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조직'이라는 환상 너머의 현실적인 대안에 대하여
AI Festa 2025, HR Tech Leaders Day에 세션 강연을 마친 후 늦은 밤, 커뮤니티에 내 강연을 들은 어느 분의 글이 올라왔다. '현실적으로 개인의 이기심이 발현될 수 있는 조직이 가능한가'에 대한 물음.
그 의구심 섞인 글을 보고 먼저 무척 반가웠다. 이전부터 이러한 질문에 대해 사람들과 더 활발하고 건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 자고 일어나 아침에 생각을 정리하여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글로 적어 공유하였고, 다행히 많은 분들이 공감을 표현해 주시고 글을 남겨주신 분과도 건강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조직 안에서 개인의 이기심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더 많은 사람들과 이 주제에 대한 논의와 생각이 연결되고 확장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커뮤니티 안에서 나눈 내용을 이곳에 옮겨본다.
Q.
7년째 최대표님의 생각에 공감하며 문득 들었던 생각입니다.
조직 내 역할이 다르고 내부 조직 간 이해관계에서 충돌이 발생한다면 “개인의 이기심이 자유롭게 발현될 조직“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건 조직 편제의 문제로 전이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봉착합니다. 듣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현학적인 문장이라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노와 사의 관계, 세대, 계층, 가치관에 따라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드러나는 게 우리네 일상입니다. 비전체계, 조직문화 등으로 전이하여 해결할 수 있겠지만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개인의 선량함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채용을 잘해야겠지요. 오늘 저희 팀원들과 함께 라이브로 강연을 듣고 나서 피드백을 해보면서 각자의 역할에서 무엇을 시도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이야기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최대표님도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실 것입니다. 무언가 조직문화에 대한 문제이기보다는 이기적인 개인의 공동체 적응 패러독스의 문제가 성숙한 개인의 솔루션으로 방향이 잡아지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된 팬의 칼럼 한편이라 생각하시고 슥 보시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A.
안녕하세요,
어제 올려주신 글을 보고 너무 반갑고 기뻤습니다. 저는 이러한 논의가 건강하고 활발하게 일어나길 바라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덕분에 저도 제가 가지고 있는 질문을 더 구체화하고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니까요. 강연을 팀원들과 논의 주제로 삼아주신 점에 대해서도 깊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조직 안에서 개인의 이기심’에 대해 제 생각을 좀 더 정리해 공유드려봅니다.
먼저 저는 조직 안에서 ‘경청’이나 ‘배려’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기적인 행동이 이타적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환경을 설계하는 게 더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조직 안에서의 여러 관계와 차이로 인해 ‘서로 배려합시다’와 같은 당위적 구호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힌 조직 현실에서 힘을 잃기 쉽습니다. 시스템이 개인 성과와 같은 이기적인 행동을 장려하는데, 개인에게만 이타적이기를 요구하는 것은 모순일 수 있겠지요. 사람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성장이나 성공에 대한 욕구가 강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비유하자면 ‘차 조심’ 같은 팻말보다 안전하게 설계된 ‘횡단보도’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팻말은 운전자와 보행자의 선의에 기대지만, 횡단보도는 각자의 목적 (빠른 이동, 안전한 횡단)을 따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모두의 안전이 지켜지는 결과가 되죠. 가장 성숙한 형태의 문화는 ‘착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닌, ‘각자의 최선이 공동의 최선이 되는 시스템을 갖춘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개인의 ‘선량함’과 조직 안에서의 ‘이기성’을 구별해서 생각하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선한 의도를 가진 행동을 이기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두 개념을 구별하는 기준은 ‘행동의 동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즉 그 행동이 ‘궁극적으로 누구를 향해 있는가’죠.
선량함의 행동은 타인이나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동료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 팀에 대한 소속감, 공동의 목표에 대한 헌신에서 비롯되겠지요. 동료의 성장, 팀의 성공, 조직의 발전이 곧 나의 기쁨과 보람이 됩니다. 내 평가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겪는 동료의 일을 자기 시간을 할애하여 도와주는 행동이나 팀의 성공을 위해 동료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고 나서는 행동을 예로 들 수 있을 겁니다.
