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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계의 지킬앤하이드

by 클라우드나인

우리 엄마는 내가 결혼을 하기로 결정한 후에 걱정하는 것이 몇 가지가 있었는데(바로 그 걱정하는 점을 남편이 완벽히 품어줄 거라 생각해서 높은 점수를 주기도 했지만) 그 중 한 가지는 생활 습관이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낮밤 구분 없이 내키는 대로 생활하는 것의 문제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즐기는 나의 태도와 아무데나 물건을 올려두면 그곳이 바로 그 물건의 자리요~ 하는 내 정리 방식이었다. 이 글에서는 이중에 두 번째인 정리 방식, 청소 등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엄마와 함께 살 때는 (쓰면서도 불효녀 같은데...) 다른 건 진짜 다 넘치게 잘 하면서 청소에는 유난히 관심 없었던 나는 엄마에게 모든 정리 정돈과 청소를 자연스레 맡겼다. 엄마도 청소하기를 싫어했겠지만 일단 보고 나면 청소를 안 할 수 없는 나의 방 상태를 보곤 어쩔 수 없이 걸레와 청소기를 들었다. 머리카락이 떨어진 곳은 그냥 넘어다니고 책상은 편집샵의 진열장이 된지 오래였다. 넓은 학생 책상에서는 이것 저것 밀어서 노트북을 놓을 자리만 겨우 확보할 수 있었다. 미처 책장에 꽂지 못한 책들과 각종 프린트물, 그때 그때 사거나 선물 받은 잡동사니들이 널려 있었다. 물론 장식장이나 서랍은 있었지만 거기도 사정이 좋지는 않았다. 그냥 책상 위의 상황을 복붙해놨다고 보면 된다. 한 번 열어서 물건을 찾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서 아예 열지 않게 되는 곳 말이다.


엄마가 당시에 예비 남편을 만날 때마다 결혼 하기도 전부터 나의 생활 태도와 습관에 대해 미안해 하는 대화는 달갑지 않았다. "OO이한테 미안해서 어쩌지" "얘가 자기 방도 안 치워서..." 그렇지만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걱정이 올라왔다. '내가 진짜 너무 더럽고 청소 안 해서 싸우면 어떻하지...' 그래도 어떻게든 마음 넓은 남편이 받아주겠지 생각하며 결혼 뒤로 고민을 넘겨버렸다. 결혼 하기 몇달 전 전세난 때문에 신혼집을 미리 마련했다. 결혼 후에 들어와서 생활할 것을 생각하며 인테리어부터 청소 하나 하나까지 직접 하면서 아기 자기한 생활 공간을 만들었다. 집에서는 방에 있는 머리카락도 집어본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마련한 우리 집(전세지만)에서는 창틀, 바닥과 벽지 사이까지 꼼꼼하게 무릎을 꿇고 물걸레로 여러 번 닦아냈다. 집에 동생이 놀러왔을 때는 머리카락 떨어지니 머리를 묶고 있으라고도 하면서 거의 지킬 앤 하이드 급의 반전을 보였다. 엄마는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배신감이 들었는지 "집에 있을 때는 정리도 안 하더니.. 자기네 집은 쓸고 닦고 광이 나게 하네"하며 기가 차 했다.


남편은 딱 봐도 정리정돈이 칼 같이 된 단정한 비주얼이고 평소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나 분위기를 봐도 정말 깔끔의 정석을 보여줄 것 같다. 나도 남편의 깔끔함에 대해서는 1%의 의심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나의 지저분함을 남편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만 했다. 그런데 왠걸, 같이 살아보니 남편이 상당히 프리한 게 아닌가. 회사 다녀오면 겉옷을 바로 걸지 않고 의자 위에 쌓아두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난 뒤 껍질을 앉아있던 의자 위에 그대로 두고 세면대에는 항상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어서 누가 사용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남편은 깨끗함을 유지하고자 하는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았고 어느 정도 집이 더러워졌다라는 판단이 서면 날을 잡아서 청소하면서 비워내는 타입이었다. 나 같은 경우는 극과 극으로 아예 손 안 댈때는 손도 안 대면서 더러워지는 집을 외면하고 깨끗하게 유지할 때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 계속 주우며 먼지 하나 없는 호텔급으로 유지하려고 한다. 내가 남편에게 잔소리 들을 것을 걱정했는데 이제는 남편에게 하루에 3번 이상은 잔소리를 하는 것 같다. 남편은 내가 잔소리를 해도 꿋꿋하게 옷을 의자 위에 걸쳐 놓고 먹고 난 아이스크림 봉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나처럼 지킬앤하이드가 아니라면 역시 자기가 살아온 30년 남짓한 세월의 무게를 한 번에 없앨 수는 없다. 내가 누군가와 결혼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생활 방식까지 함께 들여오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의 시간들이 충돌하면서 불편하지 않을 수준에 도달하는 데는 꽤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왜 결혼하고 생활 방식이나 습관이 안 맞아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도.


남편이 할 때까지 기다려서 정돈하는 게 습관이 되도록 가르쳐야지! 하는 생각을 가졌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보면서 답답한 사람이 이 게임에서는 지게 되어 있다. 더러워지는 세면대를 보며, 쌓여 있는 옷더미를 보며 참기 힘들어하는 나는 겉으로 한숨 푹푹 쉬면서 집을 치우기 시작한다. 결혼한 지 4년 정도가 지난 지금 다시 우리의 생활을 되돌아보면 그래도 한 20% 정도는 서로의 생활 습관에 적응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편한 방식으로 살아왔던 3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또 다른 습관을 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지킬앤하이드 급으로 변한 나조차도 어떤 특정한 부분에서는 그 습관을 바꾸는 것을 아직도 힘들어한다. 그래도 우린 상처 받지 않도록 주의하며 각자의 습관을 '우리의 습관'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 내 옆에 앉아서 아무것도 모른 채 업무를 보고 있는 남편에게 난 이 글을 다 쓰는대로 말할 거다. "내가 옷 정리 바로 바로 해달라고 했잖아~!', '아이스크림 먹고 껍질 바로 버리라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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