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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06

by 소피아절에가다

모두가 떠나 고요해진 공간. 싱크대 주변을 서성이는 한 여자. 냉장실에서 어제 산 삼겹살 세 덩이를 꺼낸다. 생마늘도 한 줌 꺼내서 불을 올린다. 팬이 달궈지기도 전에 고깃덩어리를 아무렇게나 던져 넣고 꺼낸 생마늘 모두를 얇게 저민다. 고기 지방이 타들어가는 고소한 냄새는 서서히 고요함으로 가득한 이 공간을 침범한다. 고소한 냄새는 여자의 코끝에서 잠시 머물렀다 이내 온몸으로 퍼진다. 과자처럼 바삭하게 구워진 삼겹살 조각 하나와 저민 마늘 하나를 젓가락으로 야무지게 집어 쌈장에 듬뿍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 이미 고소해진 온몸의 감각은 입으로 들어오는 알싸한 고소함을 저항 없이 무한정 받아들인다. 누가 먼저 아니랄까 봐 그녀의 위장에 가속도로 쌓여가는 고기 조각들과 마늘들. 여자의 몸은 채워지고 있다. 온몸 구석구석 채워지고 있다. 그래야만 한다. 채워져야 한다. 채워져야 끝난다.


통각을 아리게 만드는 생마늘을 평생 입에 대지 않고 살아왔는데, 최근 들어 한 줌씩 꺼내 혀에서 느껴보는 통증의 향연이 썩 나쁘진 않다. 얇게 저민 마늘 조각을 한 두 개씩 집어먹다 이제는 아예 통으로 먹어대고 있고, 이것은 익숙해지고 있는 낯선 경험 중 하나라 할만하다. 뭉근하게 저며진 마늘이 혀 위에 닿아 알싸한 통증을 일으키고 그것이 위장 어디를 아린 통증으로 이어지도록 씹고 또 씹고. 이에 질세라 캐러멜색으로 굽혀진 삼겹살 조각들이 알싸한 마늘과 함께 위장의 부피를 극한으로 몰아넣을 수 있게 먹고 또 먹고. 씹고 먹는 행위를 여자는 요 근래 자주 반복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의아하다. 자신을 위해 홀로 고기 한점 구운 적 없는 사람이 온 집안을 고기 타들어가는 냄새로 채우고 더군다나 자신이 먹을 요량으로 굽고 씹고 있으니. 누가 볼세라 불 옆에 선 채로 우걱우걱. 마늘의 알싸함으로 범벅된 삼겹살의 고소함을 입으로, 위장으로 우적우적. 냉장실에 있던 삼겹살 세 덩이도 실은 그날 아이의 저녁을 위해 미리 해동 중인 거였다.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건 분명 의아한 일이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가 학교에 가고 없는 집에 홀로 있는 오전 시간, 항상 모자란 커피를 한 번 더 갈아 여과지에 내려 마시고 다 훑지 못한 신문을 읽고 새롭게 업로드된 교육 채널 영상을 넘겨 보곤 하는 게 일상이면 일상이었다. 늦은 아침 혹은 이른 점심을 첫끼로 대충 먹는 게 또 다른 일상이면 일상이었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공복시간이 길어져 의도하지 않게 일명 간헐적 단식을 하곤 했다. 평소 그녀는 무엇을 먹고자 하는 욕구보다는 함께 마시고자 하는 욕구가 더 컸고, 새우깡 한 봉지에 맥주 한 캔이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한 사람이었다. 먹고 싶은 욕구가 없으니 요리의 즐거움도 알 수 없다. 아이의 식사로 겨우 고기를 굽거나 있는 김치에 참치를 넣어 끓인 김치찌개를 자주 상에 올린다.


지난 한 주 내내 그랬다. 싱크대 주위를 서성이거나 냉장고 문을 여닫거나 배달앱을 켜서 먹을 음식을 검색하고 주문하는 일이 잦았다. 고요한 공간 고독한 시간 홀로 존재하는 그 시공간을 평소와 다르게 오로지 먹는 것으로 채우고 있는 여자. 대체 왜? 왜지? 고요함을 고소함으로 채우고, 고독함을 알싸함으로 채워야 하는 까닭은? 대체 언제까지 또 얼마나 먹을 것인가? 언제까지 또 얼마나 먹을 작정인가? 아니 먹을 예정인가? 식탐은 계획적이었나, 즉흥적이었나. 일시적인 걸까, 주기적인 걸까. 이것은 단기전일까 장기 전일까…



불현듯 기억 뭉치 하나가 머릿속에 툭 던져졌다. 무의식 어딘가에 파리하게 존재하다 얼굴을 쏙 내밀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 무엇과 손잡고. 거의 20년? 십수 년은 되었나 보다. 대학 시절 잠시 외국에서 홀로 지낼 때의 그 시공간의 기억 덩어리. 고요하고 고독했던, 서글프고 외로웠던, 서늘하고 허기졌던 그 당시 그곳의 기억 뭉치. 평생 집 한 번 떠나 살아 본 적 없는 그녀가 타국 만 리 혈혈단신 이방인으로 체류했던 빛바랜 경험이 무의식 어디선가 툭 던져 나왔다. 스무 살 하고도 몇 해가 지난 그즈음, 타국 생활은 그녀의 자발적 의지와 선택이었음에도 막막함이 두려움과 섞여 허기진 마음을 만들었고, 그 허기진 마음을 견딜 수 없어 홀로 채워야 했다. 끊임없이 입안으로 위장으로 음식을 채워 넣으며 허한 마음이 그득함으로 채워지도록 먹고 또 먹고. 그렇게라도 몸속을 음식물로 채워야 외로움에 허기진 세포들이 덜 예민하게 반응할 것만 같았으니. 하지만 타국 생활을 한 지 3개월이 될 때까지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함 때문에 스스로가 두려웠던 기억이 지금 이 순간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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