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호화 식재료로 냉장고를 부탁해
덴마크 쇠렌 웨스트 셰프님 행사 알바하고 주방 정리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남는 식재료 득템이다. 이 조달을 내가 했기때문에 얼마나 귀하고 비싼 재료들인지 알아서 이번만은 아끼다가 뭐 되는 사태가 오기 전에 다 해치워 버린다고 냉장고를 부탁해 주간을 했다.
우선 가볍게 고추냉이 잎으로 시작. 이건 뿌리를 사니까 끼워준 건데 쌈채소로 쓰기엔 어쨌든 황송한 향이다.
베이컨과 같이 볶는다. 이 조합은 사실 처음 해보는데 베이컨의 기름지고 짭짤하고 고소한 향과 와사비향이 조화를 이룰 것이냐, 확신을 가지고 덤빈 것은 아닌데 나쁘지 않았다. 밥반찬으론 매우 훌륭한데, 사람에 따라 호오는 있겠다 싶다.
연어알이 제법 많이 남았어. 이것도 국산이라 제법 비싼 건데 캐비어, 트러플, 롭스터 등등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
와사비도 그렇고. 이 고추냉이 생 것은 진짜 넘넘 좋다. 돈 많이 벌면 튜브에 든 것은 거들떠도 안 볼 거다. 이건 가는 것도 남 시키기 싫다 ㅋㅋ
와사비마요의 사라다. 이건 드레싱이 주고 주연급 조연은 연어알. 채소는 그냥 거들 뿐.
다음으론 자랑하는 도종쌀로 초밥을 쥐어본다.
나름 고급 스시야에서나 쓰는 스시초를 쓰고 좋은 소금으로 샤리를 만들고
이것은 무려 캐비어 초밥. 캐비어 중에서도 쉐프님이 꼭 집어서 주문하신 국산 알마스 캐비어. 이 캐비어만으로 전체 식재료 예산의 거의 30% 가까이 채웠을 정도로 고가다. 그러니 요만큼만 올라가도 원재료비만 거의 만원 꼴.
근데 사실 캐비어는 비싼 맛에 우어하는 거지 개인 취향으론 왜 저 돈 내고 먹는지 잘 모르겠는 맛. 연어알도 있고 다른 알 절임도 있는데 말이지. 엿튼 호화로운 초밥 한 점.
이건 갈릭소스와 연어알. 갈릭소스는 셰프님이 덴마크에서 만들어 오신 것이다. 연어알은 아까의 거제산.
물론 이 연어알이 캐비어보다 더 맛있고 그런 건 아니긴 하네. 엿튼 의외로 한국적 소재인 흑마늘소스의 녹진함과 은은한 단맛이 연어알 짠 맛과 초밥의 산미를 잘 끌고가는 맛.
이건 트러플 초밥. 밑에는 태평농원의 자연농 당근이 깔렸다. 지금 보니 저 배치 잘 했네.
트러플도 사실 쿰쿰한 그 향이 뭐가 좋다고 그렇게 비싼 돈을 내나 싶은 물건(개인의 취향)인데 이런 감상은 자칫 이 향을 눌러버리는 쪽으로 손이 가기 쉬워서. 그렇게 누르지 않고 당근의 향긋한 향이 저 아래서 좀 도와주는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야구선수도 몸값이 높으면 성적이 안 좋아도 꽤나 기회를 주지만 몸값 낮은 선수는 비슷한 성적이라도 툭하면 마이너로 보내버리는 것 같이, 식재료도 비싸고 볼 일이다.
이렇게 호사스럽게 한 이틀 잘 냉털해 먹었다. 트러플은 이러고 약간 남은 게 있었는데 까먹고 있다가 나중에 버릴려고 보니 발효향이 은은해서 나름 '유레카'했다는 후기도 있다. 나중에 돈 벌어서 비싼 식재료 맘껏 쓰게 될 때가 오면 발효 트러플은 꼭 써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