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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D의 식탁

함씨네, 함정희 사장님을 추모하면서

by 김진영

함사장님과의 인연은 23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한창 초록마을 상품을 위해 전국 팔도를 다니던 월드컵도 끝난 2002년 가을이었다.

회사 생활 7년 차, 지금은 30년 차다.

서울 학여울역 세텍(SETEC)에서 식품박람회를 했었다.

시장 조사차 갔었고 거기서 함씨네 제품을 처음 만났다.

맛을 보고는 반했다. 세상에 이런 두부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두부의 맛이 정말로 기가 막혔다.

담당자에게 명함을 전달하면 전시회 끝나고 연락 달라고 했지만 연락이 없었다. 따로 연락을 하니 입점불가. 해가 바뀌고 초록마을 가맹점이 늘기 시작하는 여름 어느 시점에 함정희 대표와 큰 딸이 찾아왔다.

초록마을에 입점하고자 함이다. 그 당시 초록마을은 한겨레 자회사로 만리동 신문사 건물 4층에 사무실이 있었다. 온라인 뉴스팀과 같은 공간을 사용했다. 상담실이라고는 딱히 없는 곳에서 사장님과 첫 대면이었다. 전후 사정을 들으니 생활협동조합까지 찾아갔으나 거절당했고, 두부를 제대로 팔아 줄 곳을 찾다 찾다가 한겨레 신문에 난 초록마을 광고를 보고 찾아왔다고 한다. 순박한 함사장님의 모습에서 진중했던 두부의 맛이 중첩이 됐다. 당시는 추석 준비로 바쁜 때라서 추석 끝나고 입점을 약속했다. 추석이 끝나자마자 입점 진행. 생활협동조합에서 두부 판매를 불가한 이유는 가격이 비싸서라는 이유. 2003년 당시 두부 가격이 4,500원으로 2천 원 중후반의 우리 콩으로 만든 두부보다 두 배 정도 비쌌다. 가격은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맛이 좋으면 사람들의 선택을 받을 거라 생각했고 내 생각은 출시와 함께 고객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진짜로 2천 원의 차이는 결코 비싸지 않은 가격 차이가 아님을 '맛'이 보여줄 거라 생각했다. 믿음은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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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마을의 성장에 있어 함씨네 두부는 초록마을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홍성의 수소와 밀키퀸, 고산의 화식우, 파주의 토종닭, 고을의 빵 그리고 함씨네 두부 등 초록마을에 와야만 살 수 있는 '머스트 잇(must eat)' 상품이었다. 게다가 때마침 불어온 청국장의 흥행은 함씨네 사업에 날개를 달아줬다.


이후로 여러 일이 있었다. 전주 나들목 근처에서 하던 밥상을 전주 한옥마을로 이전했을 때만 하더라도 더 날개를 다는 듯했다. 전주시와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한옥마을 밥상을 닫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리 생각했다. 문 닫은 이후로 모든 사업을 접었다. 함씨네를 살리기 위한 모임에 초대되었지만 나왔다. 내가 할 수 일도 없거니와 모임에 계신 분들 하고는 일면식이 없던 탓이었다. 모임에 나온 이후로 두어 번 통화를 했다. 내가 한 번, 함사장님이 한 번. 그게 끝이었다.

페이스북으로 전해진 비보, 잠시 22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온다. 완주 출장길에 팔복동 공장에 들려서 이런저런 했던 장면들, 초딩 아들이 성장해서 군복 입은 모습 등등이 지나쳤다. 장례식 없이 장기기증을 통해 새 삶을 주시고 떠나셨다는 이야기에 참으로 함씨네 사장님답게 가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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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이 저예요, 허허" 하시며 전화하시던 함씨네 사장님 목소리가 그립다. 두부 맛이 전국 최강이었던 함씨네 두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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