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화첩단상

혼자 마시는 소주

by 이종민


애써 비를 피하지 않아서 축축하다시피 한 가슴으로 향하는 소주 한 잔은 그저 달고. 기름기 밴 육향은 오히려 담백하게 속으로 퍼진다. 허기 때문이라 하기엔 미각이 날카롭고, 그렇다고 예민하게 굴기엔 국밥집 공기가 수더분하다. 말하지면 약한 가을비가 내리는 날 목로의 풍경이 딱 그 정도란 말이다.


건배를 주고 받던 노부부는 끝내 술병과 국물을 다 비웠고. 굳이 법조계에 있었음을 자랑하는 날카롭게 마른 70대의 국 그릇은 언제 비워질지? 그 와중에 아이와 젊은 아내를 처음 국밥집으로 데려온 젊은 가장의 위풍당당이 제법 큰 소리로 퍼지고. 이미 혀가 꼬이기 시작한 중년의 전국 국밥지도는 맞은편의 흥미를 잃고 있다.

그제사 나는 옆 자리의 젊은 아가씨의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듣고, 반쯤 빈 술병과 시계를 번갈아 본다. 밖은 더욱 어두워 졌다. 뜬금없이 생기는 호기. 술의 힘인지, 배가 듣든해진 탓인지? 밖에 비가 더 세게 내려도 하나도 겁나지 않겠다 생각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혼자 마시는 막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