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은 포용력이 바다와 같다.
어떤 재료를 넣어도 다 담아 색다른 맛을 내준다.
오징어를 넣으면 오징어라면, 주꾸미를 넣으면 주꾸미 라면이 된다. 버섯을 넣으면, 꽃게를 넣으면 라면 맛에 재료의 맛을 더해져 환상의 맛이 난다. 저녁 먹방에 라면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알만한 맛이고 상상이 가능한 맛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한다. 만약에 잘 접하지 못한 식재료로 요리한 것을 본다면 궁금할지언정 맛은 상상이 어렵다.
라면이 몸에 좋지 않다고 하면서 밥 먹으라는 잔소리를 듣더라도 라면은 포기할 수 없는 맛을 가지고 있다. 이건 누구도 부정 못하는 사실. 고기 국물 맛이 핵심 맛이 라면에 비건 라면이 등장한 이유 또한 육식은 포기해도 라면은 포기하는 정서를 담았다고 생각한다.
라면을 끓이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 검색해 보면 동영상, 글, 사진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다 한들 그게 다 맛있는 방법인가? 하는 질문에 내 대답은 단연코"No"다.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맛은 각자의 기준이 있기에 그렇다. 세상의 맛은 세상의 엄마 숫자만큼(우리 딸 기준은 나다) 다양하다. 참고는 될지언정 내 맛이 되지는 않는다. 논문을 쓸 때 생각해 보면 수많은 참고 자료를 근거로 내 주장을 완성한다. 이야기하고자 했던 결과물이 논문이다. '논문=맛'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레시피는 논문의 참조 자료와 같다.
내가 좋아하는 라면에는 몇 가지가 있다.
1. 기본
아무것도 넣지 않고 끓인다. 넣으면 달걀 정도.
끓이는 방법은 물을 끓이고 면을 넣는다.
기본 4분이라면
3분 정도 삶고 불을 끈다. 밥 짓고 바로 먹는 것보다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듯
1분 정도 뜸을 들이면 4분 끓인 면과 다르다. 면이 부는 것도 천천히 된다.
달걀은 불 끄기 직전 넣고 뚜껑을 닫는다.
그러고는 불을 최대로 올린 다음 몇 초 후 불을 끈다.
면이 뜸 드는 사이에 흰자는 적당히 익고 노른자는 표면만 익는다.
달걀노른자의 녹진한 맛을 즐기기에 이만한 것이 없다.
2. 김치 라면
신김치여야 한다. 김장김치 라면 금상첨화. 왜 김장김치가 맛있을까? 이유는 간단. 배추가 맛있는 계절에 담갔지 때문이다. 배추는 서늘한 날씨에서 잘 자란다. 김장을 담그는 11월이면 배추가 맛으로 빛나는 시기다.
김치 라면은 물과 함께 김치를 넣어 끓인다. 그래야 푹 익은 김치 식감이 된다. 설익은 김치는 라면의 적이다.
물은 조금 넉넉하게 한다. 그래야 수프를 적당히 넣을 수 있다. 딸아이가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에는 두 개의 라면을 두 개의 냄비에 끓였다. 김치 라면을 싫어하는 딸아이와 한 번 크게 싸운 후 그렇게 했다. 일본 출장 갔다 오면 꼭 먹고 잔다. 그래야 출장이 마무리된다.
3. 주꾸미라면
가을이 오면 가끔 주꾸미 잡으러 낚시를 가곤 했다. 잡아 온 주꾸미는 손질해서 데치거나 아니면 라면에 넣어서 먹는다. 내가 주꾸미 라면을 끓이는 법은 다른 이와 다르다. 다른 이들은 몸통(흔히 대가리라 부르는) 그대로 넣고 끓인다. 방법은 편하지만 사실 주꾸미 라면 중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방법이다. 몸통과 다리가 익는 시간이 다르다. 몸통은 오래 걸리고 다리는 시간이 짧다. 다리만 익히면 몸통이 익지 않고 몸통을 익히면 다리는 질기다. 대부분 질긴 주꾸미를 먹는다. 나는 주꾸미를 몸통과 다리로 손질한다. 물 끓일 때 몸통을 넣고 라면이 거의 익을 즈음 다리를 넣고 불을 끈다. 라면의 열로 다리를 익히면 부들부들, 야들야들한 식감의 주꾸미 맛을 본다. 건오징어 라면도 좋아한다. 이 라면은 해물계 라면으로 끓이면 맛이 배가 된다. 오징어 짬뽕 라면 같은 걸로 말이다. 지금이야 건오징어를 비싸서 먹기 힘들지만 예전에 오징어를 사면 몸통은 먹고 다리와 날개 지느러미는 잘게 잘라서 보관했다가 라면 끓일 때 넣고는 했다. 물 끓일 때 넣고 끓이면 국물도 시원하고 특히나 밥 말아먹을 때 오징어의 구수함이 더해져 맛있다.
4. 칠흑라면
칠흑라면은 칠흑에서 사용하는 식재료를 최대한 활용해서 끓인다. 곰탕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라드, 앞다리 손질할 때 나오는 고기와 새우젓, 표고버섯을 사용한다. 네 가지에 수비초 고춧가루를 넣고 약불에서 볶는다. 기름과 고춧가루가 만나 고추기름이 되면 곰탕 국물을 붓는다. 여기에 콩나물을 넣고 한소끔 끓인다. 면을 넣고 수프를 넣는데 이때 수프는 반만 넣는다. 새우젓을 넣었기에 다 넣으면 짜다. 면이 익는 과정 중간에 멸치 육수를 조금씩 붓는다. 4분 정도 끓이면 얼추 익는다. 불을 끄기 전 청양고추 조금 넣으면 완성. 최근에는 만두 옵션도 추가했다.
라면은 옳다.
어찌 보면 MSG을 가장 잘 활용한 음식이 라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것들은 MSG가 충분히 들어 있는 재료를 사용함에도 조리할 때 추가로 넣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먹고 있는 대부분의 음식이 그렇다. 그러나 라면은 끓일 때 따로 넣지 않는다.
라면을 끓이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 누구의 방법은 참고일 뿐이다. 당신의 방법이 허접해 보여도
당신의 방법은 수만 가지 중 하나다.
당신이 끓이는 방법 또한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