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이 되어가고 있는 4대 문의 중심에 자리한 홍성의 역사공간
청명하다는 표현은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느낌마저 든다. 추우면 추울수록 하늘은 맑아진다. 포근해지면 좋겠지만 포근해지면 미세먼지등으로 인해 하늘이 불투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요즘에는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몰라도 청명한 하늘을 보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홍성에서는 홍주읍성을 복원하기 위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홍성군은 새 청사의 완공을 앞두고 홍주읍성의 흔적을 제대로 복원해야 하는 과제와 더불어 원도심 활성화라는 과제도 안고 있다.
역사 속에서 읍성은 지방의 관부와 민가를 둘러서 쌓고 중심지 역할을 했었다. 내륙에는 큰 고을에만, 해안 근처 고을에는 거의 모두 읍성을 두었다. 방어력을 높이기 위하여 성벽을 높이고 옹성과 치성· 해자를 시설하였는데 1910년 일본의 철거령으로 대부분의 읍성이 헐렸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시사철 생생한 상록수를 보면서 홍주읍성을 한 바퀴 돌아본다. 홍주읍성을 화사하게 수놓고 있었던 단풍들은 모두 떨구고 이제는 소나무 같은 나무들만이 푸르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충남 홍성군에 있는 읍성으로, 길이 약 1,772m의 성벽 중 약 800m의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분이 남아있는 홍주읍성의 처음 지어진 연대는 확실히 알 수는 없다고 한다.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고을의 읍성을 새로운 격식에 맞추어 쌓게 되었던 조선 세종 때에 처음 쌓기 시작하여 문종 1년(1451)에 새로 고쳐 쌓았다.
홍주읍성은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읍성으로 이어졌으며, 조선 초기 새로운 형식에 의해 쌓은 성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분과 동문인 조양문(朝陽門), 동헌인 안회당(安懷堂), 여하정이 남아있다. 서쪽에 경의문(景義門), 북쪽에 방화문(望華門)의 복원 중에 있다.
심리학자였던 융은 인간은 자아로 살아가지만 진정한 삶은 자아 너머에 있다고 말하였다. 그 자아 너머에는 어린 시절의 상처라던가 억눌린 욕망이 받아들이지 못한 그림자가 있다. 진정한 인연이란 타인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 이날 홍성에서의 나들이는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