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우리가 산 가구들 중에서 TOP 3안에 드는, 너무 잘 샀다고 생각하는 게 침대다. 자는 게 워낙 중요하기도 하고 목, 어깨가 자주 아픈 나는 탄탄한 침대를 사고 싶었다. 침대가 가전보다 비싸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래도 침대는 꼭 좋은 걸 사자며 남편이랑 유명 브랜드들을 전부 돌았다. 그런데 내 탄탄함에 대한 내 기준이 너무 높은 건지 침대가 다 푹신하고 부드러웠다. 무슨 공법을 사용해서 어쩌구 저쩌구 좋다는 설명이 많았지만 직접 누워보니 내게는 너무 부드러웠다.
허리도 딱 받쳐주고 옆 사람이 뒤척여도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의 탄탄함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에 방문했다. 내가 사고 나서 2년쯤 지난 후부터는 유명한 광고 모델도 쓰고 인지도가 나름 올라갔지만 내가 살 때만 해도 알음 알음, 침대에 대해 엄청 알아본 사람들만 아는 그런 느낌의 브랜드였다. 와우. 여기 침대는 누우니까 너무 탄탄해서 바로 맘에 쏙 들었다. 남편한테 여기 꺼 사자고 하는 순간, 남편도 나에게 여기 껄 사자고 말했다. 머리 맡에 안경이나 책을 둘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도 딱이었다.
안방에 어찌나 사이즈도 딱 맞는지, 우리를 위한 침대였다. 침대는 집에서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특히 나는 평소에 잠이 좀 심하게 많은 편이기 때문에 거의 침대랑 한 몸이라고 보면 된다. 결혼 후 2년 정도 대학원만 다니면서 놀았던 시기가 있는데 이땐 정말 하루에 15시간 이상 침대에 붙어 있었던 것 같다. 결혼하기 전이라면 엄마, 아빠가 혀를 끌끌 찼겠지만 이젠 집에 아무도 나한테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라는 기분 좋은 자유를 침대 위에서 만끽했다.
나는 침대에서 자리를 정할 떄 나름의 철저한 규칙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모든 사람의 오른편을 편안하게 느끼는 나는 침대에서도 오른쪽을 선호한다. 그렇지만 만약 오른쪽이 벽에 붙어 있다면 오른쪽을 포기하고 왼편에서 잔다. 남편도 선호도가 있긴 할텐데 선택권이 없다. 그렇게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침대 오른편이 내 지정석이 되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안방에 침대 앞에 TV를 설치하는 게 나름의 로망(?)이었는데 집 구조상 그건 좀 어려워서 TV는 거실에 설치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침대 앞에 TV가 있었으면 난 15시간이 아니라 20시간을 안방에서 보냈을 거다. 남편은 가끔 침대 아래 누가 족쇄 체워놓은 거 아니냐고 하는데 진짜 이게 벌이라면 평생 받아도 좋을 것 같다.
침대에서 나는 보통 똑바로 누워서 정자세로 자는 편이다. 두 손은 가지런히 모아서 백설공주가 자는 것처럼 배꼽 위에 올려둔다. 특히 20대 중반부터 아팠던 목, 머리 때문에 난 웬만하면 똑바로 누워서 잔다. 남편은 무조건 옆으로 누워서 다리 사이에 큰 베개를 끼고 잔다. 근데 문제는 항상 내 쪽이 아닌 벽 쪽을 보고 잔다는 거다. 몇 번은 그러려니 했는데 항상 나는 남편 등쪽만 보고 자는 게 싫어서 '내 쪽 보고 자~~!! 왜 저쪽 보고 자냐구' 하면서 뭐라고 했다. 그러니까 남편은 오른쪽을 보고 자는 게 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언젠가 우리가 자리를 바꿔서 내가 왼쪽편에 잔 적이 있는데 웬걸 몸을 왼쪽으로 돌리는거다. 진짜 웃기다. 진실이 밝혀졌다. 얘는 오른쪽으로 돌아서 자는 게 편한 게 아니라 내 쪽에 등을 두고 자야 편한거다. 가끔 내가 '내 쪽 보고 자라고~~~~' 엄청 얘기하면 마지 못해 내 쪽을 보고 잔다. 남편은 잘 때 진짜 이쁘다. 근데 남편도 내가 깨 있을 땐 맨날 자기 괴롭히고 장난만 치고 그러는데 자면 진짜 예쁘단다. 그래서 '잘땐 천사' 줄여서 날 '잘천이'라고 부르곤 한다. 남편이 자는 모습을 보면 갑자기 오늘 내가 남편한테 잘 못 대해준 일들이 떠오르면서 '내가 왜 그랬지' 절로 반성하게 된다. 엄마들이 애기 자는 모습 보면서 생각하는 거랑 비슷한 마음이려나. 하여튼 서로 자는 모습을 가장 예쁘게 생각하는 우리는 침대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보통은 침대에 누워서 혼자 혹은 같이 숏츠, 릴스 같은 영상을 보다가 자는데 중간에 끊기가 어렵다. 요즘 남편은 무슨 코첼라(음악 페스티벌)에 나온 제니(블랙핑크, 가수)의 춤 영상을 미친듯이 보고 있다. 나까지 춤을 외울 지경이다. 가끔은 자기 직전에 30분 정도 각자 침대에 앉아서 독서타임을 갖기도 한다. 요즘 나는 해리포터를 읽고 있는데 이게 읽다보면 빠져들어서 30분이 진짜 훅 간다. 스마트폰 중독인 동시에 책(활자) 중독인 남편은 스마트폰 봤다, 전자책 봤다 바쁘다. 독서타임을 갖고 자면 뭔가 오늘 하루를 잘 보낸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누울 땐 이렇게나 행복하고 포근한 느낌이 드는 침대가 아침에 일어날 때는 정말 헤어나올 수 없는 늪 같이 변한다. 가뜩이나 아침 잠이 많은 나에게 '조금만 더 누워봐~~! 진짜 포근하다?' 라면서 기어코 약속에 늦게 만든다. 침대는 우리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