이기성은 ‘나 자신’의 성장과 성공을 지향합니다. 자신의 전문성을 높이고, 영향력을 확장하며, 그에 따른 인정과 보상을 얻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겠죠. 행동의 일차적인 목적은 자신의 성장, 성취, 목표 달성입니다. 조직에 대한 기여는 그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물입니다. 예를 들어, 조직 안에서 승진 요건에 '육성' 항목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승진을 위해 후배를 적극적으로 멘토링하는 행동이나,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해 가장 어려운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여 그 결과물을 조직 전체에 공유하는 행동입니다.
정리하면 선량함은 관계, 기여, 헌신이 주요 관심사이지만 이기성은 성장, 성취, 인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직 안에서 선량함은 기본적인 신뢰와 심리적 안전감의 토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기성은 그 토양 위에서 개인의 탁월함과 혁신을 이끄는 엔진이라고 할 수 있고요.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다른 동력이 서로를 보완하며 시너지를 내도록 하는 것이 조직개발의 핵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직 내 역할과 이해관계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의 선량함'에 기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에 깊이 공감합니다. 좋은 사람을 채용하고 서로의 선의에 기대는 것만큼 이상적인 모습은 없을 겁니다.
다만 저는 그 '선량함'에만 기대기에는 조직이라는 시스템이 너무나 복잡하고,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개인의 선량함에 호소'하는 대신, '개인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인정하고, 그것이 공동체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흐르도록 돕는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관점을 제시해 왔습니다.
어쩌면 그동안 조직은 ‘운전자는 보행자를 배려하라’, ‘보행자는 걸을 때 주변을 잘 살펴보고 유의하라’는 구호만 외친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얼마나 사용자(구성원) 중심의 섬세한 경험적 가치를 줄 수 있는 횡단보도를 만들고자 노력했을까요? (요즘 횡단보도는 얼마나 시간이 지나면 초록색 불이 켜지는지,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빨간색 불로 전환되는지 안내도 되더군요. 이 덕택에 보행자들은 지금 길을 건널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고, 운전자들도 이를 통해 대기 시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욕구를 조절할 수 있는 신호가 제공이 된 것이죠)
제가 말하는 이기심은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거나 해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장을 통해 전문성을 축적하고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욕구에 가깝습니다. (저도 이런 욕구와 이기심으로 HR믹스테잎을 만들었고 여러 가지 영감의 재료들을 공유하고 있지요. 이기적인 동기에서 시작한 활동이 다른 분들께 이타적인 가치로 연결될 수 있다고 믿기에 계속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최선이 공동의 최선이 되는 시스템’, 즉 개별 최적화가 전체 최적화로 연결될 수 있는 환경 설계를 위해 아직 저도 답이 어려운 질문이 있습니다.
‘그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것인데요. 조직 안에서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 결정적인 권한을 가진 리더 역시 부족하고 연약한 개인이기 때문이죠. 그들이 자신만의 성공과 영향력을 위해 조직에 불리한 방향으로 시스템을 설계할 위험은 없는지, 즉 '설계자의 이기심'은 어떻게 통제되고 검증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시스템 설계라는 행위가 또 다른 형태의 권력이 얼마든지 될 수 있으니까요.
다행히 리더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연약함을 인정하고 성찰과 반성을 통해 스스로 지속적으로 학습해 나가는 사람이라면, 본인의 blind 영역을 발견할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하고 수용하려고 할 테지만요.
말씀처럼 저 역시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님처럼 깊은 고민을 나눠주시는 분들 덕분에 제 생각이 더 단단해집니다. 보내주신 글을 자양분 삼아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계속해서 좋은 생각들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시 한번 귀한 의견 감사드립니다.
이런 주제의 대화를 멋진 분들과 성숙한 방식으로 나눌 수 있어 감사.
이렇게 건강한 논의와 대화가 있고, 서로의 영감을 나누는 커뮤니티- [HR믹스테잎]
아래 오픈 채팅방에서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https://open.kakao.com/o/gv71AmI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