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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전가의 중요성

by 알쓸채은

체육대회로 아이들이 형형색색의 반티를 입고 한껏 들떠 있던 5월의 어느 날, 엄마와 자퇴 문제로 3달째 실랑이를 이어가던 우리 반 소녀가 결국 자퇴를 했다.


아이의 자퇴를 열렬히 반대하던 소녀의 어머니는 두 번의 숙려제 끝에 아이의 손을 들어주었다.


고등학교에서 아이가 진로 문제로 혹은 성적 문제로 한 번 자퇴를 마음먹으면 부모와 아이 사이에 아무리 긴 실랑이가 이어져도 열에 아홉은 아이가 이긴다.


아이의 뜻에 따라 자퇴원 보호자 동의서에 서명하고 마는 어머니들께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를 여쭈면 하시는 대답은 똑같다.


"아이 인생이니까요."


중학교까지는 엄마의 뜻대로 아이를 움직였을지 몰라도 고등학생이 되면 달라진다.


오히려 지난 시간 아이를 이끌고 온 엄마의 노력이 아이의 '내 인생'이라는 무서운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다 엄마 탓 이래


진로 문제, 성적 문제로 자퇴를 하려는 아이들 대부분은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각종 갈등의 원인을 어떻게 해서든 엄마에게서 찾는 경향이 있다.


지난번에 자퇴한 소녀도, 올해 자퇴한 소녀도 자퇴의 직접적인 이유는 망쳐버린 고1 내신 성적이었다.


중학교 때는 제법 상위권에 들었는데 고등학교 입학 후 받은 5~6 등급의 성적을 받아들일 수 없어 내신 성적을 검정고시 성적으로 갈음해 대학에 가겠다는 것.


아이들의 성에 차지 않는 고1 내신의 원인은 다 엄마였다.


지난번 소녀는 엄마가 선행도 안 시켜주고 자신의 진로에 너무 무심했다며 자퇴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고, 올해 소녀는 엄마가 선행을 너무 많이 시키며 자신의 진로를 엄마 뜻대로 결정했다며 자퇴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비단 자퇴와 같은 큰 문제만 엄마 핑계를 대는 것도 아니다.


아침에 지각하는 것도 잔소리하는 엄마 때문이고, 공부가 하기 싫은 것도 언니랑 차별하는 엄마 때문이다.


사람은 본래 문제가 생기면 회피하고 싶어진다.


이에 아이들도 자신이 직면한 갈등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외부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아이들에게 제일 만만한 외부적 요인은 엄마다.


엄마의 그 무언가를 꼬투리 잡아 자신의 행동에 합리성을 부여한다.


과거의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엄마도 아이들이 엄마를 핑계 삼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아이의 핑곗거리가 되어주는 이유는 과거 그 언젠가 아이가 선택을 망설이는 순간에 엄마가 그 선택에 한몫을 했기 때문이다.


문과 성향인 아이가 취업 문제를 염두에 두고 문과와 이과를 두고 고민할 때, 훗날 취업 과정에서 아이가 겪게 될 고통을 아는 엄마는 아이에게 이과를 선택하게 했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이과에서 이해되지 않는 수학 문제를 접했을 때 본인이 선택한 아이는 어떻게든 본인 선에서 해결하려고 하지만,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아이는 엄마 때문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만다.


이렇게 책임을 떠넘기는 수많은 아이들의 모습을 봐오면서 다짐했다.


"우리 집 아이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꼭 책임을 아이에게 전가하겠다!"


16년째 수많은 고등학생을 보니 고등학생이 왜 미성년자인지 알겠다.


아무리 어른스러운 아이도, 아무리 모범생인 아이도 아이는 아이다.


부모의 깊은 뜻을 알아주겠지 하는 건 엄마의 기대고 착각이다.


우리 집 아이도 분명 자기가 나중에 잘 되면 자기가 잘해서 잘 컸다고 할 거다.


반대로 잘못되면 분명 담임 선생님께 엄마의 무언가 때문이라고 엄마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겠지.


아이가 진학할 고등학교를 결정하는 일, 대학과 학과를 결정하는 일, 직업을 결정하는 일, 배우자를 결정하는 일 등.


우리 집 아이든 학교 아이든 아이가 마주하게 될 선택의 순간에 있어 조언은 하지만 늘 마지막 말은 이거다.


"선택도 네가 하는 거고, 책임도 네가 지는 거야."


나의 무탈한 50대를 위해 아이가 마주한 갈림길에서의 선택은 아이에게 넘기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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