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HR 세계
이전 경력 덕분에 헬스케어와 IT/테크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 업계의 커뮤니티에 속해 교류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어제는 유독 그 행운을 실감한 날이었는데, 낮에는 외국계 제약·의료기기 등 헬스케어 업계 HR 담당자분들과 북토크를, 저녁에는 네카라배토(네이버·카카오·라인·배달의민족·토스)로 대표되는 IT 업계 HR 리더들과 식사를 함께했다.
하루 동안 두 세계를 오가니, 마치 다른 나라를 여행한 것처럼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다. 단순히 분위기뿐 아니라 자주 쓰는 용어, 대화 방식, 핵심 이슈, 그리고 변화에 대응하는 조직의 리듬까지. 두 세계는 저마다의 고유한 문법과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헬스케어 업계는 외국계 기업이 대다수라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영어 단어가 섞여 나온다. "이번 세일즈의 옵스터클(obstacle)이 뭐였나요?"라거나 "고객과 잘 소셜라이즈(socialize)하는 게 중요하죠"와 같은 식. 이는 특정 의도보다는 오랜 습관에 가까운, 그야말로 한국어와 영어가 편안하게 공존하는 모습이다.
반면 IT/테크 업계의 '판교어'는 조금 다른 목적을 가진다. '얼라인(align)', '싱크(sync)', '이슈 레이징(issue raising)' 같은 단어들은 단순히 외국어의 차용을 넘어,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유대감을 표현하고, 때로는 '합의'나 '문제 제기'처럼 강하게 들릴 수 있는 표현의 온도를 낮춰 책임을 분산시키는 수단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헬스케어 업계에서는 유독 '트레이닝(Training)'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린다. 대부분 Sales 중심 조직이기에, 병원 관계자를 상대로 하는 전문적인 세일즈 스킬이나 제품 지식, P&L(손익) 관리 교육이 핵심 과업이다. 정해진 역할의 전문성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숙련'이 인재육성의 중요한 목표다.
IT/테크 업계의 HR은 '개입(Intervention)'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워낙 잦은 조직개편과 리더십 교체, 예측 불가능한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 구성원의 목소리는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 터져 나올 때가 많다. 따라서 HR의 과제는 단순히 교육 하나로 해결되기보다, 제도-리더십-커뮤니케이션을 아우르는 '입체적인 개입'을 설계하는 것에 가깝다.
헬스케어 산업은 진입 장벽이 높고 정부 정책과 규제에 큰 영향을 받기에, 비즈니스의 호흡이 길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이는 마치 정해진 코스를 완주해야 하는 '마라톤'과 같다. 담당자들의 사고와 행동 역시 신중하고 장기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경향이 있다.
IT/테크 산업은 시장 환경에 따라 비즈니스 모델이 급변하는 역동성이 특징이다. 끊임없는 '스프린트'의 연속이며, 때로는 갑자기 종목이 바뀌는 트라이애슬론(철인삼종) 경기가 생각난다. 이러한 환경은 조직 내부에 높은 긴장감을 유발하며, HR은 변화의 속도에 맞춰 조직의 구조와 시스템을 유연하게 바꾸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헬스케어 업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사회적 가치'와 '사명감'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서비스의 최종 수혜자가 '환자'이기에, 매출과 수익만큼이나 생명 존중과 사회적 기여라는 가치가 조직의 근간에 깊이 깔려있다.
IT/테크 업계는 그동안 '수평 문화'와 '자율성'을 주요 가치로 내세워왔다. 최고의 인재들에게 최고의 자율성을 부여하여 혁신을 만들어낸다는 믿음이 강하다. 이는 구성원들이 직설적이고 솔직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문화로 이어지며, HR은 이러한 자율성이 방임이 아닌 성과로 연결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헬스케어 HR이 미션 중심의 안정감 속에서 전문가를 길러낸다면, IT/테크 HR은 변화 중심의 역동성 속에서 시스템을 설계하는 느낌이랄까. 중요한 것은, 두 세계 모두 결국 '사람'을 통해 조직의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점. 모두 이 목표를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다움'과 '우리다움'의 최적의 시너지를 찾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