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는 향기가 있습니다. 그 향기를 따라가다 보면, 문장 너머에 한 사람의 품격과 삶의 온도가 보입니다."
문자의 향기
언젠가 저의 은사님께서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라는 사자성어를 말씀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다.”
그 한마디가 제 마음속에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
문자향서권기 —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文字香書卷氣는 글을 사랑하고, 책을 가까이하며, 그 속에서 품격을 길러내는 삶을 뜻합니다.
글은 향기가 되고, 책은 기운이 됩니다.
그래서 오래 공부한 사람에게서는 자연스레 고요한 향이 납니다.
그것은 억지로 내는 냄새가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배움과 마음의 온도에서 스스로 피어나는 향기입니다.
어떤 이는 꽃처럼 향기롭고, 또 어떤 이는 바다처럼 넓으며, 호수처럼 잔잔하고 깊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저는 그 향기의 근원, 그리고 호연지기의 품격이 ‘글’에 깃들어 있음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옛 선비들은 글자를 향기처럼 여겼습니다. 책상 앞에는 난초 한 송이를 두고, 그 옆에는 묵향이 은은히 피어오르는 벼루를 놓았습니다.
그들은 글을 쓰며 마음을 닦았고, 책을 읽으며 자신을 단정히 세웠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방 안에는 언제나 잔잔한 향기가 머물렀습니다.
그 향기는 난초에서 피어난 것도, 향로에서 피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글에서 배어 나온, ‘문자의 향기’였습니다.
『대학』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마음이 그칠 때를 알아야 단정해지고, 안정되어야 고요해지며, 고요해야 편안하고, 편안해야 생각이 깊어지고, 생각이 깊어야 믿음이 생긴다.”
이 한 구절은 글을 읽는 태도이자, 살아가는 자세를 일깨워 줍니다. 글자를 익힌다는 것은 단순히 문장을 아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단정히 세우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책을 읽을 때마다 향기를 느껴보려 합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난초처럼 피어나고, 책 한 줄 한 줄에 한 사람의 고뇌와 숨결이 스며 있습니다.
이렇듯 문자의 향이 내 속에서 피어오르게 하기 위한 공부는, 남을 이기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나를 닦기 위한 거울이어야 합니다.
자신을 공경하고 다스리는 수신(修身)의 공부, 그것이 쌓여 비로소 ‘문자의 향기’가 납니다.
지식은 머리에 남지만, 향기는 마음에 남습니다.
책장을 넘기며 문장의 향기를 맡는 시간,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향기로운 글은 향기로운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긴 세월 묵묵히 자신을 닦은 사람에게만 스며드는 선물입니다.
날씨는 벌써 추워졌지만, 가을은 여전히 자기 속도대로 깊어가고 있습니다.
단풍잎이 짙은 붉은빛으로 물들며, 마지막 계절의 숨결을 조용히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따뜻한 차 한 잔 곁에 책을 두고, 문자의 향기를 천천히 맡아보면 어떨까요?
책 속 문장들이 난초 향처럼 마음에 스며들어, 평생 사라지지 않을 오묘한 향기를 우리에게 선물해 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