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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날의 까르보나라

달걀과 치즈를 먼저 버무리는 게 비법


거의 오센틱할 뻔 했던 카르보나라에 옥의 티랄까. 관짤레햄(돼지 볼살 햄) 대신에 베이컨을 쓴 것. 한국에서 관짤레를 어디서 구해. 인터넷으로 사면 직구든 뭐든 오긴 하겠지만...


오늘의 컨셉은 가뜩이나 '밥하긴 귀찮고 사먹기도 싫어'다. 되는 대로 한다(언제나 그렇듯이). 한국에선 또 돼지 뱃살이 아니라 앞다리살로 만드는 베이컨이 많다. 이런 베이컨들은 기름 뽑아내자면 이프로 부족한 느낌이다. 그래서 올리브유를 조금 투하.



귀찮다더만 치즈도 잘 갈고, 엿튼 식탐에 부지런해지는 인간. 치즈는 파도바산 그라나빠다노. 원산지 표기에서 밀려서 그렇지 옆동네 파르마지아노(파마산)랑 거의 차이 없다. 가격은 그라나빠다노쪽이 유의미하게 싼 편이다.



계란은 노른자만. 흰자도 같이 쓰는 레시피도 있긴 한데 그럴 경우도 대체로 1:2 정도의 비율. 흰자는 빨리 익어서 들어가면 콘트롤하기가 더 힘들다. 스크램블드에그에 스파게티 비빈 것 같이 되는 게 클래식 까르보나라의 클래식 실패판.



자, 요것을 후추 좀 뿌려서 게란에 버무리는 것이 포인트. 이건 어디 유튜브에서 본 것인데 따로따로 해서 치즈를 위에 뿌리는 것보다 간과 후추향이 더 잘 벨 것 같아서 시전한 방법이다. 후추 첨가는 나의 시도.



정성이 남았으면 흰자는 머랭이라도 쳐서 뭘 좀 해보았겠으나 이날은 그냥 후라이로...

면을 볶기 전에 계란후라이 부터 부친다.



요즘은 이탈리아, 스페인, 터키에서까지 파스타가 다양하게 수입된다. 이것저것 써보고 있는데 용케도 가격하고 만족도가 거의 비례하는 듯. 그런면에서 국산 파스타들은 좀 아쉽고. 이태리 OEM도 많이 하던데 기술 문제는 아니고 그 '한국인의 취향'에 맞추느라 그런 듯. 면발이 메가리가 없는 편이라 국산은 잘 안 쓴다. 



자, 아까의 계란과 치즈 섞은 것을 베이컨 볶던 냄비에 넣고 녹인다. 이거 식히면 바로 치즈전 되겠는데... 그쪽도 유혹을 느끼지만 오늘은 그냥 파스타로 먹자.


좀 덜 익은듯한 파스타를 넣고, 면수 반국자 정도 넣고 탈탈 웍질 해가면서 잘 비벼준다는 느낌으로 볶는다. 볶는다는 느낌을 강조하고 싶다. 면이 절 익어서 가열해야 하니까 그렇기도 하고, 너무 질척이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면수보다 기름이 더 많은 상태라 기화는 빠르다. 


짭조름하고 적당히 느끼하면서 바삭하게 볶아진 베이컨도 씹히고. 여기에 만들어둔 사우어크라우트 곁들이면 피클이 필요 없다. 실은 내 피클은 향신료와 식초의 향이 강해서 단순 곁들임으로 쓰기엔 좀 어색하기도 하고.치즈와 계란 노른자를 먼저 버무리는 방식이 확실히 따로따로보다 효율이 나은 듯. 


사실 노른자가 너무 빨리 익어서 스크램블 같이 안 되려면 불을 끄고 여열로 익히는 듯 신경도 많이 쓰이고 쉽지 않은 요리가 까르보나라다. 치즈와 계란을 같이 버무려 익히고 면수를 조금 추가한 그런 면에선 훨씬 편해지고, 웍질하는 온도와 시간에 구애를 덜 받으니 면에 소스 칠갑하기도 편하다. 이 방법이 이유가 있었네.


라면 끓이는 것보단 조금 더 손이 가지만 이런 정도 재료를 쓴다면 서울 어디 파스타집에서 이만 원은 너끈히 받을 음식이네. 노력 대비 만족스런 한 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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