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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씨네 Apr 15. 2018

몬태나

인간 존엄성 상실 사회. 누가 야만인이고 누가 악당일까?



서부 영화에는 일정한 틀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무자비한 총잡이 악당들에게 습격을 당하고 선한 보안관이나 또 다른 총잡이가 나서서 아들을 퇴치하는 게 주된 내용입니다. 꼭 희한하게도 이들 서부 영화는 마을의 중심에서 총을 누가 먼저 뽑는가에 따라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고 승리한 총잡이는 멀리 석양을 등지고 다른 곳으로 향합니다. 존 웨인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마치 이런 서부영화의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었죠.

시대가 변하면서 서부 영화는 종적을 감춘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서부 영화가 총격전의 속도라던가 진행 과정도 느린 건 아니었지만 더 빠른 전개와 속도의 영화들은 마이클 베이처럼 같은 석양이라도 석양을 어떻게 보여주냐에 따라 액션의 느낌을 바꾸어주는 계기가 되었죠.

타란티노는 최근 두 편의 서부영화 스타일의 작품을 만들었지만 그런 영화들을 제외하고는 서부 영화가 사라진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좀 특별한 영화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곰들의 계곡'을 지나 인디언들이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겐 어떤 여정이 기다리는 것일까요? 영화 '몬태나'(원제 Hostiles/2017) 입니다.











1820년대 미국 멕시코의 한적한 농가….
엄마로 보이는 여인이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누구보다 단란해 보이는 이 가정. 근데 갑자기 코만치족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당황하게 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말을 빼앗고 금품을 약탈하는 상황입니다. 아무래도 이동수단이자 식량으로 사랑 받는 게 말인지라 말을 사수하는 것이 급선무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파치족의 난대 없는 등장으로 이 여인은 자신의 남편과 세 아이를 잃었습니다.

한편 같은 시간대의 다른 공간에서는 미연방군 군인 조샙이 지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거 많은 이들을 사살해 악명 높았던 인디언 옐로우 호크를 그의 고향으로 보내기 위함이었죠. 인도적인 차원이라 말하지만 사실 옐로우 호크는 암에 걸린 상황에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건 정부의 생색내기나 다름없었죠.


조셉은 그런 인디언들을 당연히 좋아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들을 돕지 않으면 퇴역을 앞둔 상태에서 군사제판을 받아야 한다고 반협박까지 왔던 터라 추장을 포함 한 가족을 고향으로 보내러 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정 중에 바로 졸지에 미망인이 된 로잘리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죠.






분명히 이 영화는 서부극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에도 말씀드렸지만 건맨끼리 무게를 잡고 누가 먼저 뽑느냐는 대결도 없었고 선술집에서 자기 잘난 맛에 싸우는 이들의 모습도 없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이면 계속 복수를 할 게 뻔한데 이들은 어느 사람도 복수를 입에 담지도 않습니다. 조셉과 로잘리는 이들 인디언을 이해하기 힘든 존재였지만 점차 이동하면서 그들을 이해하는 관계가 됩니다. 사실 총격전은 정반대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것이죠. 그들을 복수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 서로를 이해하고 지켜주는 관계로 말입니다.

그런데 묘한 상황에서 엉뚱하게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과거 조셉과 함께 인디언을 대량 학살했던 탈영병인 찰스를 압송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데 과거 인디언을 학살하는데 동참했던 조셉이 자신을 무시하고 인디언을 지키는 임무를 갖게 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인디언들을 야만인이라고 말하던 이들이지만 진짜 야만인 혹은 악마는 누구인가 되묻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죠.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순간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죠. 누구든 악마도 될 수 있고 야만인이 될 수 있으며 악당이 되는 것이죠. 영화에서는 이들 아파치족이나 후반에 선한 인디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상황에서 이들을 공격하던 백인 남성들이 악당으로 등장했지만, 그들만 악당이라 칭할 수 없는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또한, 이 영화는 죽음을 단순히 전시하는 의미로 보여주질 않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사연 없는 게 어디 있을까 싶겠지만 우울증에 걸린 병사의 모습에서는 정당화되지 않는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소모적인 싸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결국, 자신들을 괴롭히던 아파치족이 누군가에게 당하고 한편으로는 아파치족이나 백인들에게 희생당한 또 다른 사람들도 결국에는 안타깝고 슬픈 죽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누구도 희생당하지 않는 평화와 공존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혈질의 군인에서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화하는 군인으로 등장한 크리스찬 배일, 사랑하는 가족들을 모두 잃었으나 살아갈 이유를 찾아가는 여인으로 등장한 로자먼드 파이크, 그리고 병들어가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것만큼은 누구보다 지혜로웠던 늙은 추장으로 등장한 웨스 스투디의 열연이 돋보인 영화였습니다.









흔히 말해서 총을 갈기는(?) 영화가 멋있는 영화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글쎄요? 저는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전쟁의 정당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몬태나'는 조금은 특별하고 인간적인 서부 영화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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