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까지 난 아침밥을 먹어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냥 달걀 하나, 사과 하나 먹는 수준이 아니라 아침부터 고기를 구워먹거나 9첩반상(?)을 엄마에게 요구한 적도 많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까지는 어떻게든 내 비위를 맞춰 오늘 하루도 무사히 공부를 조금이라도 더 하게 하려는 엄마의 노력으로 나의 아침은 항상 내 입맛에 맞춰 정성껏 준비되었다. 가뜩이나 남들보다 5배, 10배는 잠이 많은 나는 식탐도 많아서 등교 시간이 늦어서 엄마 속이 타거나 말거나 꼭 밥을 먹어야 움직였다. 일찍 일어나지도 않는데 밥을 챙겨먹으려는 날 위해서 엄마는 아마 도시락 통에 밥을 꾹꾹 눌러담으면서 화도 꾹꾹 담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엄마가 태워다 주는 편안한 차 안에서 도시락을 까 먹고 다 먹지 못했거나 너무 늦어서 그마저도 먹을 여유가 없을 때면 학교에 도시락통을 싸가 어떻게든 아침을 먹으며 행복해 했다. 당시에는 일상적으로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풀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나의 모든 스트레스 해소가 먹는 것에 맞춰져 있었던 것 같다. 학교 끝나기 전에도 나의 최대 고민은 끝나고 30분 후까지 학원에 가야 하는데 중간에 카페에서 케이크도 먹고 싶고 분식집에서 떡볶이도 먹어야 하는데 어떻게 동선을 짜야 하지? 같은 것들이었고 맛있는 것들을 음미하며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잊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집에서 항상 나를 챙겨줄 누군가가 있었을 때는 아침을 꼬박 꼬박 챙겨 먹었다. 엄마가 더 일찍 나가는 날이 많았지만 언제나 나를 위해 매일 다른 메뉴를 고민해 차려놓았고 나는 그 특권을 오랫동안 누렸다. 항상 엄마를 집안일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울부짖던 나였는데 정작 내가 엄마로 인한 혜택을 가장 많이 보고 있지 않았나 싶다. 결혼 후에도 처음에는 나의 아침식사 습관을 지켰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챙겨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 굴복했고 나의 30년 아침밥 생활은 끝이 났다. 남편도 아침을 꼭 챙겨먹어야 하는 스타일이었으면 또 달랐을텐데 남편은 워낙 아침에 아무것도 먹지 않는 타입이고 굳이 먹는다 해도 우유 한 컵? 정도 먹는 사람이라 나처럼 먹었다가는 아침부터 더부룩해 하루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남편과 살다보니, 또 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고 스스로 아침을 챙겨야 하는 상황에 놓이니까 자연스럽게 오래된 나의 습관은 쉬이 바뀌었다. 간단하게 과일이나 빵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했고 일찍 일어나는 날은 가끔씩 아무것도 먹지 않기도 한다.
아침 뿐만이 아니라 점심, 저녁 식사의 모습도 꽤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내가 항상 "오늘 저녁 뭐야?"라고 묻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남편과 나 둘다 일하다 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오면 "오늘 뭐 먹지?"라는 톡을 하곤 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주 가끔씩만 내가 음식을 만들어 가족들한테 대접했고 그럴 때 뭘 먹을지 고민하는 일은 일상에서 벗어난, 설레는 고민이자 선물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금은 뭘 먹을지 매일 매일 고민하게 게 됐고 떠올리는 음식 종류가 매번 5~6가지 내외인 나는 나의 창의력의 한계에 짜증을 냈다. 남편에게도 "뭐 먹고 싶은지 말해줘"라고 할 때 가장 듣기 싫은 대답이 "다 괜찮아~"이다. 실제로 남편이 밥이나 반찬 투정을 하는 스타일은 전혀 아니고 내가 만들었다면 항상 최선을 다해 맛있게 먹어주지만서도 "다 괜찮아~"라는 대답은 메뉴에 대한 결정이 온전히 나에게 돌아온 것 같아 울화통이 터진다. 제발 먹고 싶은 걸 말하라고 남편에게 정색하기도 한다. 가끔은 남편이 회식을 한다고 하면 안쓰러운 동시에 조금은 즐겁기도 하다. 뭔가 요리를 하지도 않으면서 괜히 남편이랑 같이 저녁을 먹을 때는 반찬, 국, 메인 반찬으로 대강이라도 구색을 맞춰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약간의 부담감이 찾아온다. 그러나 혼자 먹을 때는 그냥 진짜 냉동실에 있는 너겟을 구워 먹거나 빵을 데워 먹거나 내 배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에 식사가 두서없어진다. 남편이 회식하고 오는 날에는 식사가 맘대로 두서없어져도 되는 날이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고 그렇게 음식 차리는 것도 귀찮아 하는 나도 남편이 식사를 차려줬으면 하고 바란다. 가끔 주말에 남편이 나보다 일찍 침대에서 일어나 핫도그를 만들거나 여름에 수박을 통에 썰어서 넣어놓을 때면 사랑이 샘솟는다. 내가 정말 귀찮아 하는 과정들이기에 그 시간들을 이겨내고 맛있게 먹는 나를 상상하면서 음식을 준비했을 남편의 모습은 큰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또 일상에서 살뜰히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선사한다. 그래서 그런지 은근히 남편을 압박하며 "나도 여보가 오징어 볶음 만들어줬음 좋겠다" 하며 먹고 싶은 걸 (사면 훨씬 빠르고 편할텐데) 만들어달라고 할 때가 종종 있다.
나도 평소에 신경써서 요리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마음의 여유가 생기거나 문득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면 내 딴에는 꽤나 정성을 들여 뭔가를 만들려고 한다. 토마토를 하나 하나 손으로 일일이 까야 하는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만들기도 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가족들에게도 거의 요리를 해준 적이 없었는데 역할놀이를 하는 것 같았던 신혼 초에는 각종 반찬과 메인 요리들을 많이 만들었고 엄마, 아빠에게도 가져다 줬다. 마치 내가 이렇게 잘 챙겨먹고 잘 지내고 있어를 그런 순간으로 대신 말했던 것 같다. 엄마도 예전처럼 매일 보지 못하는 나를 위해 집에 갈 때마다 반찬과 과일을 항상 양 손 무겁게 챙겨두곤 했다. '너를 못 보는 날에도 이렇게 너를 사랑하고 생각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반찬을 양 손 가득 챙겨줄 때마다 고마움 반, 고생했을 거라는 생각에 불편한 마음 반이다. 됐다고 해도 어차피 뭔가를 챙겨 놓을 엄마를 위해 나도 본가에 갈 때마다 뭔가를 챙겨가고 싶은 마음에 괜히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한다. 이렇게 보면 음식은 상대방에 대한 나의 마음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과정 같기도 하다. 너가 고생하며 보냈을 오늘 하루를 위로하고 또 공감하기 위해 내가 이렇게 따뜻한 음식을 준비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언젠가 요리에 취미를 붙이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남편을 위해 따뜻한 밥을 짓고 구색을 맞춰 국을 데우고 반찬을 정갈하게 꺼내어 놓는 것으로 나의 사랑이 충분히 느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