지, 그래요, 결국 돈에 대한 부분에 대한 생각은, 매일 걷던 길에서 작은 돌부리에 걸린 것처럼 턱 하니 당황하게 되더군요. 그러다 보니 ‘내가 미련을 가지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돈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더군요, 물리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서, 앞으로 벌어가기만 하면 되는 돈이라서. 다른 한편으로는 ‘아니 뭘 그렇게 쓴 거지… 옷장에 옷이 가득하지만, 살이 쪄서 입지 못하는 것이 가득인데...’ 그리 큰 사치를 부린 것도 아닌데 가끔 형들이 얼마 모았냐는 말을 할 때,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해 반성하던 시절도 많았더랬죠.
이런 생각에 자책하는 마음이 크지만, 저는 아직도 물욕이 너무너무 너무나 많습니다. 아끼고 웅크리는 시간이 필요한데, 아름답고 쓸모없는 것들이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미적 감각을 가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좋은 취향의 것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무엇을 고르던 제가 고르는 것은 슬프게도 늘 고가더군요. 심지어 식품코너에서 잼을 고를 때마저 그랬습니다. 명품을 좋아한다기보단, 헤리티지가 있고 브랜드 자체의 오리진이 있는 것들을 좋아합니다.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다 보니, 사소하게 신경 쓴 디자이너들의 작업물을 더 선호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하고 싶은 말은 그래요 눈에 아른거리는 예쁜 물건을 또 발견했어요.
시계입니다. 작년 이맘때 생일 선물 + 보너스로 큰맘 먹고 산 명품 시계를 산 이후, 5만 원짜리 카시오부터, 사치품이라고 부정하던 그 비싼 롤렉스까지 너무 예뻐 보이는 지경까지 왔습니다. 현실적인 조건으로는 어림도 없죠. 하지만 매일 잠깐이라도 그 시계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비싼 것을 사고 싶은 것보다, 기술력과 역사가 있는 브랜드의 물건 중 내 눈에 예쁜 것이 사고 싶더라고요. 현대 사회에서 이제 시간을 보는 것은 휴대폰 하나로 충분합니다. 그것보다 정확한 시계는 없으니까요. 몇억짜리라고 해도요. 얼마 전 시계 유튜브를 보다가 4천만 원짜리 시계의 기능을 10만 원짜리 카시오가 더 정확하게 구현할 수 있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리고 그 카시오 시계를 샀어요.ㅋㅋㅋ
그것 만으로도 너무나 큰 만족에 일하는 도중에 며칠간 힐끔힐끔 쳐다보기도 했습니다.(사실 대놓고 쳐다봤어요.) 대체품의 개념보다는, 다른 의미에서 구매를 했음에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 것 같더라고요, 하나를 사니, 다른 용도로 이거 저거 요고 조고 사고 싶다!. 아직 철없는 아이처럼 이런 생각이 드는 자신에 대해 바보 같다는 생각과 야 너 요즘 열심히 사니까 그런 생각하고 사는 게 뭐가 어떄서?라는 천사와 악마가 마음속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제가 느끼는 시계가 가지는 매력은, 초단위로 움직이는 시간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인 거 같아요. 미련이라는 이번 글감을 받고, 20대 시간에 후회는 없다고 했지만, 다시 마주할 수 없는 청춘은 조금 아쉬운 미련이 남긴 남아요. 그건 어쩔 수가 없나 봐요.
예전 읽었던 이말년의 만화중 이런 이야기가 나왔어요, ‘Q - 누군데 어딜 그리 급히 가십니까?’ ‘A - 너의 20대’ 그래요, 그의 만화의 이야기처럼 빠르게 20대가 끝났습니다. 만화의 상황처럼 나에게 만약 어찌 살았느냐 하고 물으신다면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사랑하고 아파해봤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2에서 3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반원이, 그것을 반증하는 이음선이 될 수 있을 것처럼요.
서른의 내가 1-29의 나와 다르게 새로 시작하는 또 다른 존재나 완성 혹은 시작하는 존재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여느 때처럼 작심삼일의 시작이고, 가벼운 루틴의 연속이겠죠. 하지만 저는 9 다음 0이 오는 것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요. 2 다음 3 이오는 것은 익숙하지만 말이죠. 이렇게 이해하지 못한 순간들은 마주하는 것이 30, 서른의 시작이라고 먼저 지나가고 있는 형들이 말하더군요.
걱정보단 기대감이 앞서지만, 익숙함의 연장선에서 어색함을 만나야 하지만 그 어색함과도 얼른 친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아름답지만 쓸모없는 것들이었던 어쩌면,
아름다움 자체가 존재의 이유였던 나의 20대가 이어져
아름답고 쓸모 있는 인생으로 익숙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