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전교 1등 수민이 어머니가 학교에 상담을 오셨다.
일전에 수민이랑 서울대 이야기를 한지라 서울대 이야기하러 오셨나 하고 있는데
어머니는 영 다른 이야기를 하신다.
수민이가 1학년 때부터 이성교제 중이란다.
수민이의 이성교제가 학업에 방해가 될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털어놨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에 어머니께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하나 하다 요즘 아이들에 대해 생각해 봤다.
요즘 1등, 예전 1등
요즘 1등은 예전 1등이랑 다르다.
예전엔 1등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생활기록부 행동발달특성사항에 "솔선수범하는 모범생으로~"라는 구절로 시작할 아이들이었다.
착하고, 바르고, 준법정신이 뛰어나고, 인사 잘하고 뭐 그런 모범생.
한마디로 요약하면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아이."
최근 몇 년 간 만난 1등의 모습은 이것과는 거리가 좀 멀어졌다.
뭐랄까.
'솔선수범'보다는 '주체적', '자기 주도적'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좀 나쁘게 표현하면 어딘가 좀 되바라진 것 같기도 하고...
무튼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아이"와는 거리가 좀 멀다.
선생님 말씀 잘 안 듣는 아이가 잘 사는 시대
그런 시대인 것 같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아이'라는 건 '시키는 대로 잘하는 아이'란 거다.
예전 나 자랄 때는 선생님을 포함해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해도 평균 이상으로 잘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살고 있는 시대, 앞으로 살아갈 시대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것만으로, 주어진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잘살기 힘든 세상이다.
정보가 널려 있고 기회도 널려 있는 요즘,
얼마나 주체적으로,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가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근심 한가득인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어머니 요즘은 공부 잘하는 애들이 연애도 잘하더라고요. 지난해 근무한 학교에 1등도 고3에 여자친구 사귀고 헤어지고 했는데 의대 잘 갔어요. 요즘은 옛날이랑 다르더라고요. 수민이 똑똑해서 알아서 잘할 거예요. 1년 교제했는데도 계속 1등 하고 있잖아요."
엄마 마음에 지금 당장은 과거 엄마들이 살던 시대에 공부만 하던 1등처럼
선생님 말 잘 듣고, 엄마 말 잘 듣는 그런 옛날 모범생이었으면 하는 아이였음 싶을지 모르겠다.
나였어도 수민이 엄마와 같은 마음일 거다.
하지만 엄마가 무탈한 아이와 나의 인생을 위해 좀 참아야 한다.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아이보단 주체적인 아이로
지금 당장은 책 한 권 더 보고, 수학 문제 하나 더 풀고 하는 것이 중요해 보일지라도,
내 꿈인 아이의 독립과 아이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인생의 동반자를 잘 고르는 일이 수능 잘 치는 것보다,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시키는 대로 잘하는,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아이는 주체적 선택의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다.
선택의 경험이 적은 아이는 인생에서 주어지는 수많은 선택과 책임의 상황에 서투를 수밖에 없다.
<폭삭 속았수다> 아이유의 첫사랑이 아이유와 파혼을 하고 엄마가 골라준 배우자랑 결혼해 엄마를 원망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유를 절절히 사랑하면서도 엄마 말씀 잘 듣는 모범생 첫사랑은 엄마 말씀을 거역하지 못하고 자신의 사랑을 놓치고 인생이 꼬인다.
노년에 자식 때문에 괴롭지 않으려면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아이'였으면 하는 바람은 좀 내려놓고 볼 일이다.