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잡지 않는 도둑
퇴사일 전에는 그럼 나는 어땠는지 점검해보게 된다.
문제의 원인과 분석
그리고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던 있었던 점이 있었다면 그 선택을 왜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기 때문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실제로 이런 내용을 반영해서 기록해보고, 기억 속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한번 살아본다라는 것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 더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이렇게 논의하는 게 의미 없지 않아요? "
회사에는 매뉴얼이 있다. 매뉴얼은 약속이다. 서로 간에 업무에 대한 각자의 해석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예외는 많아지고 각자의 방식이 옳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도 생성된다.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는 이제 3년 차를 넘어서 생긴 신생회사다.
사업도 마찬가지로 출발점을 걷고 있는 상황으로
내가 직장생활을 꾸준히 해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3년이라는 시간 동안은
기본적인 체계는 잡고 매뉴얼에 맞게끔 회사가 굴러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기본적으로 "무시"가 있었고 "포기"가 있었다.
무시라 함은 일단 상대가 제안해가는 내용에 대해서
너도 권한이 없고 나도 권한이 없는데 이렇게 논의하는 게 의미가 없다.
전체 팀원이 빠져있는 자리에서, 그리고 팀장도 없는데 팀장 의견만 따르면 되지. 왜 문제를 제기하냐
매뉴얼대로 어떻게 딱딱 맞추어서 하느냐, 피곤하게
기본적으로 무시가 있었다.
만나야 할 고객들을 만나지 않아서 쌓여가는 업무들을 애써 무시하고
다음 계약직, 다음 직원에게 돌리고 미루는 문화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 회의 때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독특한 사람 등등
그리고 타 팀은 타 팀이라는 현저히 구분 짓는 사고,
그리고 그 타 팀의 팀장이 현재 팀장을 겸임하고 있으므로 올바른 직제규정을 따라서
팀장에게 보고하고 진행하여야 할 일도 무시하는 문화를 마주할 때가 많았다.
하루는 팀장이 팀원들을 소집해서
직장 내에서 직급이 있는데 서로들 언니라고 부르지 말라
라고 주문했으나
회의에서 나오고 나서는 다시 "언니"라고 서로를 칭하는 내용 또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근데 정말 왜 서로가 대리 사원 직급이 있는데 언니라고 부르고 싶을까?)
무시는 소통할 수 없는 장애요인이다. 그리고 무시가 곧 뒷말로 파생되고, 끊임없는 뒷말이 너무나 잘 은폐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리고 심지어 이 구성원들의 모임 주제의 9할 정도가 뒷말 나누기라고 한다면 게임은 끝났다.
이런 무시가 가장 크게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포기'다
회사는 유기체다. 목표가 있고 직원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보완해가면서 다른 직원과 협조도 해야 하고 때론 갈등도 겪고 해결해가면서, 불필요한 것은 제외하고 필요한 것을 단순화나 효율적으로 바꾸면서, 잘 굴러가지 않을지라도 성장을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목표를 일단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문제를 두고 "아 문제가 있으니 어떻게 해결하면 좋지?"라고 생각해야 하는 게 기본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이곳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직원이 하고 싶은 일만 한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못하겠다고 포기한다.
하루는 팀 실적을 보고하는 일이 생겼다. 2분기에는 목표 실적에 50% 정도는 달성해야 한다는 팀장의 말에 당시는 모두가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그 어디까지나 당시였지만 언급했듯이 이들은 어쩌면 모두 무시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2분기 실적 달성 정도를 검토한 팀장이 어느 날 뿔났다. 그리곤 팀원들을 소집했다.
아니 아직도 실적을 한건도 달성 안 한 사람이 있네요.
이전에 들은 내용으로는 유명한 사람이었단다.
입사하자마자 센터에서 해야 할 일 중에 자신에게 맞는 일을 선택해서 그 일은 어떻게든 열심히 하려고 하고 고객 안내를 친절히 하는 걸로 호평을 받았던 사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꼭 달성해야 하는 핵심 성과지표 중
여러 서류 작업, 시스템에 등록해야 할 내용들은 전혀 관리하지 않고 심지어 상급자에게 보고하기로는
이거 못하겠는데요라고 한다.
그 이후로 끊임없는 실적 압박에도 그럼 이번엔 하겠다. 이번엔 하겠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해야 할 일을 못하겠다고 포기한다. 그리고 그 포기함으로 인해서 타 팀원들이 그 몫을 부담하게 된다.
그런데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내용을 누구도 강하게 교정하려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그런 사람을 독려하거나 보호하려는 사람도 있다.
"아니야 이 사업이 원래 더 바빴으니까 그래"
"그래도 이 사람이 생각이 있을 거야"
21년도 2분기에 실적을 보고하기까지
맡겨진 과중한 사업에 대한 목표를 찾아봤고,
문제가 발생할 거 같은 부분을 찾아서 다른 센터 담당자들을 찾아다니고,
동향은 어땠는지 그럼 어떻게 개입했는지
그리고 우리가 달성해야 할 필수 사항들은 무엇이고 이것이 나중에 바빠지는 때가 있으니 시간은 어떻게 조절하는 게 좋을지
모든 목표를 달성하고 뒤돌아보니
뭐하려고 내가 이렇게 달렸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모두 그냥 무시하고 서로 포기하고 편하게 일하고 있는데
이건 이래선 안된다고 회의 때 뭐하러 나는 이야기했지?
계약직 신분으로 이렇게 시간을 보낸 것이 후회가 되었을 때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내가 맡았던 사업들을 남아있는 사람들이 짐을 떠안았다고 생각하며
실적을 달성하지 않는 그 직원보다
팀장을 무시했던 직원보다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고자 의견을 제시하기를 포기한 직원보다
완전하게 나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도둑이 집안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데 도둑을 친구로 생각하는 집
그래 도둑에게도 사정이 있겠다고 생각하는 화목한(?) 집
살다 보니 이런 일들도 있다.
오늘 이 글을 적다 보니 나 퇴사 결정하기 잘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