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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에 우리 집에 머물다 간 단풍 -2

단풍이를 통해 보는 나

by 클라우드나인

단풍이와 함께 있던 3주 동안 나는 나와 남편의 극명하게 다른 성향을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나보다 약한 어떤 존재를 보살필 때 어떤 태도와 방식으로 접근하는지 우리 둘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우선 나는 약간 나부터가 어떤 면에서는 애 같은 부분이 있어서 강아지와 기 싸움 할 때가 있었다. 훈련을 시킬 때라던지 잠 자리를 정할 때라던지 강아지가 말을 안 들으면 칼 같이 단호하게 무시하거나 밀어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단풍이가 자꾸만 내가 일하는 책상 밑에 오줌을 쌀 때면 화가 확 치밀어올랐다. 그래서 단풍이에게 "이렇게 하면 안 된댔지!", "하지말라고 했지!"라며 크고 무서운 목소리로 얘기했다. 강아지는 단기 기억력이 10초 정도라고 하니까 아마 단풍이는 10초 동안 주눅들고 나의 눈치를 봤을 것이다.


책상 밑에 들어가서 오줌을 닦아낸 후에도 나의 화는 바로 쉽사리 풀리지 않아 이미 단기 기억력 10초를 다 써버려 리셋된 표정으로 날 보고 있는 단풍이를 괜히 째려보기도 했다. 한 2~30분이 지나서야 화가 완전히 풀린 나는 단풍이를 다시 안아올려 무릎 위에 올렸다. 단풍이 입장에서는 환경이 바뀌었고 아니면 그냥 내 방 책상 밑이 편했거나 배변 패드가 충분히 깨끗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나를 일부러 힘들게 하려거나 약올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을 거다. 그냥 그 순간에 자신의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게 아니라 방금 서술한 것처럼 하나 하나 차분히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스스로 인지하도록 노력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남편에 비해 감정적인 에너지 소모가 컸던 것 같다. 또한 강아지의 의사와 상관없이 번쩍 들어서 끌어안거나 통제할 수 있는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내가 강아지에 대해 가진 절대적인 힘을 체감했다. 나쁜 마음을 먹으면 너무나 쉽게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힘의 비대칭성을 느꼈다. 상대방에게 뭔가를 강요하거나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관계가 주는 부정적인 카타르시스에 빠졌던 걸까 고민하기도 했다. 단풍이는 나로 하여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남편은 '강아지니까' 하는 생각이 너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실행되는 듯 했다. 이 귀여운 존재가 실수할 수도 있지, 그냥 닦으면 되지 하는 정도의 가벼운 생각 이상으로 남편의 마음은 무거워지지 않았다. 나랑 단풍이가 투닥투닥하면서 찐하게 친해졌다면, 기본적으로도 스트레스 역치가 낮은 남편은 단풍이에게 불필요한 감정 소비를 하지 않고 귀엽고 좋은 기억들만 쌓아갔다. 가끔은 하루 종일 남편 품에 안겨 있는 단풍이에게 질투심이 들기도 해서 "거기 내 자리야"라며 남편 무릎 위에 앉아 있는 단풍이를 내려놓고 내가 남편 무릎 위에 앉기도 했다. 단풍이가 남편에게 무조건적인 환대와 충성을 하듯이 남편도 단풍이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았다. 남편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돌보기'에 특화된 사람, 다정함이 무기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확실히 '돌보는 사람'보다는 저런 사람에게 '돌보아지는 존재'가 되고 싶은 쪽에 가깝다. 나를 기본적으로 귀엽게 봐주고 뭘 해도 우쭈쭈 해주는 그런 보살핌이 아직도 고픈 걸까. 그래서 내가 아이를 낳지 않고 싶은 것도 있다. 나의 역할이 누군가를 돌보고 보살피는 것보다 '돌보아지고 보살핌 당하는 것'이길 바란다. 물론 무언가를 돌보고 보살피는 것은 부단한 노력으로 완성된다. 그럼에도 성향적으로도 타고 나는 부분이 상당하다. 나처럼 자연스럽게 체화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매 순간 나의 말과 행동을 인지하고 검열하고 습관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선천적으로 다정하고 누군가를 보살피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는 남편과 결혼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강아지와 함께 하면 겪었던 어려움을 쓰다 보니 좋았던 순간들에 대해 많이 얘기하지 않은 것 같지만 나 또한 단풍이가 주는 새로운 종류의 행복감을 느꼈다. 끊임없이 안아달라며 그 맑고 순수한 눈망울을 한 채 두 발로 서서 나를 긁는 순간, 잘 때 엉덩이를 슬금슬금 내 쪽으로 들이밀며 자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나에게 내보이던 순간, "산책 갈까?" 한 마디에 갑자기 신나서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순간들은 지금도 아주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내가 강아지에 대해 가졌던 로망 한 가지는 내가 밤 늦게까지 일할 때 강아지가 무릎 위에 앉아 함께 하는 것이었는데 3주간 단풍이와 나는 많은 시간들을 이렇게 꼭 붙어 함께 했다. 그러나 그 행복하고 벅찬 순간들 뒤에는 단풍이를 혼자 놔뒀을 때의 초조함, 조바심, 죄책감과 함께 그 아이가 자신의 욕구를 채워줄 유일한 존재인 '나'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부담감도 함께 했다. 직접 강아지를 키워보지 않았다면 나는 앞 부분의 행복하고 벅찬 순간들만을 상상하며 '강아지 키우고 싶다'라며 막연히 다른 견주들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강아지도 아기를 키우는 것 만큼이나 무거운 책임감과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몸소 경험하고 나니 쉽게 강아지를 키울 수 없게 되었다. 남편은 단풍이가 우리 집을 떠나던 날 단풍이에게 마지막까지 손을 흔들고 집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에서 거의 눈물을 흘릴 뻔 했다. 나와 반대로 단풍이와의 만남 이후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 쪽으로 확 기울게 된 남편은 밤마다 누워서 흐뭇한 얼굴로 강형욱 훈련사가 강아지들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아직은 강아지로 얻는 행복과 즐거움 보다는 부담감이 크게 느껴지는 나에게 당장 강아지 키우기는 어려운 선택지다. 또 이번에 강아지를 돌보면서 우리 집에서 나는 '돌보아지는' 역할을 맡고 싶다는 생각이 생각보다 더 크구나를 깨닫기도 했다. 그래서 강아지 사진과 영상에 푹 빠져 있는 남편에게 "90세 되면 강아지 키우게 해줄게~"라고 말하고 있다. 언젠가 나의 방랑벽이 잦아들고 누군가를 돌보는 기쁨이 훨씬 커지게 되면, 그때가 강아지와 함께 할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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