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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일 큐레이터 Dec 22. 2023

테마가 있는 6개월 세계여행의 기록

퇴사 후 여행 결심을 하다. 그 시작 과정은,


1. 난 왜 퇴사를 했는가


직장 4-5년 차, 난 매너리즘에 빠져있었고 아침에 눈을 떠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반복되는 삶의 노예였다.

실적 압박과 매주 똑같은 루틴의 반복.

매일 하루는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것으로,

한주는 금요일을 기다리는 것으로,

한 해는 휴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버텼다.

하루하루 더 배우고 성장해 나가는 것이 아닌

지치고 나이 들고 시들어가는 느낌으로 시간을 흘러 보냈다.  

  

그러다 작년 코로나가 끝나고 3년 만에 혼자 떠난 해외여행이었던 홍콩에서

정말 오랜만에 살아있음을 느꼈다.

호스텔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고 독특한 문화를 향유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20대 초중반 시절, 열정적으로 외국어를 배우고 알바로 번 돈으로 여행을 다니던

호기심 가득한 내 모습과 다시 조우했다.

일주일간의 달콤한 휴가도 잠시 다시 회사로 복귀해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도

여행의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나는 틈만 나면 스카이스캐너에 접속하곤 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지인들이 사는 모습은 다 비슷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9시에 출근해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며 주말엔 쉬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취미생활 한두 가지 정도를 즐겼다.

그러다 하나둘 나이가 들면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위 과정을 반복을 한다.  

물론 이런 루틴한 일상을 오히려 선호하는 사람도, 단조로운 삶 속 소소한 행복을 잘 찾아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금요일에 만나 술잔을 기울일 때 하는 말은 현실에 대한 하소연과 불만족감,

과거에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 또는 이상적인 삶에 대한 체념이었다.


내 생활과 주위 사람들을 관찰을 하면서 이런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은 한 살이라도 젊었던 과거를 그리워하고 나이가 드는 걸 싫어하면서

막상 직장을 다닐 땐 매일 하루가 빨리 끝났으면, 빨리 한주가 끝났으면 하며

시간이 그저 빨리 흘러가기를 바래. 현재의 나 또한 그렇고.

아직 인생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시기인데 이렇게 수동적으로 삶을 허비할 수 없어.

이 쳇바퀴 사이클에 순응하기엔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아.   


적당히 젊은 나이에서 오는 체력과 적당히 모아둔 돈, 적당히 쌓은 커리어 경력이

퇴사를 추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외고 입시를 준비하던 중학생 시절부터 한 번도 쉬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려왔던 지금,

인생에 한번쯤은 세계를 돌며 후회 없이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배우고 싶은 걸 배우고, 보고 싶은 걸 보고, 살고 싶은 곳에서 살아보고,

새로운 언어로 소통해 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매일매일 다른 하루를 살면서

평소 가능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버킷리스트들을 원 없이 다 이뤄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퇴사를 하게 되었다.



2. 퇴사를 준비하면서 했던 것. 


여행 기간은 최소 6개월에서 최대 1년 정도로 잡았다.

먼저 어디로 떠날지를 정해야 했다. 꼭 가보고 싶었던 몇몇 군데가 우선적으로 떠올랐고

그곳들 위주로 동선을 짜면서 추가적인 나라들을 안개꽃처럼 주위로 채웠다.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것들을 위주로 기준점을 세웠고 여행지마다 독특한 테마가 있었으면 했다.  


여행지를 정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겹침 주의).

1) 지친 나에게 필요한 곳 (태국에서의 디톡스)

2) 스타일리시한 매력이 있는 디자인 강국 (프랑스, 이탈리아, 런던, 뉴욕, 도쿄)

3) 한번 방문했을 때 오래 머무를 만한 가치가 있는 곳 (발리, 터키)

4) 직장인 신분으로 일주일 휴가로 쉬러 가기엔 난이도가 있는 오지 (몽골, 남미, 이집트)

5)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곳 (그리스, 몽골)과 친구들이 사는 곳 (런던, 남미, 미국)

6) 최소 한 달 정도 살아보고 싶었던 곳 (발리, 파리, 도쿄)

7) 배우고 싶은 게 있는 곳 (파리-프랑스어, 이집트-스쿠버다이빙, 아르헨티나-스페인어와 탱고)

8) 경유지로 잠깐 들리기 좋은 곳 (싱가포르, 두바이)

9) 어린 시절부터 꼭 가고 싶었던 곳 (캐나다의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10) 와인으로 유명한 곳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터키, 칠레, 아르헨티나, 미국)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퇴직금과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여행 예산을 준비했지만

(코로나 기간 동안 집-회사만을 왕복하는 삶을 살며 소비를 딱히 많이 하지 않아 월급의 7-80%는 늘 나눠서 저축을 하거나 투자를 했었고 수익을 본 몇몇 주식 종목 덕분에 생각보다 돈이 모여 있었다.)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금전적, 심적, 체력적 준비를 했다.


