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무질서는 저절로 증가한다
이십대 시절, 처음 자취 생활을 통해 깨달은 것은 ‘집은 저절로 깨끗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널브러진 옷가지들은 스스로 정리되지 않고, 방바닥과 창틀에는 먼지가 쌓인다. 욕실의 줄눈에는 어느샌가 뽀얀 물때와 곰팡이들이 끼기 시작한다. 청소기를 가지고 집안을 돌아다니든, 물티슈와 걸레로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내든, 내가 스스로 에너지를 투입하여 움직여야만 비로소 집은 정리가 되고 질서가 유지된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집이 정돈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거슬러야 한다.
물리학에서 나오는 엔트로피는 쉽게 말하면 ‘가만 놔두면 점점 무질서로 흐르는 에너지’다. 뜨겁게 조리된 음식은 그냥 두면 자연스럽게 식고, 더 오래 두면 상하게 마련이다. 우리 집 창고에 오랫동안 보관 중인 자전거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체인에 녹이 슬고 타이어는 공기가 빠져나와 축 늘어진 상태가 된다. 이를 두고 엔트로피가 증가했다고 이야기한다. 따져보면, 우리 삶의 대부분의 ‘자연스러운 현상’은 엔트로피가 점차 증가되어 나름의 평형 상태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죽음 역시 인간이 세상과 더 이상 상호작용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평형상태에 이르게 되는 때라고 이해할 수 있다.
엔트로피 증가 법칙은 조직 안에서도 어김없이 일어난다. 조직도 살아있는 유기체이기에 조직의 성장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필연적으로 무질서와 비효율이 발생하게 된다. 조직의 엔트로피는 어느 한 가지 원인이 아닌,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증가하는데 대표적인 요인들을 짚어보자면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조직의 규모가 커지고 사업이 다각화되면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인원이 늘어나면서 과거의 소통 방식이 불가능해지고, 새로운 부서와 직책이 생기며 의사결정 단계가 늘어난다. 이로 인해 정보의 흐름이 느려지고 왜곡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로 사업이 확장되고 조직 목표가 다각화되면서, 한정된 자원을 두고 부서 간의 경쟁도 발생한다.
초기 조직의 질서를 유지하던 리더십의 에너지가 약화된다. 리더가 조직의 존재 이유와 비전(Why)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공유하는 노력을 멈추는 순간, 구성원들은 방향성을 잃고 각자 다른 해석을 하게된다. 상황에 따라 원칙 없이 의사결정이 번복되고 일관성 없는 메시지가 퍼지면서 조직 구심력이 약화되고 불확실성이 확대되며 무질서한 상태가 된다.
과거의 성공 법칙이 현재의 발목을 잡는다. 과거의 성공을 이끌었던 방식이나 제도가 신성시되면서, 변화된 환경에 맞는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관료주의가 심화되며 불필요한 보고, 과도한 승인 단계 등으로 창의성과 속도를 저해하는 대표적인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개인의 단기 실적이나 실패 없는 안정적인 성과에만 보상하는 시스템은 조직이 나아가려는 방향과 반대의 에너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직 고유의 문화적 자산이 옅어진다. 조직의 핵심 가치를 몸소 실천하며 비공식적인 구심점 역할을 하던 문화적 롤모델들이 퇴사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무형의 질서와 에너지가 함께 사라진다. 다양한 배경의 구성원이 빠른 시간 내에 합류하면서, 이 과정에서 소홀한 온보딩 전략으로 조직의 핵심 가치는 점차 희석되고 구성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행동하는 '문화적 무질서' 상태가 된다.
엔트로피의 특징은 어느 한 곳에서의 에너지 투입이 다른 곳에서 보이지 않는 비용 (무질서)를 축적시켜, 결국 예측하지 못한 더 큰 문제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즉, 문제 해결을 위해 투입한 잘못된 에너지가 당장은 보이지 않는 비용을 쌓아두었다가, 나비효과처럼 거대한 위기로 번지는 것. 그래서 성장하는 많은 스타트업 조직에서 매출과 시장 선점, 투자 확보에만 신경 쓰고 조직문화를 간과하다가 이후 조직문화 내부에 잔뜩 쌓인 엔트로피 때문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고전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아니 비단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대기업 역시 미래에 필요한 역량과 현재 보유 역량 간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며 조직 내 불만과 갈등이 빈번해지고, A급 인재들이 이탈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조직문화 업무를 아직도 단순히 서로 일하는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이벤트나 캠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OD(Organizational Development)는 어떤가? Change Management는? Employee Experience는? Talent Enablement는? Organizational Transformation은 좀 다르게 들리는가? 개념 구별은 그만하고 제발 그냥 변화와 실행에 집중하자)
만일, 팀 간의 목표가 서로 충돌하여 갈등이 일어나거나 우선순위가 모호해지거나, 전략적 가치가 없음에도 관성이나 책임 소재의 불분명함 때문에 리소스만 계속 잡아먹는 프로젝트들이 생겨나고 있다거나, 혹은 이전에 다른 팀에서 해결했던 문제를 새로운 팀이 처음부터 다시 해결하느라 시간 자원을 낭비하는 일 등이 반복되고 있다면 조직의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혹시,
주주나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문제를 덮고 단기적인 성과만 포장하고 있지 않는가?
언론에 기업 이미지를 좋게 홍보하기 위해 내부의 곪아가는 이슈는 외면한 채 성공 스토리만 퍼뜨리고 있지 않는가?
내부 구성원들의 비판과 책임 추궁이 두려워 실패를 공유하고 배우는 대신, 침묵하고 회피하는 문화를 만들고 있지는 않는가?
자신의 지위와 포지션을 지키기 위해 투명한 정보 공유를 막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있지 않는가?
나의 부족과 결핍이 드러나는 것이 염려되어 건설적인 반대의견에 귀를 닫고 듣기 좋은 말만 듣고 있지 않는가?
만약 이 질문들 중 하나라도 망설여진다면, 당신의 조직에서는 이미 엔트로피가 조용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고립된 환경에서 작동한다. 유일하게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수 있는 경우는 시스템을 ‘개방된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이 개방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바로 생명체의 활동이다.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하여 얻은 자원을 에너지로 전환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 당신의 조직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