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동생과 소소하게 하는 프로젝트에 쓰일 내 프로필 자기소개를 써야 했다. 자기소개는 회사에 지원할 때 제외하고는 써 본적이 전무한데다가 커리어에 한정짓지 않고 나의 인생을 관통하는 자기소개를 쓸 기회는 더더욱 없었다. 그럼에도 세상 그 무엇보다 나에 대한 관심이 압도적으로 많은 나는 평소 '나'와 '나의 삶'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서 그런지 5분만에 후루룩 자기소개를 완성했다. 취업에 필요한 자기소개를 쓸 때보다 훨씬 솔직하고 말랑말랑한 글이었는데, 어김없이 일에 대한 이야기는 빠질 수가 없었다. 사실 하루에 깨어있는 시간의 반 이상을 쓰는 게 일인데 일 얘기가 빠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일거다. 나의 자기소개는 이런 첫 줄로 시작한다. "저는 좋아하는 일을 끝내 직업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저 말은 나의 특이한 커리어 이력을 설명하는 중요한 이유다. 나는 보통 꽃히는 무언가가 생기면 단순히 경험해보고 취미로 두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어느정도 전문가라고 불릴만한 사람이 돼서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아봐야 그때서야 이 일을 지속할지 말지 고민의 기로에 서게 된다. 보통의 경우에는 나처럼 직업으로 좋아하기 전에 먼저 '내가 이 분야로 갈지 말지'를 먼저 고민할텐데 나 같은 경우엔 좋아하는 걸 넘어서서 직업적으로 경험한 후에야 커리어에 대한 본격적인 기로에 서게 된다. 왜 그러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 단순히 그냥 잘하는 일보다 훨씬 더 많은 열정, 에너지, 시간을 쏟고 싶다는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로 인정을 받고 싶다는 마음이 큰 것 같다.
물론 N잡러 프리랜서로서 지금은 내 직업이 하나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현재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모두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다. 확실히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잘하는 일은 조금 권태롭고 기계적으로 움직일 때가 많지만 타인으로부터 쉽게 인정받고 나에게도 잘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보니 안정감이 든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조바심이 난다. 이 일을 밀고 나가도 먹고 살 수 있을까, 남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딴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두근거림과 기분 좋은 몰입은 나를 잘하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에 많이 머무르게 만든다. 나에게 만약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중에 하나만 택해야 한다고 하면 '좋아하는 일'을 택할 것 같다. 잘하는 일을 선택하면 안정적이고 순탄한 삶을 살겠지만 내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 질투가 나를 잠식할 것만 같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택하면 나의 재능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는 순간이 분명 있겠으나 내가 하루의 대부분을 여기에 쓴다는 게 아깝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내 생각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거라는 걸 안다. 많은 사람들은 안정감, 돈, 전도유망함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보통 좋아하는 일보다 잘하는 일을 택한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되냐 하는 결정은 그 자체로 결정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 잘하는 일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에 대해 버틸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라면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이 좋다. 반대로 좋아하는 일을 택했으나 잘하는 일을 택하지 않은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잘하는 일을 택해야 편안하게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평론가 이동진은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에 대해 (나와 살짝 다른 견해긴 하지만) 나름 명쾌한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다음은 이동진이 한 유튜브 방송에서 말한 내용이다 "잘하는 일을 선택하는 게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첫 번쨰 이유는 인간의 욕망은 변하기 때문에 지금 좋아하는 일을 10년 후에도 좋아할 가능성은 낮다. 두 번째 이유는 좋아하는 것을 잘하게 되는 것은 재능의 영역이 개입할 여지가 많기 때문에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잘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일의 재미라는 게 꼭 과정상의 즐거움 뿐만 아니라 일을 끝낸 뒤에 성취감이나 타인의 인정 등에서 얻는 즐거움을 얻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잘하는 것을 좋아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우리는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논점을 놓치고 있다. 어떤 일을 내가 좋아하는 건지, 잘하는 건지 알기 위해서는 일단 뛰어들어서 경험해봐야 안다는 것이다. 그 일을 설명한 책, 그 일과 관련된 전문가의 조언으로 나의 기호와 (앞으로의) 전문성을 점쳐보기엔 실제와 괴리가 매우 커질 수 있다. 물론 나처럼 이것 저것 찔러대면서 좋아하는 일을 끝내 직업으로 삼는 것은 어렵기도 하지만 권장하는 방법도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일에 대해 내가 거의 인생의 대부분을 투자해야 한다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것 보다는 훨씬 더 신중하고 정성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