1) 당근으로 안 쓰는 물건 다 내다 팔기

- 80만 원 정도 벌었다. 어마어마한 금액은 아니지만 여행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기간 몇 달 동안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이던 나에게 은은한 심적 여유를 주었고 그동안 방치되고 묵혀져 있던 짐들을 다 정리하면서 개운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팔리지 않은 물건들은 친구들에게 나눠주거나 버리거나 기부했다. 직장 다니던 시절 내 마음 상태와 같은 늘 폭탄 맞은 것 같았던 방을 작정하고 청소하는 것만으로도 큰 안정감과 힐링을 얻었다.


2) 여행 관련 컨텐츠 감상

- 가고 싶은 나라를 담은 책과 영화, 다큐멘터리, 예능을 감상하며 여행지에 대한 지식과 갈망을 쌓았다.   

괜찮았던 나라별 컨텐츠 리스트는 정리해 추후 따로 포스팅해 보도록 하겠다.


3) 외국어 공부

- 영어는 기본적으로 무난히 구사하는 수준이고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일본어 강의를 기회가 될 때마다 수강해 두었던 것 또한 일본 여행을 할 때 도움이 될 듯싶었다. 출퇴근할 때마다 틈틈이 외국어를 무료로 배울 수 있는 세계적인 어플 듀오링고(duolingo)에서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를 가볍게 공부했다 (하루 3-40분 정도 할애).

또한 해외에 나가면 기본적으로 그 나라 문자를 읽어보는 걸 좋아하는 나이기에 태국과 이집트에 가기 전에는 미리 아랍어와 태국어 문자를 암기해 두었다 (장기간 비행을 할 때 시간을 보내기 좋은 방법이다).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더라도 간판이나 음식 메뉴가 읽혀질 땐 매우 즐거운 쾌감을 느낀다.


4) 체력 다지기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요가와 홈필라테스, 조깅을 생활화했으며,

생활비를 아끼고 가볍게 몸을 만들기 위해 생채식과 단백질 위주로 1일 1식을 했다.

정기 이용권을 끊어 날씨가 좋은 날은 따릉이 자전거로 출퇴근했고 약속이 있을 때 거리가 가까우면 무조건 따릉이를 이용했다. 아파트 7층에 위치한 집까지는 엘리베이터 대신 늘 계단으로 다녔다.  


그 외에도,

중고 고프로를 샀고 여행에서 얻은 영감을 기록하기 위해 아이패드 드로잉과 포토샵을 배웠으며,

최종적으로 무거운 짐은 질색이기에 작은 사이즈의 캐리어와 배낭, 그리고 가벼운 핸드백으로 이루어진 총합 20킬로 남짓의 짐을 들고 집 밖을 나섰다.



3. 여행 일정 및 테마


먼저 6개월로 러프하게 잡은 첫 여행 계획 파트 1은 다음과 같다

(상대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남미, 미국, 일본 루트는 파트 2로 미뤄두었다).


1) 태국 디톡스센터에서 2주 동안 단식을 하며 몸에 쌓인 독소를 비우기

2) 친구들과 일주일 동안 몽골 초원을 누비며 디지털 디톡스

3) 발리 한 달 살기 + 하루동안 싱가포르 레이오버

4) 그리스에서 친구들과 요트에서 일주일 생활하기 + 그 외 섬투어 일주일

5) 세계에서 가장 힙한 도시 베를린에서의 일주일

6) 시칠리아 섬부터 코모 호수까지, 이탈리아 3주 일주

7) 프렌치 리비에라와 프로방스로 대표되는 남부 프랑스 로드트립 (+모나코 공국 당일치기)

8) 바르셀로나에서 일주일 동안 가우디의 건축물과 와인 향유하기

9) 친구가 살고 있는 런던 일주일간 방문하며 뮤지컬과 근교 영국 시골 마을 즐기기

10) 파리 한 달 살기 (프랑스어를 배우고 파리 패션 위크 참석하기)

11) 이집트 다합 한 달 살기 (스쿠버 다이빙과 프리 다이빙 자격증 따기)

12) 터키 3주 일주하기  


나의 여행 성향 및 특징을 나열해 보자면,

최대한 많은 나라를 가보기보단 내가 끌리는 곳들 위주로 최소 일주일씩 머무르려고 했고,

3개 국가에서 한 달 살기를 진행했다 (발리, 프랑스, 이집트).

이탈리아와 터키처럼 3주 넘게 머무른 국가도 있다.

친구들과 각각 일주일씩 함께했던 런던, 그리스, 몽골에서의 총 3주를 제외하면 난 늘 혼자 여행을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던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그 곳에 사는 현지인 또는 외국인 배낭여행자들, 때론 한국인들과 두루두루 어울리려고 했고 (여행의 기억은 결국 사람으로 귀결된다. 이들과 어떤 경로로 만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따로 포스팅을 하겠다),

다른 물건이나 기념품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었지만

내가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는 주얼리 (그중에서도 귀걸이)를 나라별로 수집했다.


퇴사를 결정하고 여행을 가기까지의 과정과 고민들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단기간에 삶의 밀도가 올라간 적이 살면서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내 인생을 굉장히 풍요롭고 아름답게 성장시켜 준 경험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와 이미지 등은 다음 포스팅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풀 예정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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